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공간에서 감정을 느낀다” 뇌 안의 내비게이션 연구, 치매 극복 길 연다
“쥐는 거리만 파악, 인간은 공간 속 기억까지 판단”
세계적인 뇌과학자가 한국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서 치매를 정복하려면 설치류와 영장류가 길을 찾는 뇌 기능의 차이부터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2014년 쥐의 공간 인지 과정을 밝힌 연구자들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으면서 치매 극복의 단서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그 연구만으로는 인간의 뇌질환을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반박한 것이다.
에드먼드 롤스(Edmund Rolls) 영국 워윅대 계산신경학과 교수는 지난 6일 ‘2023년 한국뇌신경과학회 정기국제학술대회’ 기조 강연에서 “쥐와 달리 인간은 공간의 물리적 정보뿐 아니라 감정 기억까지 파악한다”고 밝혔다. 롤스 교수는 사람의 공간 인지와 기억, 감정을 연구하는 뇌신경과학 분야의 석학이다. 컴퓨터 과학과 신경과학을 융합해 모델링으로 뇌 기능을 분석하는 계산신경과학을 개척했다.
알츠하이머 치매 같은 뇌질환에 걸리면 가장 먼저 자주 길을 잃는 증상이 나타난다. 뇌에서 공간 인지와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인 해마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해마는 특정 세포를 작동해 공간의 특징을 기억한다. 이를 통해 마치 위도와 경도를 확인하듯 전체 공간에서 특정 지점이 어딘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해마가 공간을 인지하고 기억하는 능력은 그동안 ‘장소 세포(Place cell)’와 ‘격자 세포(Grid cell)’로 설명됐다. 존 오키프(John O’Keefe)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교수는 1970년대에 특정 위치에서만 작동하는 장소 세포를 처음 밝혔다. 뇌가 길에서 마주치는 사물이나 특정 위치마다 서로 다른 표시를 하는 셈이다.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특정 위치를 파악하는 동시에 전체 공간에서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도 알아야 한다. 뇌에서 격자 세포가 그런 일을 한다. 노르웨이 과학기술대의 에드바르 모제르(Edvard Moser)와 메이-브릿 모제르(May-Britt Moser) 교수 부부가 2005년 생쥐의 뇌가 공간을 일정한 간격으로 나눠 파악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오키프 교수와 모제르 부부는 뇌세포 속 ‘내비게이션’을 발견한 공로로 201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연구는 어디까지나 설치류 실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롤스 교수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기존 뇌 내비게이션 기능을 설명하는 이론에서 한발 나아간 ‘공간 시야 세포(Spatial view cell)’ 개념을 제시했다.
롤스 교수는 인간과 같은 영장류의 뇌를 쥐의 공간 인지와 기억 원리로 연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영장류와 설치류가 공간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가장 큰 차이점은 시야각이다. 쥐는 눈이 좁고 기다란 머리 양쪽에 있어 시야각이 굉장히 넓지만, 영장류는 얼굴이 평면이라 두 눈이 모두 앞을 보고 있어 시야각이 좁다.
롤스 교수는 시야각 차이가 무언가를 응시할 수 있는 능력의 차이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하면 설치류는 가만히 있어도 모든 걸 볼 수 있지만, 영장류는 일부러 눈을 한 곳으로 향해야 볼 수 있다. 즉 인간은 특정 목적을 가지고 공간을 본다는 것이다. 롤스 교수는 “영장류는 시야각으로 인해 공간의 특징을 정확히 응시하고 이해한다”며 “물체를 감지하는 메커니즘을 사용해 공간에 대한 기억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사람의 공간 기억은 다른 영장류보다 좀 더 특별하다. 공간에 담긴 감정도 느낀다. 사람의 해마는 눈썹 바로 뒤에 위치한 안와전두엽과 상호작용을 한다. 안와전두엽은 사람이 특정 현상에 대한 감정을 느낄 때 활성화하는 부분이다. 어떤 공간을 생각하면서 추억에 잠기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 모두 공간인지를 담당하는 해마와 안와전두엽이 연결됐기 때문이다.
롤스 교수는 “사람의 공간인지는 안와전두엽의 감정적 보상 시스템에서 해마의 기억 시스템으로 들어가 가치를 판단하는 과정”이라며 “여러 영역이 연결돼 하나의 목적을 이루는 인간의 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컴퓨팅 시스템처럼 분석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가 계산신경과학을 개척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과 다른 동물의 뇌기능 차이를 이해하면 치매 같은 퇴행성 질환 치료법의 기반이 될 수 있다. 이인아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교수는 “쥐 실험에 기반한 공간 인지 이론에서 한 단계 나간 롤스 교수의 연구는 치매 치료의 이론적 기반이 될 수 있다”며 “특히 치매는 환자의 경험에 따라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실제로 뇌에서 어떤 이상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면 정밀 의료가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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