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위기'에도 원전 내린 獨…기업은 불안감 "탈독일 할까"
[편집자주] 독일 경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기가 됐지만 들여다보면 여러 요인이 독일을 다시 '유럽의 병자'로 만들고 있다. 이런 독일의 모습에는 우리와 겹치는 점들도 있다. 독일 경제를 짚어본다.
문제가 불거진 건 러시아가 에너지 인질극을 시작하면서다. 러시아는 전쟁 이후 서방 제재로 사면초가 처지에 놓이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을 잠갔다. 노르트스트림1 시설 정비를 이유로 독일에 보내는 가스 공급량을 점차 줄이다가 지난해 9월 공급을 완전히 차단했다.
러시아의 가스 공급이 줄어들자 독일 에너지 기업들은 현물 시장에서 과거보다 더 비싸게 가스를 살 수밖에 없었다. 이는 에너지 사용량이 높은, 독일 경제의 심장 제조업에 타격을 줬다. 전기료, 천연가스료 등 에너지값이 급등하면서 화학, 금속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이 크게 위축되고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감소했다. 로이터는 레피니티브 자료를 인용해 7월 기준 독일의 전기료가 2018~2022년 평균보다 약 75% 높다고 전했다. 그 결과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독일은 올해 주요 7개국(G7) 중 유일하게 역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탈원전으로 인한 발전 공백을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풍력이나 태양열과 같은 재생에너지는 시간·계절 등 날씨에 따라 생산량이 달라져 변동성이 크다. 이로 인해 독일은 부족한 발전 규모를 수입한 전력으로 메웠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독일은 185억kWh(킬로와트시)의 전력을 수입, 1991년 통계 집계 이후 분기 기준 최대치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수입에서 수출을 뺀 순수입량은 71억kWh로, 독일 마지막 원전 3기의 지난해 2분기 발전규모(73억kWh)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dpa통신은 설명했다.
탈독일을 고심하는 기업도 늘었다. 같은 조사에서 기업 중 31.7%가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거나 독일 내 생산을 줄일 계획을 준비 혹은 실행 중이라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16%)보다 두 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독일 투자은행 베렌버그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들이 에너지 집약적인 생산 공정을 전기 및 가스가 저렴한 미국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으로 이전하면 독일은 현재 산업 생산 능력의 2~3%를 잃게 된다.
홀거 슈미딩 베렌버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몇 달간 미래 에너지 가격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 심리가 급격히 위축되고 생산기지 이전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분석했다.
복원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원전 가동 재개 가능성을 일축했다. 숄츠 총리는 최근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원전 재가동 논란과 관련해서는 총리로서 추가로 결정적 언급을 할 필요조차 없는 사안"이라며 "탈원전은 이미 법적으로 시행된 지 오래"라고 강조했다.
독일 연립정부는 10가지 경기 부양책을 발표하며 기업 달래기에 나섰다. 여기에는 기후 변화 대응과 에너지 효율 향상을 목적으로 투자를 단행하는 기업에 세금 감면을 제공하고, 연구·개발(R&D) 촉진을 위한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중소기업에는 향후 4년 동안 연간 70억유로(약 10조202억원)의 세금을 덜어준다. 증세를 통한 복지확대를 강조하는 사회민주당(SPD)이 이끄는 연정이 감세안을 내놓은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박가영 기자 park080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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