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코로나19 백신 피해, 전 정권 책임…사죄하는 마음으로 왔다”
전 정부 대표 최초로 백신 부작용 사과
“해법은 인과성 포괄적 인정, 입증 책임 전환 뿐”
"소송 취하가 끝 아냐…유사 500건에 동일 보상하라”
백신 피해자 첫 산재 소송 답 나와 주목
“문재인 정부와 당시 여당 대표였던 저의 책임입니다. 미안합니다.”
정부의 코로나19 백신 피해자 대책 발표 하루만인 7일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 정권의 백신 피해 책임을 인정했다. 백신 접종이 본격적으로 이뤄졌던 시기의 여당 대표가 정부의 방역 정책과 관련해 사과 입장을 밝힌 것은 이례적으로, 향후 정치권의 의미 있는 움직임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백신 피해자의 산업재해 신청 기각 무효 첫 소송의 변론기일이 열린 서울행정법원을 찾았다. 같은 날 검찰이 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송 전 대표의 전직 보좌진을 압수수색했다. 그런데도 송 전 대표는 소송 당사자인 백신 피해자의 부친에게 재판 참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전 정부 대표 최초로 백신 부작용 사과…“K방역, 피해자 덕”
10여 분간 진행된 재판 참관 뒤에 송 전 대표는 “백신 피해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요양 급여 신청을 했으나 불승인 처분이 났다. 그 취소 소송 재판을 보고 다시 한 번 백신 피해 구제법이 왜 필요한지 절실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송 전 대표는 “지난 정부 때 다른 나라에 비해 방역 관리가 성공적으로 잘 됐다고 K방역을 엄청 홍보했다. 의료진과 질병관리청의 고생도 있었지만, 국민들이 백신 접종 정책에 잘 응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2500명이 숨지고, 자영업자들도 집합 금지 명령과 영업시간 제한 등으로 큰 손실을 봤다. 관련 피해자들에게 보상이 제대로 안 됐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 두 문제 모두 문 정부와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저의 책임이다. (그래서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앞서 정부는 2021년 코로나19 백신 접종 초기에 보급된 백신의 불안정성을 인정하고 피해가 생기면 책임 지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접종 이후 이상반응자가 나오자 정부는 접종자에게 입증 책임을 지우고, 입증하지 못하면 피해를 보상하지 않았다. 이에 전문가도 하지 못하는 입증 책임을 피해자에게 지우는 것은 무리한 조처라는 지적이 나왔다. 피해자들은 접종 후 이상반응이 생기거나 사망 기간에 시간적 개연성(42일 이내)이 있으면 국가가 백신 피해를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또 접종과 시간적 개연성이 있는 이상반응이 기저질환 등 다른 이유에 의해 생겼을 가능성이 있어도 제한적으로 백신 피해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접종 후 기저질환이 악화돼 이상반응으로 발현될 가능성 등을 고려해 폭 넓게 보상하자는 취지다.
▮백신 피해 해법 제시…“인과성 포괄적 인정, 입증 책임 전환 뿐”
질병관리청은 지난 6일 당정협의회에서 백신 접종 이후 사망 위로금 대상과 금액을 올리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백신 피해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정부 대책에는 피해자의 요구사항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저마다 “우려했던 대로 정부의 포괄적 피해 인정 확대 조처는 없었다”며 반발했다. 한 피해자 유족은 “그간 대학병원 진단도 무시하고 사망자 피해 인정을 하지 않던 질병청이 이제 와서 지원금 얼마 주고 유족의 한을 덮으려고 한다”고 성토했다.
이를 두고 송 전 대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백신 접종 이후 가족을 잃고 영원히 노동력을 상실한 이들의 고통은 돈 몇 천만 원으로 해소될 수 없다””며 “백신 접종과 이상반응 간 인과관계를 포괄적으로 인정하는 게 우선이다. 이번 재판 당사자인 피해자가 제 아들과 동갑이다. 멀쩡하던 청년이 백신 접종 이후 사지마비가 왔다면 보건 당국은 접종과 이상반응 간 인과관계를 추정하고 관련 피해 보상부터 해줘야 했다”고 강조했다.
송 전 대표는 또 “위로금을 늘릴 게 아니라 피해자에게 부과된 백신과 이상반응 간 인과관계 입증 책임을 정부가 가져오는 게 필요하다. 비전문가인 일반 서민이 피해 입증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당 대표로 있을 때 관련 법안을 만들지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스럽다”고 토로했다.
▮소송 취하가 끝 아냐…“유사 사례 500건에 동일 보상하라”
송 전 대표는 질병청이 백신 피해자를 상대로 제기한 항소를 취하하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백신 피해자가 질병청을 상대로 1심 승소한 판례에 대해 질병청이 항소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질병청이 이와 유사한 500여 개의 소송 사례에 대해서도 동일한 보상을 해줄 것을 약속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렇지 않으면 백신 피해자들이 질병청을 상대로 또 다시 소송을 해야 하는데, 이런 수고를 덜어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송 전 대표는 백신 피해자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국회 상임위에는 백신 피해의 포괄적 인정과 피해 입증 책임 (피해자→정부) 전환 내용을 담은 법안 10여 개가 올라와 있으나 백신 피해자와 질병청 간에 합치된 의견이 반영되지 못해 1년 넘게 처리되지 않고 있다. 송 전 대표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계속 백신 피해자 문제의 중요성을 환기하겠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도 개별적으로 피해자 대책 법안 통과를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윤석열 대통령도 백신 국가책임제를 약속해 정권을 잡았다. 그런데 이 정부에서도 (약속 이행이) 잘 안되고 있다. 코로나 백신 피해 관련 법안이 통과되도록 여론을 환기하고 여야 정치권과 정부에 움직임을 촉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소송을 제기한 백신 피해자의 아버지는 “지금이라도 정치권이 관심을 가져 다행”이라면서도 “백신 접종 이후 작업 치료사였던 아들의 인생이 한방에 사라졌다. 이번 정부 대책은 삶이 망가진 피해자의 현실을 무시한 일방적 조처”라고 평가했다.
▮백신 피해자 첫 산재 소송 답 나와…“상병명 특정 안 되도 이후 진단명과 연관성 찾는 게 해법”
한편, 이날 재판에서는 산재 신청 대상인 상병 특정 여부를 두고 백신 피해자와 근로복지공단 간 입장차를 드러냈다. 피해자 측은 “산재 신청서에 의사가 진단한 상병명이 특정되지 않아도 백신 접종 이후 이상 반응 증상이 뚜렷하면 백신 피해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공단 측은 “산재 신청 사유로 진단명이 특정되지 않으면 요양급여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게 규정에 따른 판단”이라고 맞섰다. 이에 재판부는 “피해자의 산재 신청 이후 특정된 길랑바레 증후군 진단이 (산재) 신청 전 특정되지 않은 복합 질환 진단과 같은 것인지 증명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피해자 측 변호인인 안나현 변호사는 “종전 백신 관련 산재 소송에서는 피해자 증상과 접종 간 인과성 인정 여부가 쟁점이었는데, 이번 재판부는 달리 판단하고 있다”며 “산재 신청 이후 진단 된 길랑바레 증후군 증상과 관련 치료가 병명 특정 전에도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는 충분하다”고 승소에 대해 기대감을 보였다.
재판에 앞서 발병 전 작업치료사로 일했던 피해자의 동료들이 나와 지지 성명을 발표했다. 작업치료사는 환자의 정신·정서적 불안, 질환, 장애를 개선하기 위해 작업훈련, 레크리에이션 등의 치료 활동을 하는 의료계 종사자다. 이들은 백신 접종 이후 신체 마비가 온 중중질환자의 근육 훈련을 돕기도 한다. 이지은 대한작업치료사협회장은 “펜데믹이 올 때마다 의료계 종사자들은 위험을 부담하고 백신을 접종할 수밖에 없다”며 “그때마다 부작용 피해를 외면하면 피해자들은 누굴 믿어야 하냐. 이번 사태는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정부의 신뢰 문제와 직결된다”고 당국의 대책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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