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의 미래] 누가 나의 아침상을 뒤엎나?
내 아침상은 간단하다. 10년 넘게 통곡물 빵 한 쪽과 샐러드, 커피다. 빵만으로 심심하면 견과류나 햄 혹은 삶은 달걀을 곁들인다. 드레싱은 올리브 오일과 식초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샐러드다. 점심·저녁은 외식이 잦아 아침에 채소를 충분히 먹으려 하기 때문이다. 샐러드는 토마토, 상추, 루콜라로 만든다. 처음에는 양배추, 브로콜리를 먹었지만 손도 많이 가고 아침에는 부담스러웠다.
국화과(상추)와 십자화과(루콜라) 채소에는 몸에 좋은 항산화 성분이 많이 포함돼 있다. 가짓과인 토마토도 마찬가지다. 이런 컬러풀한 아침상이 과로·과음이 일상인 나를 그래도 질병의 위험에서 구해주고 있다고 생각해왔다. 나의 아침상은 나에게 단순한 칼로리 건전지가 아니라 ‘먹는 백신’인 셈이다.
그런데 10년 동안 한결같던 아침 식탁이 최근 두 달간 뒤죽박죽이 됐다. 지난 7월 말 끝난 장마 탓이다. 장마 뒤에 토마토, 상추, 루콜라를 구하기 어려워졌다. 나는 생활협동조합(생협)에서 이들 채소를 구입하는데 지난 장마로 아예 매대에서 사라졌다. 생협 봉사자들은 장마 이후 내가 먹는 채소를 주로 재배하는 경기·충청·수도권 인근 지역의 피해가 커 공급 재개에 시간이 걸린다고 귀띔해줬다.
그래도 토마토와 루콜라는 8월 중순 이후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추는 지금도 구하지 못한다. 가끔 나온다고 해도 오전 10시에 문을 열자마자 완판된다. 다른 생협이나 일반 슈퍼마켓에서 이 채소들을 구매하기도 했지만 단골 생협의 부드러운 채소에 길들어진 내 입맛을 바꾸긴 쉽지 않았다. 이렇게 채소를 구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내가 대안으로 택한 아침 메뉴는 콩물과 누룽지였다. 그러나 콩물과 누룽지는 섬유질을 대체하진 못했다. 특히 아침에 찌뿌둥한 내 몸을 깨워주던 채소의 상큼한 향과 씹히는 맛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내 몸은 채소의 결핍에 금세 반응했다. 8월 중순부터는 대학 시절에 자주 앓았던 아토피가 나기 시작했다. 금세 낫겠지라고 생각했는데 20여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밤에 나를 잠 못 들게 할 정도로 간지럽다. 오른쪽 복부에서 시작한 아토피는 왼쪽 복부와 팔에까지 번졌다. 무더위에 아토피까지 생기자 밤에 잠을 못 잤고 매일매일 몸이 무거웠다. 아침에 먹기 편해 골랐던 가늘고 여린 채소들이 질병과 스트레스로부터 그동안 나를 지켜준 것이 분명했다.
올해 장마는 ‘일평균 강수량 역대 1위’ ‘누적 강수량 역대 3위’ 같은 기록을 남겼다. 매년 이런 기록은 경신돼 왔다. 하지만 나는 이런 기록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올해 장마는 꽤 길었지’ 정도로 넘어갔다. 하지만 나는 올해 장마를 잊기 어려울 것 같다. 나의 아침상을 엎어버린 장마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기후위기로 매년 장마는 더 극성스러워진다. 어쩌면 내년 장마는 내 아침상뿐 아니라 발아현미를 먹는 내 점심상과 저녁상도 위협할지 모른다. 채소가 아니라 주식인 곡식 공급에 차질이 생긴다면 나는 올해보다 더 큰 스트레스, 더 위험한 질병으로 고생할 것이 분명하다.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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