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딱 벌린 호수, 이글 유혹…매달 공 1000개 '퐁당'

조희찬 2023. 9. 7.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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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시그니처 홀' 2023
(10) 대호단양CC
마운틴코스 9번홀(파5)
골프장으로 변신한 채석장
현대시멘트가 40년간 쓰던 곳을
2005년 18홀 골프장으로 개발
황호연 회장 "큰 호수 좋아 인수"
10대 퍼블릭 코스에도 선정
산악지형인데도 페어웨이 넓어
햇볕 잘 들고 페어웨이 평평
사시사철 매트 깔지 않고 티샷
1년에 이글 30개씩 나오는 홀
호수 넘기면 버디가 눈앞이지만
매년 골프공 1만2000개 빠져
조희찬 한국경제신문 기자가 대호단양CC 시그니처홀인 마운틴 코스 9번홀에서 티샷하고 있다. /단양=최혁 기자


골프장 이름 앞에 ‘명문’이란 수식어를 붙이려면 반드시 갖춰야 할 포인트가 몇 가지 있다. 빽빽한 잔디, 빠른 그린, 싹싹한 서비스, 멋진 풍광만으론 부족하다. 이런 걸 아무리 잘해놔도 코스 설계가 너무 쉽거나 터무니없이 어려우면 말짱 ‘꽝’이다. 명문 여부를 가르는 잣대는 최종적으로 ‘18홀을 돌면서 14개 클럽을 한 번 이상 꺼내도록 설계했는지’ ‘굿샷에 대한 보상과 미스샷에 대한 응징이 확실한지’ 등 코스 디자인과 설계기 때문이다.

충북 단양에 있는 대호단양CC는 이런 점에서 명문이라고 부를 만한 골프장이다. 홀별 전장이 천차만별이고 디자인도 제각각이라 여러 채를 휘두르도록 설계돼서다. 페어웨이와 그린 상태도 수도권 명문 구장 못지않다. 그런데도 지방 골프장이라 그린피가 훨씬 싸다. 한 골프 잡지가 몇 년 전 대호단양CC를 베어크리크 포천, 클럽72 등과 함께 ‘한국 10대 퍼블릭 코스’로 꼽은 이유다.

마운틴코스 9번홀(파5)은 이런 대호단양CC의 ‘얼굴’ 같은 홀이다. 오른쪽 2만5000㎡ 크기 호수가 압도적인 홀이다. 함께 라운드를 한 황호연 대호그룹 회장(84)은 “이 호수 하나를 보고 골프장 인수를 결심했다”며 “태평양만 한 호수를 보는 순간 이것저것 잴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산악지형에 펼쳐진 80m 페어웨이

많은 골퍼가 “대한민국 골프장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하지만 대호단양CC만큼은 예외다. 전국에 골프장이 540개 넘지만 닮은꼴을 찾기 어렵다. 골프장이 들어선 터의 역사를 알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원래 이 땅은 1963년부터 2001년까지 현대시멘트(현 한일현대시멘트)의 채석장 부지였다. 채석장 부지는 그 역할을 다하면 사업자가 땅을 메우고 나무를 심어 복구해야 한다. 현대시멘트는 땅을 복구하는 김에 골프장으로 개발했다. 대호단양CC의 전신인 오스타단양CC는 그렇게 2005년 태어났다. 대호그룹으로 주인이 바뀐 건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현대시멘트가 재정난에 빠진 2010년이다.

채석장으로 쓰던 땅이라 산 위에 지었는데도 좁은 느낌이 없다. 반듯하고 각지게 깎은 암석 위에 땅을 다지고 잔디를 얹었기 때문에 언듈레이션도 없다. 해가 잘 들어 잔디가 잘 자란다. 한여름이건, 한겨울이건 티잉 에어리어에 매트를 깔지 않는다. 황 회장은 “매트가 있느냐, 없느냐로 좋은 골프장을 나누는 골퍼가 꽤 많다”며 웃었다.

채석장으로 쓰면서 산을 평평하게 깎은 덕분에 산악지형 코스답지 않게 페어웨이가 넓다. 27홀을 지을 수 있는 부지(92만㎡)에 18홀만 담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러프를 제외한 18홀 페어웨이 평균 폭은 50m, 가장 넓은 곳은 80m에 달한다. 대다수 홀이 일자로 쭉쭉 뻗은 것도 이 골프장만의 특징이다.

대호단양CC를 충북의 명문으로 올려세운 건 황 회장이다. 한양대 요업공학과 1회 졸업생인 그는 ‘세라믹 1세대’다. 1960년대 세라믹산업에 입문한 뒤 유리·위생도기·타일 등 건축자재 기술 혁신을 주도했다. 40대 초반이던 1979년 입문한 ‘늦깎이 골퍼’는 대호단양CC를 품은 뒤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웠다. 매년 2000그루 넘는 나무를 골프장 이곳저곳에 심을 정도다.

○모험심 자극하는 시그니처홀

황 회장은 5년여 전 78세 나이에 ‘에이지 슈팅’을 한 싱글 골퍼다. 같이 쳐보니 ‘먼거리 OK’ 없이 한샷 한샷 빡빡하게 센 ‘찐 싱글’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프는 공을 홀에 넣는 경기”라며 기자에게도 ‘OK’를 잘 내주지 않아서다. 평소 칠 일이 없는 1.5m 퍼트를 하려니 손과 어깨가 흔들렸다. 여기에서만 평소보다 10타 정도 더 나왔다.

그렇게 스코어 욕심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시그니처홀을 맞았다. 홀까지 거리가 496m(화이트티 기준, 블랙 540m, 블루 521m, 레드 434m)인 만큼 안전하게 ‘3온’ 작전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17홀을 함께 돌면서 기자의 드라이버 비거리와 코스 공략 스타일을 읽었을 텐데 황 회장은 ‘2온’ 얘기만 늘어놨다. “티샷을 오른쪽으로 질러 치면 2온 할 수 있어요. 전장 496m는 IP(코스 중간 지점에 있는 타깃) 기준일 뿐 실제 홀까지 거리는 430m밖에 안 되거든요. 세컨드샷 지점까지 내리막이어서 평소보다 10m 이상 더 나갈 테니 2온 전략을 써볼 만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안전한 3온’을 목표로 페어웨이 한가운데를 노렸다. 그런데 살짝 밀리면서 오른쪽으로 조금 휘었다. 한참 달리던 공은 황 회장이 말한 2온 자리에 멈춰 섰다.

우측 그린에 꽂힌 깃대까지 거리는 195m. 앞 팀이 그린을 빠져나갈 때까지 2온을 생각하며 5분 넘게 기다렸다. 옆에 있던 캐디는 알듯, 모를 듯한 얘기를 들려줬다. “이 홀에서 매년 이글이 30개 나옵니다. 버디는 셀 수도 없죠. 개장 후 앨버트로스도 두 번 나왔어요. 물론 호수에 빠지는 공이 훨씬 많죠. 1년에 이 연못에서 수거하는 공이 1만2000개 정도 됩니다.”

2온 시도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어차피 스코어 욕심을 버린 만큼 이글을 목표로 3번 우드를 들었다.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휘두른 우드는 공보다 땅을 먼저 때렸다. 붕 뜬 공은 힘없이 날아가더니 호수에 그대로 처박혔다. 벌타를 받고 4온 후 2퍼트. 이글의 꿈은 순식간에 보기로 변했다.

수도권 북서부에선 다가가기 부담스럽지만 수도권 남동부나 경북권에선 1시간30분 이내에 갈 수 있다. 충청권에선 어디든 1시간 이내 거리다. 최근 준공한 루시다호텔과 연계해 1박2일 36홀 골프 패키지도 판다. 그린피는 주중 16만원, 주말 19만원.

단양=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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