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원의 축덕축톡] 유럽 떠돌던 日선수, K리그서 꿈을 찾다
8년간 스페인·핀란드 등서 뛰어
부천 입단 첫 시즌부터 주전 꿰차
고시원·초소형차 등 검소함 눈길
"K리그1 승격 후 팬들과 즐길 것"
일본인이지만 일본 J리그에서는 뛴 적이 없다. 고교 3학년 때 나 홀로 축구 유학을 떠난 뒤 8년의 세월 동안 유럽 전역을 돌아다녔다. 축구로 꿈을 펼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하지만 정작 축구의 꽃을 피운 곳은 멀고도 가까운 나라인 한국이었다. 올 시즌 프로축구 K리그2(2부) 부천FC1995 유니폼을 입은 카즈(본명 다카하시 가즈키)는 스물일곱의 나이에 난생처음 축구로 인정받고 있다.
K리그2에 카즈라는 이름으로 등록한 그의 축구 인생은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가시와 레이솔 유스팀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선진 축구를 배우고 싶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스페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최근 만난 카즈는 “어릴 때부터 스페인 축구를 동경했고 그곳에서 뛰는 것을 항상 꿈꿔왔다. 어린 나이에 스페인 유학을 떠났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홀로 떠난 스페인 유학은 결코 쉽지 않았다.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게 먼저였다. 이를 위해 카즈는 스페인 마드리드를 연고로 한 4부 리그 소속의 레알 아랑후에스CF에서 뛴 2년 동안 홈스테이 생활을 했다. 매일 아침 1시간씩 어학원을 다녔다. 하지만 간절한 노력에도 두 시즌 동안 출전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자신을 원하는 팀을 찾지 못해 결국 스페인을 떠나야 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몬테네그로였다. 2부 소속 FK이갈로와 계약한 카즈는 두 번째 시즌 만에 꿈에 그리던 프로 데뷔전을 치를 수 있었다. 이듬해에는 핀란드 1부 FF야로로 이적해 주전으로 활약하며 첫 공격 포인트(2도움)를 기록했다. 이후 루마니아에서 2년, 스웨덴에서 1년, 불가리아에서 다시 2년을 보냈다. 오로지 ‘축구’라는 꿈을 꾸며 유럽 한 바퀴를 돈 셈이다.
하지만 카즈가 꿈꾸던 축구를 펼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8년간의 유럽 생활을 마친 그가 또 다른 도전을 위해 선택한 곳은 한국이었다. 카즈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뛰는 걸 항상 꿈꿨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며 “2년 전 대전의 마사(일본인 선수)와 통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가 한국과 K리그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해줬다. 마사는 자신의 한국인 에이전트를 소개해줬고 제가 부천과 함께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고 고마워했다. 마사는 카즈와 일본의 같은 현에서 경쟁했던 고교 1년 선배다.
돌고 돌아 부천에 정착한 카즈의 축구는 비로소 꽃을 피웠다. 유럽 변방 리그를 돌아다닌 터라 이력서에 제대로 된 경력 하나 없는 선수였는데 부천에서는 축구로 인정받아 첫 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꿰찼다. 올 4월 김천 상무를 상대로는 프로 무대 데뷔골을 터뜨리기도 했다. 부천은 카즈의 기대 이상 활약에 전반기가 끝나자마자 새로운 계약 조건을 제시했다.
카즈는 부천에서 괴짜로 통한다. 잠시 소속 팀이 없었던 2016년, 6개월 동안 일본 지바의 의류 매장 ‘자라(ZARA)’에서 일을 배운 사례만 봐도 범인(凡人)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카즈는 “스페인에서 실패 후 축구 선수의 꿈을 접기로 했고 축구 이외의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며 “일하는 동안 축구 없이 못 살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뒤 유럽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가 괴짜로 불리는 진짜 이유는 남다른 ‘검소함’이다. 구단에서 집과 차량을 위한 지원금을 제공했지만 최근 원룸으로 옮기기 전까지 굳이 고시원 생활을 했다. 카즈는 “유럽에 있을 때도 작은 방이 익숙했다. 굳이 큰 집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이유를 밝혔다. 시즌 초반까지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른 팀의 경기를 보러 다녔던 그가 최근 출퇴근용으로 구매한 차량도 국산 2인승 초소형 전기차 쎄보다.
독특한 이력과 남다른 검소함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카즈는 최근 부천과 3년 재계약을 했다. 그렇다면 그가 한국에서 꾸는 새로운 꿈은 무엇일까. “제 목표는 부천에서 많은 역사를 써 내려가는 거예요. 가장 큰 목표는 팀을 K리그1(1부)으로 승격시키는 겁니다. 부천 팬들과 최상위 리그를 즐기고 싶어요.”
서재원 기자 jwseo@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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