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건축은 나무와 땅, 날아다니는 1000마리의 새가 된다

김보라 2023. 9. 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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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제주 현무암서 떠올린 리조트부터
조개껍데기 모양 닮은 사우나까지
대규모 공사·자기복제 거부하고
자연과 함께하는 '작고 약한' 건축


“건축은 기본적으로 그 장소에 존재하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야 한다. 함께 만들어야 비로소 건축이 그 장소에 어울리는 작품으로 탄생한다. 그 대지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

구마 겐고가 그의 저서 <구마 겐고, 나의 모든 일>에서 한 말이다. 일본을 넘어 세계적 거장이 된 그는 끊임없이 묻는다. 약한 건축, 부드러운 건축, 지는 건축이 가능한가. 그래서 후학들에게 두 가지를 경계하라고 당부한다. ‘불후의 걸작을 남긴 예술가’, 그리고 ‘경이로운 건축 작품’. 대규모 토목 공사와 스스로 브랜드가 돼버린 스타 건축가들이 결국 자기 복제로 괴물 덩어리를 만들어내는 건축을 그는 엄중하게 비판한다.

그의 건축물은 늘 자연과 어우러진다. 사람과 산다. 마치 그 대지에 태고적부터 존재해온 우주의 일부인 것처럼 말이다. “건축은 죄악이다”라고 말하던 소년은 전 세계에 크고 작은 400여 개의 건축물을 낳았다. 그의 주요 작품 중 10점을 골라 소개한다.

(1) 이탈리아 치도리(CIDORI)(2010)

치도리는 직역하면 1000마리의 새다. 새가 입자처럼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표현했다. 이탈리아에서 프로젝트로 진행한 이 공간은 개방적이고 투명한 ‘집’을 만드는 목적이었다. ‘치도리 코시’는 접착제와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에 홈을 내 얇은 직사각형 격자로 엮는 일본의 전통 건축 기술. 견고하게 만든 이런 구조물은 언제든 한 번에 해체할 수 있다. 이 공간에서 나무는 무한한 자유를 얻는다.

(2) 호주 멜버른-보태니컬 파빌리온(2020)

호주 멜버른의 한 식물원 나무에서 벌채된 목재를 사용한 파빌리온 프로젝트다. 이를 폐기하는 대신 나무 주위에 파빌리온을 지어 나무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했다. 방문객들은 다양한 종류의 목재와 구조물 사이를 지나는 빛을 경험하게 된다. 나무들이 퍼즐처럼 맞물려 아치를 만들고, 다공성 나무껍질을 사용해 빛과 공기가 잘 스며들도록 했다. 나무로 지은 숲이랄까. 이 구조는 완전히 재활용할 수 있다. 다른 장소에서 분해와 조립도 언제든지 가능하다.

(3) 바르셀로나 카사바트요 계단과 복도(2020)

스페인의 보물급 건축물인 바르셀로나 카사바트요. 가우디가 지중해 빛을 천재적으로 활용한 이 집에 구마 겐고는 자신의 찬사를 더한다. 2020년 내부 인테리어를 맡았는데, 알루미늄 체인 스크린을 사용해 (원래 8층 중앙 테라스에서 쏟아지던 자연광을) 지하의 석탄 저장고까지 다채롭게 끌어내렸다.

(4) 스타벅스 오모테산도(2011)

일본 도쿄의 스타벅스 오모테산도는 폭 7.5m, 깊이 약 40m의 길고 얇은 땅 위에 지어졌다. 작은 나무 조각들을 엮어 빛과 바람처럼 흐르는 유기적인 공간을 만들어 전 세계 스타벅스에서도 가장 독특한 장소로 탄생했다. 내부 공간을 덮고 있는 X자형 목재 뼈대는 길이 1.3~4m, 단면 6㎝의 삼나무 약 2000그루를 사용했다. 전체 길이는 4㎞다. 인근 다자이후라는 유적지에 현대 목조 건축 기술이 만나 다른 스타벅스와는 다른 독특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이 공간을 만든 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과도 친해졌다고.

(5) 나오시마 사나마네 사우나-사자에(2022)

나오시마의 작은 만 근처에 있는 글램핑 시설 ‘사나마네’의 중앙에 지은 유기농 목재 사우나 ‘사자에’다. 28㎜ 두께의 합판을 150겹씩 쌓아 만든 목재를 썼다. 평균 벽 두께는 단열과 보온을 잘하기 위해 450㎜ 설계됐다. 외관은 조개껍데기처럼 무수히 접혀 인상적인 그림자를 만든다. 내부에선 몸에 꼭 맞는 주름처럼 어디에 앉아도 편안하다. 빛도 자연스럽게 들어와 명상하게 한다.

(6) 제주 롯데 아트빌라스-제주볼(2012)

구마 겐고는 제주를 방문한 뒤 현무암의 구멍들에서 영감을 받았다. 부드럽고, 둥글며, 뚫린 모양을 건축에 옮기고 싶었다고. 집들을 어두운 둥근 돌로 디자인했다.

멀리서 보면 돌처럼 보이고, 가까이 가면 지붕이 된다. 검은 자갈 사이의 틈을 통해 빛이 집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제주의 풍경 안에 또 하나의 제주를 솟아올린 세운 셈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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