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수 방류, ‘자연에 버려도 된다’ 국가가 못박은 역사적 순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왜냐면] 김태우 | 경희대 기후-몸연구소·한의과대 교수, 인류학자
인간에게 자연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곳과 원하지 않는 것을 버릴 수 있는 곳의 대명사였다. 에너지를 얻기 위해 자연에서 화석연료를 채굴해 왔다. 태우고 남은 것은 대기로 내보냈다. 필요한 것은 가져오고, 더이상 유용하지 않은 것은 버리는, 획득과 투기(投棄)가 모두 가능한 장소가 자연이었다. 2023년 8월24일 후쿠시마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는 획득과 투기의 자연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장면이다. 지구의 생명들이 돌이킬 수 없는 재난에 직면한 기후위기에도 전혀 변하지 않은, 자연에 대한 관점을 드러내는 사건이다. 여전히 자연은 이용·전용할 수 있는 곳이고, 쓰고 남은 것들을 버릴 수 있는 곳이다.
획득과 투기의 자연관이 인류세를 낳았다. 기본적으로 인류세는 인간의 투기가 지구에 흔적을 남기는 시대다. 땅에는 수많은 닭뼈들이 묻히고, 바다에는 플라스틱이 섬을 이루고, 대기 중에는 인간 활동에 의해 과도하게 배출된 탄소가 흡수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시대다. 인류세의 흔적들은 자연과의 관계를 훼손하는 것들로 돼 있다.
기후위기의 인류세에서 최우선의 과제는, 지금까지의 자연 개념에서 벗어나, 기본적으로 상호의존일 수 밖에 없는 인간-자연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지금의 심각한 기후변화는, 자연이 만든 기후라는 터전에 의지해 인간들이 살아왔다는 것을 뼈아프게 상기시키고 있다. 인간과 자연이 기본적으로 상호의존의 동맹 관계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동맹을 해칠 때 기록적 고온, 산불, 가뭄, 물난리, 치명적 질병의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지금의 기후변화는 말하고 있다.
이번 방사능 오염수 방류는, 심각한 기후변화의 와중에도 인간사회의 이득을 위해 더 넓은 관계의 맥락을 무시하는, 여전히 지속하는 국소적 시야를 드러낸다. 육지에 보관할 경제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미국 일본과의 동맹을 위해, 또한 중국 적대적 외교전략을 동아시아에서 실현하기 위해, 자연과의 동맹 관계를 철저히 무시한다. ‘자연은 자연이고 인간은 인간이다, 바다는 바다고 도시는 도시다, 자연은 자연이고 외교는 외교다’라는, 자연 세계와 인간 세계를 분리분절하는 언사가 오염수 방류의 기저에 있다.
후쿠시마에서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는 특별하다. 지금까지의 탄소배출, 플라스틱 쓰레기와도 다르다. 이번처럼, 국가기관이 나서서 투기할 수 있음을 명시한 적은 없었다. 우방들이 나서서 투기를 응원하고 지지한 적이 없었다. 이것은 국가 단위로 되어있는 지금의 권위적 정치집단이, 자연에의 투기를 공식화하고, 용이하게 한 세계사적 장면이다. 그 국가들이 기후문제를 논의하는 당사자라는 모순적 사실은 이번 방류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방사능 오염수 방류가 역사적 순간인 것은, 인간과 자연의 왜곡된 관계가 이 기후위기의 수많은 경고 속에서도 여전히 지속하고 있음을 선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투기할 수 있음으로써의 자연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우려되는 것은, 이번 방류가 길을 열어놓은 앞으로의 투기들이다. 그 투기들이 현실화시킬 기후위기의 재앙이다.
후쿠시마의 방사능 오염수 방류는, 발암물질에서부터 온실가스, 미세 플라스틱까지 몸과 자연의 수용 한계치를 넘어서는 계속되는 투기가 만드는 파국의 징조에도 여전히 더 버릴 것을 궁리하고, 합의하고, 외교하는 인간 중심의 논리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가 지금 당장 몸에 유해하지 않더라도 축적된 투기가 지구상의 생명들을 고통과 질병으로 몰아가고 있는, 직면한 재앙에서도 배우지 못하는 초근시안을 드러낸다. 기후재난에 치러야 할 거대한 비용 앞에서 국소적 이득만을 따지는 인간사회편의주의가 여전히 건재함을 말하고 있다. 목숨을 건 자연과의 동맹 훼손이 지속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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