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당신의 영혼은 안녕하십니까[MD칼럼]
사형집행인은 과연 용서받을 수 있을까
[곽명동의 시네톡]
스탈린의 ‘피의 숙청’이 극에 달했던 1938년. 수십만 명의 인명을 앗아간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밀경찰 조직 엔카베데(NKVD)의 볼코노고프 대위(유리 보리소프)는 동료 조직원들에게 행해지는 심문을 이상하게 여긴다. 곧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는 것을 감지한 그는 비밀문서를 들고 탈출을 감행한다. 쫓기는 신세가 된 볼코노고프는 자신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자신이 저지른 충격적인 만행을 뉘우치고 피해자들의 유가족을 찾아 용서를 구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나타샤 메르쿨로바, 알렉세이 추포프 감독의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는 죄와 벌 사이의 심연을 탐구한다. 실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 떠오른다. 소설 속 라스콜리니코프는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고뇌하다 자수를 하고 시베리아 유형을 떠난다. 낡은 세계에서 죽음을 체험하는 라스콜리니코프가 부활과 갱생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 영화의 볼코노고프 역시 잘못된 국가 시스템에서 죽음과 같은 고통을 체험한 뒤에 구원을 찾아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닮았다.
영화가 시작하면 볼코노고프와 동료들은 즐겁게 떠들면서 배구를 하다가 갑자기 개 짖는 흉내를 내는가 하면 서로의 얼굴을 때리고 레슬링까지 한다. 오프닝신은 세 가지 뜻을 갖고 있다. 죄 없는 사람을 고문하고 처형하는데 익숙한 비밀경찰들은 타인에게 공격적이고 ‘죄의식’이 없다는 것. 개 흉내는 그들이 ‘스탈린의 사냥개’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들은 모두 빨간색 츄리닝을 입고 있는데, 이와 같은 의상은 당시 소련이 전체주의 국가라는 것을 드러낸다. 볼코노고프는 다음 타깃이 자신이라는 것을 직감한 순간, ‘악의 소굴’을 탈출한다.
그의 절친은 이미 죽었다. 노숙자 무리에 숨어있던 볼코노고프는 느닷없이 시체를 땅에 묻는 일에 동원된다. 죽은 절친은 땅을 뚫고 일어나 희생자 가족을 찾아가 단 한명에게라도 용서를 받으면 지옥행을 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대목에서 미하일 불가코프의 마술적 사실주의가 일렁인다. 창자가 끊어질듯한 고통을 이토록 실감나게 전달하기란 쉽지 않다. 볼코노고프가 저질렀던 수많은 학대와 만행이 피해자들의 영혼을 파괴하고 목숨까지 앗아갔다는 사실이 그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통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볼코노고프는 지옥이 아니라 천당에 가기 위해 유족들을 찾아다닌다. 전염병을 만든다는 누명을 쓰고 죽은 의사의 딸, 독일인이라는 이유로 살해된 남편의 부인, 반역죄로 죽음을 맞은 아들의 아버지, 낙태에 관한 농담을 했다는 이유로 끌려가 죽은 부인의 남편, 아무런 이유 없이 끌려가 죽은 아버지의 아들인 소년, 그리고 딸이 잡혀간 뒤 다락방에 올라가 식음을 전폐한 노파를 찾아가 용서를 구한다. 이들 가운데 과연 볼코노고프를 용서해줄 유족이 있을까.
처음 볼코노고프는 지옥에 가기 싫다는 ‘이기적인 행동’으로 유족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그들을 만날수록 자신이 용서받기 힘든 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깨닫게된다. 두 감독은 “볼코노고프는 피해자 가족을 만나면서 타인의 고통을 체감하고 진정으로 뉘우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영화는 영적 스릴러의 요소를 지닌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우화”라고 말했다. ‘과연 사형집행인을 위한 천국이 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 영화에 담겨있다.
‘우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현대사회에도 울림이 크다. 볼코노고프처럼 신체적인 폭력을 가하지는 않지만, ‘갑질’ ‘학대’ 등의 정신적 폭력으로 타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가해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볼코노고프는 잘못을 깨닫고 뉘우쳤다. 그러나 현대의 가해자들은 ‘조직을 위해 또는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다’는 논리로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되레 큰소리를 치며 죄의식 없이 살아간다. 이 영화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당신의 영혼은 안녕하십니까.”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