외평기금으로 세수 돌려막는다는데 지난해 순자산 1년 새 81% 날아갔다
투자자산에서 대규모 손실 영향
적자 가능성…환율 관리 ‘차질’
지난해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의 순자산 규모가 1년 새 80%가량 급감해 다시 마이너스 순자산 상태로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반적으로 외평기금 적자는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에서 빌려온 돈으로 메우는데, 정부는 되레 외평기금에서 수십조원을 공자기금으로 보내 올해 부족한 세수 대신 쓰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이럴 경우 외평기금의 규모가 큰 폭으로 축소돼 외평기금의 안정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홍성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기획재정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외평기금 순자산 잔액은 2조3738억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12조7570억원)과 비교하면 1년 만에 순자산 81.4%가 증발했다. 외평기금은 원달러 환율 급변동에 대응해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외화와 원화다. 정부는 환율이 급등(원화약세)하면 이 기금을 이용해 원화를 사들이고 환율이 급락(원화강세)하면 달러를 사들이는 식으로 환율을 관리한다.
외평기금 순자산이 감소한 것은 정부가 외평기금 재원으로 운용하고 있는 투자자산이 크게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의원실에 따르면 기금이 한국투자공사(KIC)에 위탁한 투자자산은 작년 1년간 19조3518억원 줄었다. 이와 별개로 기금이 운용하는 투자자산도 지난해 9601억원 감소해 기금의 당기순이익(재정운영결과)은 전년 대비 79.1%(13조9464억원) 줄어든 3조6819억원으로 집계됐다.
KIC 위탁자산의 평가손익은 아직 자산을 팔지 않은 상태에서 집계되는 미실현손익으로, 실현 손익인 외평기금의 당기순손익과는 별개로 집계된다. 이 때문에 지난해 기금 수지는 흑자를 기록했지만 자산 규모는 대폭 줄었다. 기금 수지 역시 1조원에 가까운 투자 손실이 났지만 원달러 환율이 급상승한 영향으로 적자를 면했다.
외평기금은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 이후 20년 넘게 수십조원의 마이너스 순자산 상태가 이어지는 등 만성 적자에 시달려왔다. 2021년 금융시장 호황 영향으로 이례적으로 12조7000억원의 순자산을 기록하며 마이너스 순자산 상태를 벗어났지만 1년 만에 순자산이 2조원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기금이 다시 적자 상태에 접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금 적자가 누적되면 외평기금은 이자를 갚을 길이 없기 때문에 ‘기금의 저수지’ 역할을 하는 공자기금으로부터 예탁금 형태로 원화를 빌려와 부채에 대한 이자를 갚아야 한다.
문제는 외평기금이 1~2년 새 40조원가량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기재부는 내년도 기금운용계획을 발표하면서 외평기금이 공자기금에서 빌린 20조원을 상환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올해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예탁금 20조원 안팎을 공자기금에 추가 상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창준 기자 jcha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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