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교사의 죽음과 우리의 위선
9월4일(월요일) 우리 집 아이도 쉬었다. 교외 체험학습 보고서에는 ‘공교육 멈춤의 날 의미 이해하기’로 제목을 적었다. 아이는 도서관에서 <위대한 학교> <아이들이 사라지는 학교>라는 책을 읽었다. 몇주간 아이는 서이초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종종 물었고, 나도 답을 피하지 않았다. 선생님들의 질서정연한 집회는 이중적 평가를 받았다. 그것은 너무나 가지런해서 열렬한 투쟁처럼 보이지 않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고인에 대한 추모와 제도적 개혁에 대한 요구가 이렇게 정제된 형태로 나올 수도 있구나 싶었다. 이 두 모습이야말로 지금 우리 교사들이 처한 상황이 아닌가 생각했다.
우리 선생님들 대부분은 노동자와 스승이라는 이중적 정체성 사이에 있다. 둘 중 하나를 아무리 강조해도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선생님들 스스로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중적 정체성 자체가 반드시 모순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설령 여기에 어떤 문제가 있다 해도, 그 원인은 교육에 대한 우리의 위선적 태도 때문이지 선생님들에게 있지 않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말하려면 우리는 이 위선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9월4일이 ‘공교육 멈춤의 날’로 명명되었을 때, 이것이 정확히 사실을 꿰뚫고 있다고 생각했다. 교육이란 선생과 학생이 서로를 존중하며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또 배워보려 하는 것일 터이다. 그런데 지금 그런 일은 주로 학원에서 일어나고, 학교는 놀고 먹고 자는 곳처럼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 겉으로는 ‘선생님, 스승님’ 하지만, 속으로는 ‘학교와 교사가 하는 일이 뭐 있어? 애들 교육은 학원이 다 시키는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리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과 학부모, 교사가 서로를 존중하길 기대하는 게 가능하겠는가. 학부모가 교사를 무시하고 학생이 교사를 무시하는 일이 학교에서 일어나지 않을 도리가 있는가 말이다.
서이초교 사건 직후, 일부에선 학생인권조례가 교사인권 침해의 원인인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팩트체크를 해보니 오히려 결과가 반대이거나 별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학생 인권보장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는 학교에서 교사의 인권이 내팽개쳐질 리 없다. 인권은 일방적 권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깡패가 사람을 패면서 ‘이것은 나의 인권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교사들의 인권이 위기에 처한 이유는 학생과 교사들의 인권이 충돌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대한민국 공교육을 내팽개쳤기 때문이다. 공교육의 역할에 대한 탄탄한 사회적 합의와 그에 대한 인정과 신뢰가 있는 곳에서, 과연 최근의 비극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초등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대학교는 또 얼마나 다를까? 지금 대한민국 학교에서 진정한 의미의 교사와 학생 관계가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킬러문항만 제거하면, 선행학습이 중단되고 사교육 시장이 사라지고 공교육이 정상화될까?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교와 교사를 존중하게 될까? 이런 물음에는 도무지 관심도 없고 답할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교육 붕괴의 책임을 교사와 학생의 갈등으로 돌리는 사회에서는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수사와 감사로 교육이 복원되고,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서 교권이 확립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교육당국 안에서도 없을 것이다.
‘내 새끼 제일주의’는 문제다. 그러나 한국인들만 원래부터 가족 이기주의가 강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많은 학부모들이 초등학교부터 선행학습에 안달을 내는 것은, 입시 경쟁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아이의 인생이 불행해질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와 학과가 낱낱이 서열화된, 세계적으로도 기이할 정도의 대학 시스템이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고, 이것이 아이의 일생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수능이라는, 취지는 훌륭했으나 시작단계부터 타락해 한 세대 동안 썩어 문드러진 제도를 어떤 정치세력도 손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모두 그대로 놔두고 교사가 존중받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지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
이번에도 정부와 우리 사회의 대응은 미봉책에 그칠 것이다. 문제를 직시하고 손에 흙을 묻혀 어려운 일을 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으로 아쉽기는 할 것이다. 입시가 아닌 교육 문제가 국가적 이슈가 되고, 이렇게 많은 교사들이 함께 행동하고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지난 며칠 사이에도 교사들이 아까운 생명을 잃었다. 앞으로도 그런 일은 멈추지 않을 것이며, 교사는 기피 직업이 되고, 교육은 더욱 황폐해질 것이다. 그다음엔 아마 나라가 없을 것이다.
이관후 정치학자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들이 이제 비자 받아 잘 살아보려 했는데 하루아침에 죽었다”
- 윤 대통령 ‘외교용 골프’ 해명에 김병주 “8월 이후 7번 갔다”···경호처 “언론 보고 알아
- 최현욱, 키덜트 소품 자랑하다 ‘전라노출’···빛삭했으나 확산
- “남잔데 숙대 지원했다”···교수님이 재워주는 ‘숙면여대’ 대박 비결은
- 이준석 “대통령이 특정 시장 공천해달라, 서울 어떤 구청장 경쟁력 없다 말해”
- 이재명, 김혜경 선고 앞두고 “희생제물 된 아내, 죽고 싶을 만큼 미안”
- “집주인인데 문 좀···” 원룸 침입해 성폭행 시도한 20대 구속
- 뉴진스 “민희진 미복귀 시 전속계약 해지”…어도어 “내용증명 수령, 지혜롭게 해결 최선”
- 또 아파트 지하주차장 ‘벤츠 전기차 화재’에…주민 수십명 대피
- [단독]“일로 와!” 이주노동자 사적 체포한 극우단체···결국 재판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