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의존도가 문제? 10년 황금기 끝난 獨경제 어디로…
[편집자주] 독일 경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기가 됐지만 들여다 보면 여러 요인들이 독일을 다시 '유럽의 병자'로 만들고 있다. 이런 독일의 모습에는 우리와 겹치는 점들도 있다. 독일 경제를 짚어본다.
독일은 제조업 비중이 20%에 달해 구조적으로 경기 사이클에 민감하다. 자동차, 공작기계, 화학 제품 등 경기 순환이 심한 제품의 수출에 특화돼 있어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다른 선진국들보다 민감도가 높다. 1990년대에도 독일은 자동차, 화학산업 등 '19세기식 혁신'에 집중한다는 비판을 들었다. 30년이 흘렀지만 같은 비판이 쏟아진다. 실제 팬데믹 이후 글로벌 소비는 제품보다 서비스에 집중되고 있고 중국의 경기침체까지 더해져 독일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올해 상반기 독일의 대중국 수출은 지난해보다 7.9% 줄었다. 최근 몇 년 간 중국에서 판매된 차량의 35~40%가 독일차다. 전체 독일의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2분기 기준 7.2%다. 대중 자동차와 차 부품 수출이 올해 1분기에 작년보다 24% 줄었고 화학제품의 수출도 12.5% 감소했다. 자동차 및 차 부품은 독일의 대중 전체 수출의 19%에 이른다. 이는 독일 전체 GDP에서 0.9%를 차지한다. 독일의 투자은행 베렌버그는 대중 수출감소가 올해 상반기 독일 GDP를 0.2%p 감소시킨 것으로 보고있다.
대중 수출 감소 우려에 더해 전기차 부문에선 아예 중국의 값싼 경쟁사들에게 시장 점유율을 뺏기고 있다. 제너럴리 인베스트먼트 유럽의 마틴 울버그는 "독일의 주요 수출상품인 자동차는 점점 더 경쟁이 치열해져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의 강점이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에서 혁신성은 미국의 테슬라에 밀리고 가성비에선 중국에 밀리는 형국이다. 프란치스카 팔마스 캐피털 이코노믹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독일 산업의 전망은 어둡다"고 한 마디로 요약했다.
독일은 2020년 들어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본격화돼 인력난 문제가 심각하다. 캐나다식 '이민 포인트' 제도를 도입해 고학력 이민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난해 우크라이나 난민 110만명이 유입되면서 인구가 150만명 늘어나는 이변이 연출됐지만 이중 50%가 전쟁이 끝나면 우크라이나로 돌아가길 희망한다. 이민에 반대하고 친러시아를 자처하는 극우정당(AfD) 지지율은 최근 20%까지 치솟았다.
전문가들은 독일의 경쟁력이 △인건비 상승 △높은 세금 △숨 막히는 관료주의 △공공서비스의 디지털화 부족 등으로 인해 꾸준히 약화됐다고 지적한다. 올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독일은 22위로 밀려났다. 10년 전에는 상위 10위권이었다.
독일 경제를 낙관하는 목소리도 있다. 1998년 독일을 '유럽의 병자'로 처음 묘사했던 홀거 슈미딩 베렌버그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가 대표적이다. 슈미딩은 독일의 실업률이 5.7%(8월 말)로 낮고 노동력 부족이 여전히 심각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는 "독일 경제의 원동력은 중국이나 자동차가 아니라 히든챔피언인 미텔슈탄트"라며 "에너지 가격 충격이 혁신의 물결을 불러 수많은 미텔슈탄트가 에너지 솔루션 분야 리더로 거듭나면 에너지 집약적 생산라인의 손실을 상당부분 상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슈미딩 역시 독일 정부의 과제로 에너지 정책의 불확실성 완화와 고부가 일자리 창출, 관료주의 개선을 들었다. 중국의 경기위축과 지정학적 위기에 대해선, 중국 밖으로 공급망을 재편성하기 위해 글로벌 기업들의 공작 기계 수요가 늘어나면서 독일에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봤다.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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