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진 전 KBS 이사장 "방통위, 내 해임 날짜 정해둔 것 같았다"
[인터뷰] 윤 정부 들어 공영방송 이사장으로서 첫 해임된 남영진 전 KBS 이사장
"윤석열 정부, 무리하지 않을 거라 생각…KBS 정순신 검증보도 이후 바뀌었다"
"공영방송 이사회, 민주주의 역사 산물…정권 마음대로 하는 선례 남겨선 안 돼"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문재인 정부 후반이었던 2021년 9월, 차기 대선을 6개월 앞두고 취임한 남영진 전 KBS 이사장은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임기 1년여를 남기고 해임됐다. 야권 이사 2명이 해임된 자리가 여권 이사로 채워져 여야 6대5를 이룬 KBS 이사회는 새 이사장을 선출한 뒤 김의철 KBS 사장 해임제청을 추진 중이다. 과반인 여권 이사들만으로도 해임제청안 의결이 가능하다.
그간 정권교체기 이사진 구성을 바꿔 추진한 공영방송 이사·사장 해임은 불법이라는 판결이 이어졌지만, 이런 판결은 늘 해임된 이들의 임기가 끝난 뒤에야 확정됐다. 지난달 자신의 해임에 대한 취소소송,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남영진 전 이사장은 김의철 사장 해임제청안이 의결될 수 있는 12일 전에 법원이 제동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남 전 이사장과 나눈 이야기를 일문일답 형태로 전한다.
- 해임된 다음날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8월31일 법원 심문이 있었다. 이사 해임에 대한 가처분이 인용된 선례가 없다고 하는데 심문 분위기가 어땠나.
“나 대신 변호사가 참석해서 12일(해임제청안 관련 김의철 KBS 사장 청문일)까지 판단해달라고 했는데 '듣긴 듣더라'고 하더라. 이사회 구도가 여야 6대5가 되면서 사장 해임을 하려고 하니 문제가 있지 않느냐, 실효가 있으려면 그전까지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했다.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이 이명박 정부 때 해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한 것이 받아들여져서 문예위 위원장이 둘인 적이 있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7월 이후 윤석년 전 이사, 남영진 전 이사장 해임을 제청하고 두 이사의 잔여임기를 채울 보궐이사로 서기석 전 헌법재판관과 황근 선문대 교수 등 보수성향 인사들을 추천했다. 이로써 야권 7명, 여권 4명이었던 KBS 이사회는 여야 6대5가 됐다. 과반이 된 여권 이사들은 지난달 23일 서기석 이사를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 30일 김의철 사장 해임제청안을 상정했다. 남 전 이사장은 같은 달 21일 해임처분 취소소송, 22일 해임효력을 멈춰달라는 집행정지 가처분을 낸 상태다.
전직 공영방송 이사나 사장들이 제기한 집행정지 가처분이 인정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남 전 이사장의 가처분 신청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다는 시각도 있다. 그가 언급한 김정헌 전 문예위원장은 2008년 12월 이명박 정부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 현 윤석열 대통령 문화체육특별보좌관)에 의해 해임된 사례다. 김 전 위원장은 1심에서 2009년 12월 해임 취소 및 2010년 1월 해임 집행정지 결정을 받아 한동안 출근을 재개했지만 이듬해인 2010년 3월 서울고법이 집행정지를 기각해 더 이상 문예위원장 업무를 수행하지 못했다. 다만 그 해임의 불법성은 서울고법, 대법원에서도 모두 인정됐다.
- 정권교체기 공영방송 이사진이나 사장이 해임된 전례들이 이미 있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 취임했는데 지금 같은 상황을 예견하진 않았나.
“정권교체가 될지 안 될지 몰랐다. 그리고 (KBS 이사처럼) 법적으로 임기제를 둔 곳이 많지 않다. 방송 관련 임기를 보장한다는 건 정권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것이다. 특히 방통위처럼 합의제 기구에 임기를 두는 건 그만큼 더 엄격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정신이 있기에 쉽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 윤석열 정부 초기에도 기대가 있었나.
“KBS노동조합 등이 국민감사를 청구해서 감사가 시작됐는데 감사결과 보고서도 합리적이었다. 무리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TV조선 재승인'이 문제가 될 거라고 상상도 못했다. 그걸로 한상혁 전 방통위원장 자르고 윤석년 이사 자르고, 이후 나에 대한 해임이 이어졌다. MBC에 대해선 '바이든-날리면'(대통령 비속어 보도) 이후 취재진을 대통령 전용기에 안 태우는, 있을 수 없는 일 후에 확 바뀌었고. KBS는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내정자 아들의 학교폭력 사건 보도 이후에 바로 수신료 분리징수 이슈가 나왔다. 공영방송이 '친정권'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면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을 한 게 아닐까. 이 상황에 맞는 인물이 스스로 '스핀닥터'라 말하는 이동관 방통위원장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지난 정부에선 주로 감사원의 인사 조치 요구 등을 근거로 KBS 이사나 사장 해임이 추진됐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KBS 감사에 돌입해 세 차례 감사기간을 연장했던 감사원은 올해 2월, 주요 감사항목에 대한 직접적인 위법사항이 없다고 밝혔다. 이후 윤석년 전 이사는 본인이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했던 'TV조선 재승인 심사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지면서 해임, 남영진 전 이사장은 KBS 내 보수성향 소수노조인 KBS노동조합의 법인카드 사용 관련 국민권익위원회 고발 등을 근거로 해임됐다.
지난 3월 대통령실이 KBS 법적 재원인 TV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해 걷는 방안을 공론화한 것도 KBS를 뒤흔든 주된 요인이 됐다. 남 전 이사장과 김의철 사장이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그무렵 여권 이사들도 모두가 책임지고 동반사퇴하자고 강하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남 전 이사장은 여권 이사들 기조가 KBS노동조합의 감사 청구 이후 달라졌다고 느꼈다며 “이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법인카드 사용 문제는 해임 사유로서 '단골소재'나 마찬가지였는데, 더 조심했어야 하지 않나.
“이사회 사무국에서 법인카드 문제로 해임됐던 강규형 전 이사 이야기도 하며 조심하시라고, 이사장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공개하고 쓰는 건 괜찮다고 했다. '대학교수', '시민사회단체' 이런 식으로 사용내역을 분류하고, 전직 언론인까지 포함해 '언론인'으로 분류했다. 감사원에서 감사 나왔을 때도 그 자료가 다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었다. 나는 오히려 너무 업무추진비를 적게 썼다고 생각했다. 현직 언론인 만남 때 식사비 3만 원 이상 못 쓰는 것은 내가 청탁을 해야 적용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방통위의 해임건의 사유 중 가장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이 있나.
“처음에는 방통위가 해임 추진하는 사유로 크게 5가지를 들었는데, 실제 대통령에게 해임건의를 할 땐 3가지가 빠졌다. 특히 법인카드 사용은 국민권익위원회가 KBS에 나와서 조사를 하고 있어서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을 때였기에 시간이 한참 걸리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방통위는 내가 해임될 날짜를 정해두고 그날부터 역산해서 해임건의 절차를 추진하는 것 같았다.”
-김의철 사장에 대한 KBS 이사회의 해임제청 추진은 어떻게 보나.
“나를 해임하듯 청문도 안 거치고 할 줄 알았더니 소명 준비할 기간을 10일 줬다는 것만으로도 '숨고르기 하네' 생각했다. 물론 결론은 정해놓고 있는 것 같다.”
-KBS 내부에선 사장이나 이사회가 수신료 문제에 더 잘 대응했어야 한다는 실망감도 있는 듯하다.
“처음부터 수신료 분리징수를 내걸었다는 건 KBS를 말살하겠다는 것이었다. 그걸 마치 KBS가 잘 못해서 분리징수한다는 것처럼 이야기를 했다. 여권에서 일부 편파보도가 있어서 손봐주는 것이라는 식으로 분리징수 이야기가 나왔다. 분리징수는 보도와 관련 없는 공영방송 말살 정책이다.”
-앞으로의 일들을 어떻게 전망하나.
“공영방송 약화 정도가 아니라, KBS2 분리도 이상하지 않다. 과거 이명박 정부, 이동관 홍보수석(현 방통위원장) 시절 종합편성채널 이야기가 나올 때 '그게 되겠나, 말이 되나' 했는데 까보니까 조선·중앙·동아·매일경제 보수 언론한테만 다 줬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BBC 인터내셔널'이나 'NHK 국제방송' 같은 방송을 만들겠다고 이야기하더라. BBC 모델이라면 지금보다 공영방송 공영성을 더 강화시켜야 하고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 NHK는 오히려 친정부에 가깝다.”
-2TV 민영화 현실성이 있을까.
“지금은 재벌이 (방송사를) 못 가지게 돼 있는데 우회적인 방법으로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옛날 언론통폐합 때 삼성에서 TBC를 빼앗아 KBS2 만들었다. 그걸 삼성한테 준다고 하면 대의엔 맞는 것이다. (미디어 산업이) 점점 대형화되고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다 들어오는데 우리도 대형화시켜야 한다는 논리들이 있다. 팔면 살 사람들은 있을 것이고 지금은 법에 묶여 있어서 그렇지, 왜 못하겠느냐.”
-이사회 활동할 때 실제로 여권, 야권 영향이 있었나. 여야 성향으로 분류하는 호칭부터 잘못됐다는 이사들도 있었다.
“정치적 후견주의는 합의제 기구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랄까. 여야가 나눠서 추천을 하는 게 맞다고 본다.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그걸 더 어떻게 운영을 잘하느냐가 관건이다.”
-여권 간섭이 없었나?
“김상근 전 이사장이 청와대에서 한 번도 전화를 안 받았다잖아. (본인 재임기엔?) 처음에 인사문제는 조금 있었다. 그 다음에는 전혀 있을 수 없었다.”
-이사장을 맡은 기간 들여다본 KBS는 어땠나.
“와서 보니까 꼭 (KBS가)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시골에 가면 다 KBS, MBC 뉴스를 보더라. 태풍이나 지진이 일어날 내 TV수상기도 제 역할을 못할 때가 있다. 그러면 FM이나 결국 AM을 써야 한다. KBS는 아직 AM 송신소를 갖고 있다. 사할린, 우즈벡, 카자흐스탄, 조선족 대상 등 대북방송을 AM으로 한다. 더 강화시킬 부분이다. 잼버리 사태 때 뮤직뱅크 같은 것도 다 KBS가 갖고 있는 네트워크를 사용했다.”
-임기를 다 채우지 못했는데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방통위나 공영방송 이사회 구조는 민주주의의 역사적 산물로 잘 돼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전부 '위너 테익스 올'(Winner takes All)이지. 헌법재판관과 비슷하다. 그것이 형해화된 것이 아쉽다. 이런 것만은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 대법관도 마찬가지이지 않나. 그 정도로 방송이나 언론이 중요하다는 걸 모르기 때문에 정권이 마음대로 쉽게 가는 것이다. KBS도 역사적 산물이다. 공보처 산하에 있던 걸 공영방송으로 만들고 여기까지 왔다. 통합징수를 40년간 지켜오면서 국민이 수신료를 내고 영향력 1위가 된 것을 하루아침에, 정권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선례를 자꾸 남기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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