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균용, 성인지감수성 부족? 野 주장과 달리 형 높인 판결도 많았다
더불어민주당이 6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해 ‘여성폭력 상습 감형’을 했다며 이 후보자에 대한 지명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가 2020년 서울고법에서 아내의 배를 밟아 사망하게 한 남편에 대해 살인 대신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1심보다 낮은 형을 선고한 판결, 12세 아동을 세 차례 성폭행한 20대 남성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7년을 선고한 판결 등을 들어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30년 넘게 법관생활을 한 판사의 일부 판결을 들어 성(性)인지감수성을 문제삼는 것은 무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까지 이 후보자가 한 판결은 본(本)소송에 해당하는 것만 7500건, 가압류·가처분 등 신청 사건은 12000건으로 2만여건에 육박한다. 사안별로 사실관계를 고려해 판결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주장과 반대 방향으로 1심보다 형을 높이거나 더 엄한 처분을 내린 판결도 있는 만큼, 일부 판결을 들어 여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법원 내부에서는 대법원장 후보자의 수많은 판결 중 극히 일부의 판결을 들어 성향을 재단하고 비판하는 현상을 매우 이례적이라고 보고 있다. 한 현직 판사는 “판결에 대한 비판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지만 후보자의 판결 전체 혹은 많이 알려진 대형사건이 아닌 자극적인 일부 판결만 뽑아 특정 언론에 보도되고 야당이 이를 근거로 지명철회를 요구하는 것은 상당히 우려되는 현상”이라고 했다. 또다른 판사는 “법원 내부에서 이 후보자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인다는 느낌도 든다”며 “전체적인 조감 없이 특정 판결만 집어서 문제삼도록 하는 것은 재판독립 침해”라고 했다.
◇동거녀 칼로 위협하고 성폭행 시도, 1심 3년→2심 4년 6개월
실제 이 후보자는 2020년 서울고법에서 결별을 요구하는 동거녀를 식칼로 위협해 7시간 넘게 감금한 후 강간하려 한 사건에서 징역 3년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4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죄질이 매우 나쁘고 피해자가 받았을 고통과 공포가 매우 컸다”며 “아무런 피해회복도 못했고 피해자가 엄벌을 원하고 있다”며 “1심의 양형은 부당하다”고 했다.
집행유예 기간 중 미성년자 성매수를 한 남성에게 징역 8개월을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하기도 했다. 1심은 ‘집행유예 선고가 실효되면 3년 6개월을 추가로 살아야 하는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했었다. 그러나 2심은 “집행유예 기간 중 범행을 저질러서 집행유예 선고가 실효되는 사정을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형을 두 배로 높였다.
2015년 성비위를 저지른 경찰공무원의 해임을 가혹하다고 본 1심을 뒤집고 해임처분의 정당성을 인정한 사건도 있다. 사실혼 배우자가 있었던 이 경찰공무원은 경찰서 구내식당 종업원 등 다른 여성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상대방 동의 없이 성행위 장면을 촬영해 해임당했다.
재판부는 “경찰공무원은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을 지키고 일정범위의 실력행사도 허용되고 있는 점에 비춰 직무와 관계없는 행위라고 하더라도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의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비행에 해당되는 것으로 평가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임처분을 받아 공무원으로서 신분이 박탈되더라도 사회통념상 현저하게 타당성을 잃었다고 볼 수 없다”며 1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봤다.
◇ “학교에서 교사에 당한 성추행, 지자체도 책임져야”
2016년 대학생과 조교를 성추행, 성희롱한 교수에 대한 해임을 1심과 마찬가지로 정당하다고 판결하면서 “피해자들의 회식 당시 언행 및 태도가 활발하고 적극적이어서 전형적인 피해자의 모습과 일견 차이를 보인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나이와 전공, 원고(교수)와의 관계, 원고의 대학교에서의 지위를 고려할 때 그런 태도가 피해사실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그로부터 2년 후인 2018년 4월 소속 학과 학생 세 명을 성희롱 및 성추행해 해임당한 대학교수가 해임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일반인이 아닌 피해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의 시각에서 성희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해임이 정당하다고 봤다. ‘피해자가 성희롱 이후에도 수강을 이어 나갔고 수업방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며 성희롱을 부인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권순일대법관 주심의 이 판결은 최초로 ‘성인지감수성’ 을 적시한 판결로 통한다.
2009년 광주고등법원에서는 교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한 학생들이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교사 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전라남도)의 책임을 인정하기도 했다. 교사의 강제추행행위는 과학실, 교무실, 학교 복도 등에서 이뤄졌으므로 교육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봐야하고 따라서 공립학교를 설치·운영하는 지방자치단체 역시 국가배상법에 따라 책임이 있다고 한 것이다. 당시 지자체는 “교사에게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했으므로 상당한 주의감독을 했다”고 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아 사망 보육교사 징역 4년→6년 “형편 어려운 부모들 신뢰 저버려”
2019년 서울고법에서는 24시간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생후 11개월 아이를 재운다며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씌워 숨지게 한 보육교사에게 1심의 징역 4년을 깨고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이 보육교사는 평소에도 이불을 뒤집어씌우는 방식으로 낮잠을 재웠고 다른 교사들로부터 ‘위험하다’고 경고를 받았는데도 아무 문제의식 없이 같은방식으로 아이를 재웠다고 한다.
이 교사는 자매 관계인 원장과 함께 기소됐으며 이들은 다른 아이들을 폭행하고 학대한 혐의도 적용됐다.
1심은 이들이 사망한 아이 부모에게 7000만원을 공탁했고, 다른 폭행 피해 아동 부모들 일부와 합의한 점 등을 들어 보육교사에게는 징역 4년을, 원장에게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피해자는 생후 1년을 채 살아보지 못한 채 자신을 돌보아야 할 바로 그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행위와 이를 방치한 원장의 행위로 소중한 생명을 잃게 됐다”며 1심 양형이 부당하다고 했다.
2심은 40쪽이 넘는 판결문을 통해 사망한 아동 외에도 다른 아동학대 장면을 일일히 적었다. ‘탁자 위에 올라간 돌 미만의 아이를 손으로 밀어 탁자 밑으로 떨어지게 하는 장면’ ‘1세 아이가 밥을 먹다가 원장에게 다가오자 손으로 밀어서 뒤로 넘어뜨리고 넘어진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데도 전혀 신경쓰지 않고 계속 밥을 먹는 장면’ ‘0세 아이들을 재우면서 이불로 얼굴을 포함해 온몸을 덮어씌우는 장면’등이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이 아동을 조심성 있게 다루거나 소중히 대하는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2심은 “24시간 어린이집은 경제적 형편이 좋지 못해 주중에 아이를 돌볼 여유가 없는 맞벌이 혹은 편부모들이 자녀를 위탁해 그만큼 부모들의 신뢰가 컸을 것”이라며 “피고인들이 자신들의 보육 편의만을 추구해 아동과 부모들에게 고통을 줬다”고 했다.
2005년 아이들이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먹고 남은 김밥 등을 모아 ‘아침죽’을 만들어 준 어린이집에 대해 아동과 부모들이 위자료를 청구한 사건에서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어린이집 관계자를 고소한 사건에서 검사는 ‘아침죽이 건강을 해할 우려가 없다’며 무혐의처분을 했던 사건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아침죽에 직접적으로 아동들의 신체적인 건강에 해를 끼칠 성분이 포함돼 있지 않더라도 보통의 합리적인 일반인이 사회생활 중 음식을 섭취함에 있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수인한도(참을 수 있는 정도)를 넘는 것으로 아동의 인격적 이익을 침해하는 위법행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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