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시설 떠넘긴 채 ‘늘봄학교’ 속도전만…“무리한 추진”

박고은 2023. 9. 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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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노동조합연맹 늘봄학교 대응팀 관계자들이 지난 2월28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늘봄학교 정상 운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부가 초등학교에서 수업 뒤 학생의 돌봄 제공 시간과 유형을 확대하는 ‘늘봄학교’ 사업 도입을 기존 2025년에서 1년 앞당겨 내년부터 한다고 발표한 뒤 일선 학교 현장에서 “무리한 정책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시범운영 기간 인력과 시설을 확보하지 못해 수많은 학교가 혼란을 겪고 있는데, 학부모 만족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최소한의 대책 마련도 없이 정책을 섣불리 확대한다는 지적이다.

경기 성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늘봄학교 업무를 맡은 교사 ㄱ씨는 7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교육부는 늘봄학교가 잘 운영되고 있다고 홍보하지만, 학교 현실은 교사들이 반강제로 투입되거나 인력을 구하더라도 강사의 질이 보장되지 않는 등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력을 구하지 못한 ㄱ씨의 학교는 몇몇 교사가 돌아가며 늘봄학교 수업을 떠맡고 있다.

ㄱ씨는 “교사들이 늘봄학교 업무에 투입되면 담임교사란 본업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수업 연구를 비롯해 학부모·학생 상담, 행정업무 등 본래 업무에 집중할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늘봄 교실은 늘봄 교실대로 양질의 프로그램이 운영되기 힘들다”고 짚었다.

인력 채용과 운영이 학교 자율에 맡겨진 탓에 담당 인력을 뽑더라도 이들을 관리·운영하는 건 교사 몫이다. 다른 지역의 초등교사 ㄴ씨는 “늘봄학교 인력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데, 에너지 소모가 매우 크다. 강사가 일이 있어 갑자기 못 나온다고 하면 대체 강사를 구하는 일부터 수업할 교실을 구하는 일까지 교사에게 주어진다”고 말했다. 늘봄학교는 윤석열 정부 교육 분야 핵심 국정과제로, 학부모의 돌봄 부담을 줄이고 출발점 시기의 교육 격차를 해소할 목적으로 도입됐다. 그러나 그 역할과 책임은 온전히 개별 학교에 전가되는 모양새다.

교육부는 기간제 교사와 비정규직 행정인력 등을 늘릴 방침이나, 교원단체와 학교 비정규직 단체 모두 이에 비판적이다. 좋은교사운동은 최근 낸 성명에서 “늘봄학교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계약직 외부 강사 및 비정규직 인력을 중심으로 학생과 학부모가 희망하는 양질의 교육과 보육의 통합서비스가 제공될지 의문”이라고 짚었다.

실제 좋은교사운동이 늘봄학교를 시범 운영하는 5개 시·도교육청(214개 학교)에 정보공개청구를 한 결과, 지난 6월 기준 정규직인 돌봄전담사가 추가 지원된 학교는 한 곳도 없었다. 한시적 기간제 교원이 178명, 자원봉사자 136명, 행정인력 40명 등 비정규직만 투입됐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은 7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돌봄 사각지대 해결과 돌봄의 질 제고를 위해 필요한 돌봄 전용 공간과 돌봄전담사 인력충원, 방과후프로그램 내실화 등은 내팽개치면서 늘봄학교가 잘 운영되고 있다고 자화자찬한다”고 비판했다.

인프라 부족도 해결 과제다. 대부분 학교는 늘봄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별도 공간을 갖추지 못한 채 기존 교실이나 강당 등을 활용하고 있다. 교사 ㄴ씨는 “늘봄학교 운영을 위해 빈 교실을 찾아다니거나, 방과 후에 교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교사에게 교실을 비워달라고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개별 학교가 아니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돌봄의 주체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울 도봉구 ‘마을방과후학교’ 사업을 추진한 경험이 있는 박동국 서울시교육청 대외협력보좌관은 “공간과 인력 확보 등 시스템은 구축하지 않고 개별 학교에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으로는 돌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국가와 지자체 차원에서 ‘학교 밖’ 돌봄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도 “학생과 학부모가 희망하는 양질의 돌봄을 위해서는 지역 단위 돌봄 체계를 구축해야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단위학교에 늘봄사업을 몰아주는 형태가 아니라, 지역사회 여러 돌봄 기관에 분산시키는 지역 단위 돌봄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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