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 ‘기후고통’ 해소할 마법은 없다

기자 2023. 9. 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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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건축과 강미선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교 건물이나 병원 등 큰 건물의 건축을 지휘하는 기획자이다. 주업 외에 그는 새롭고 다양한 주거 방식을 소개도 하고, 직접 실험도 하는 실학자이다. 2018년 말에 강릉 숲속의 양옥을 친구 10명과 협동조합을 꾸려 구입했다. 별장이나 콘도를 각자 소유하는 대신 친구들과 모여 세컨드 하우스를 구입해 날짜를 정해 돌아가며 사용해왔다. ‘회화나무집’이라는 당호까지 짓고 주변 사람들에게 별장 체험을 하게 해주는 이 실험은 인기가 대단했다. 그런데 그만 지난 4월11일 강릉 산불로 하루 만에 전소되고 말았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딱 한 번 가본 사람도 숲으로 에워싼 고즈넉한 풍경이 눈에 밟히는데 지난 몇년간 함께 써온 조합 친구들의 충격과 안타까움은 어떨까 싶다. 조합원이었던 친구 한 명은 건물이 사라져 입은 재산상의 손실은 차치하고, 가족·친지들과 함께했던 추억의 공간이 순식간에 없어져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이 이상하다고 토로했다. 지금까지도 회화나무집 이야기를 할 때는 가슴에 손을 얹고는 한다.

충격적인 일을 겪고 나서 오랫동안 심리적 문제를 일으키는 것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고 한다. 특히 기후재난으로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가 얼마나 많아졌는지, 회화나무집의 화재처럼 급작스러운 환경 변화 때문에 겪게 되는 정서적·실존적 고통을 지칭하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솔라스탤지어(Solastalgia)’, 이 낯선 단어가 불길하다.

이 단어는 호주의 환경철학자 글렌 알브레히트가 2005년 ‘솔라스탤지어·인간 건강과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라는 기고문에서 처음 만들어낸 단어이다. 위안이라는 뜻의 ‘Solace’와 황량함이라는 뜻의 ‘desolation’, 그리스어로 ‘고통’을 뜻하는 ‘algia’의 합성어이다.

솔라스탤지어가 광범위한 환경적 변화 때문이라면 기후재난 때문에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정상태를 지칭하는 용어도 등장했다. 미국 정신의학계에서는 2014년부터 폭염이나 혹한 등 예측 불가능한 기상상황으로 물리적인 피해를 보지 않더라도 우울감·죄책감·불안·분노·좌절·억울함 등 복합적인 증상을 ‘기후고통(Distress·정신적 괴로움)’이라 정식 명명했다. 기후변화로 고통을 느끼고, 암울한 미래에 불안해하는 사람의 숫자는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최근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정신의학자들은 기후고통의 총량이 ‘세계대전에 준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앞으로 재난 수위가 높아질수록 기후고통이 우울증·조현병을 뛰어넘는 정신건강의 최대 위협 요인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7일 전 세계 환경위기를 시각으로 표현하는 ‘환경위기 시계’가 발표됐다. 130개국 1805명의 전문가와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응답한 설문조사 결과이다. 한국의 환경위기 시각은 지난해와 같은 9시28분이고 세계 평균은 9시31분이다. 환경위기 시각은 0~3시는 ‘좋음’, 3~6시는 ‘보통’, 6~9시는 ‘나쁨’, 9~12시는 ‘위험’을 뜻한다. 12시에 가장 가까워 위기감을 드러낸 대륙은 북미와 오세아니아로 10시21분이다. 앞으로 오랜 시간 인류는 기후위기와 세계대전에 준하는 장기전을 치를 것이다. 기후위기를 호리병에 붙잡아둘 마법의 지니는 없다. 기후 대응에 마음 수련까지 필요할 줄이야!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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