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기자생활] ‘공산전체주의’라니, 그 생경함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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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태어나서 '공산주의'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쓴 해로 기록될 듯하다.
평소 '공산주의'라는 말을 떠올릴 기회가 없었는데, 대통령이 이곳저곳에서 공산주의, 아니 '공산전체주의'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를 반복해서 쓰니 외교안보 부처를 출입하는 기자로서 이 단어를 쓰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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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 | 통일외교팀 기자
올해는 태어나서 ‘공산주의’라는 말을 가장 많이 쓴 해로 기록될 듯하다. 평소 ‘공산주의’라는 말을 떠올릴 기회가 없었는데, 대통령이 이곳저곳에서 공산주의, 아니 ‘공산전체주의’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를 반복해서 쓰니 외교안보 부처를 출입하는 기자로서 이 단어를 쓰지 않을 재간이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 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여전히 활개 치고 있다”고 말한 데 이어, 지난 1일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식에서는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그리고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올해 다짐 목록에는 “최대한 자주 공산전체주의 관련 발언하기”가 적혀 있기라도 한 걸까.
행사장에서 이 발언을 듣고 있는 심드렁한 표정의 신입 외교관 후보자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공감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혁신처 자료를 보면, 올해 외교관 후보자 합격자 평균 나이는 대략 27살. 사실 이들이 속한 20대, 그리고 필자가 속한 30대, 일명 엠제트(MZ)세대는 공산주의라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다. 태어나 보니 북한과의 체제 경쟁은 이미 끝나 있었고, 소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공산주의는 교과서에서나 배우는 개념이었다. 대학교에 다니고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평범한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도 수백 대 1이라는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이 때문에 북한이 좋다거나 월북하겠다는 친구는 없었다.
반면 자유는 공기와 같았다. 어려서부터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온갖 다양한 소식과 주장들을 접했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했다. 수많은 기사를 인터넷으로 읽고 댓글을 통해 여론을 접할 수 있었다. 이런 성장 배경을 가진 세대들은 연일 “공산전체주의에 의해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대통령과 여권의 발언을 들을 때면 당혹스럽기만 하다. 어떤 자유민주주의가 어떤 공산전체주의 세력에 의해 위협받고 있는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윤 정부가 뉴라이트 세력이 주로 사용하던 정체불명의 용어인 공산전체주의까지 전면에 내세우면서 우려하는 ‘위협’이 무엇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이 후보자 시절이던 지난달 1일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을 “공산당 기관지”라고 지칭한 것을 보면, 정부 비판 세력에 붙이는 꼬리표처럼 사용되고 있는 개념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정부에서는 이토록 자신감 있게 이야기를 하는데, 이를 반박하는 기사를 쓸 때면 뭔가 개운치 않다. 정부·여당이 펼치고 있는 공산전체주의 주장이 논리에 기반한 것이 아닌 비판 세력에 대한 낙인찍기일 뿐이어서다.
윤 정부가 유령과 같은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싸우는 사이 사라지는 자유는 보다 명확히 보인다. 가짜뉴스 근절을 외치던 이 위원장은 지난 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흑색선전 근절법’ 입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흑색선전 근절법’은 2007년 12월 발의된 법안으로 선거 기간 허위정보를 유포한 이가 사실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징역형에 처하는 내용을 담았다. 공산전체주의라는 공세 속에 앞으로 자유라는 공기는 얼마나 더 희박해질까.
newri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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