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산 "위대한 독자들이 나를 일으켜…27년 걸린 군함도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소설"

김진형 2023. 9. 7.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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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산 작가의 장편소설 '군함도'는 출간까지 27년이 걸렸다.

작가는 "누가 15세 소년을 병들고 늙은 70세 노인으로 만들어 남의 나라 땅에서 죽어가게 만들었는가"라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아픔의 '재연'이 아닌 '복원'의 형식으로 소설을 완성했다.

한수산 작가의 운명적인 일본 체류는 '1981년 한수산 필화사건'으로 시작한다.

'작가 한수산, 일본으로 이민'이라는 기사가 쏟아지자 독자들은 작가의 책을 잇따라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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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헌학술원이 주최한 ‘시민 지성, 한림연단’이 지난 6일 한림대에서 열려 한수산 작가가 강의했다.

한수산 작가의 장편소설 ‘군함도’는 출간까지 27년이 걸렸다. 피해 당사자와 현장을 걸으며 취재했던 유일한 소설이었다. 취재 도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70대가 된 원폭 피폭자이자 소년 징용공 고 서정우 씨와의 만남이었다. 작가는 “누가 15세 소년을 병들고 늙은 70세의 노인으로 만들어 남의 나라 땅에서 죽어가게 만들었는가”라는 생각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아픔의 ‘재연’이 아닌 ‘복원’의 형식으로 소설을 완성했다. ‘군함도’는 지나간 역사가 아니다. 오늘을 일깨우는 현실이다.

인제 출신 한수산 소설가가 지난 6일 한림대를 찾았다. 도헌학술원(원장 송호근)이 마련한 ‘시민지성 한림연단’ 2기 첫 강연자로 나선 그는 ‘나의 삶, 나의 소명’을 주제로 일본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를 다룬 소설 ‘군함도’ 이야기를 풀어냈다.

 

▲ 한수산 소설 ‘군함도’ 표지

한수산 작가의 운명적인 일본 체류는 ‘1981년 한수산 필화사건’으로 시작한다. 신문에 연재했던 소설 ‘욕망의 거리’ 때문이었다. 그는 이 작품으로 인해 보안사령부로 끌려가 모진 고문 끝에 풀려나왔다. 작품에 문제가 있었다면 ‘대머리 군인’을 비하했다는 내용 정도였으나, 북한의 지령을 받아 반정부 단체를 조직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슬픔을 넘어선 허무였다. 그전까지는 인간을 사랑했기 때문에 글을 써왔는데, 나는 이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이 사건은 7년간 보도되지 않았고 작가는 정신착란을 겪으며 절필을 거듭했다. 다음 대통령은 보안사령관 출신 노태우였다. 작가는 ‘과연 이게 나의 조국인가’라는 고민 속에 최소한 해당 정권까지는 한국에서 나가 있겠다고 결심했다. 중국과 일본, 미국을 고민하던 중 1988년 일본으로 출국, 4년간 도쿄에서 체류했다. 일제강점기를 제대로 그린 소설이 없었고, 학교나 사회에서 배우는 일본이 굴절돼 있을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이 와중에 작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위대한 독자’들이었다. 이민이 아닌 체류였지만, ‘작가 한수산, 일본으로 이민’이라는 언론사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 독자들은 작가의 책을 잇따라 구입했다.

 

▲ 도헌학술원이 주최한 ‘시민 지성, 한림연단’이 지난 6일 한림대에서 열려 한수산 작가가 강의했다.

한수산 작가는 “서점 구석, 먼지에 덮여 있던 옛 책까지 독자들이 구입했다. 60만부 이상이 팔렸는데, 놀라운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작가를 잊지도, 버리지도 않은 독자들의 눈물겨운 사랑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다짐으로 무엇도 새로 사지 않았던 절약과 검소의 생활을 했다. 이후 일본의 고서점에서 오카 마사하루 목사의 ‘원폭과 조선인’을 읽고, 군함도 취재를 시작했다.

한 작가는 “나가사키 원자폭탄으로 피폭된 조선인이 2만 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부분 강제 징용으로 끌려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19~20세 무렵 끌려가 해저 700m에서 탄을 캤다”고 전했다.

그 중에서도 서정우 씨는 ‘한국인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고난’을 겪은 인물이다. 작가는 “돌아가신 서 씨와의 만남과 작별을 잊을 수 없다. 그에게 ‘여기서 울었다’, ‘이 절벽에서 죽으려 했다’ 등의 말이 나왔고, ‘저기서 너무 배가 고파 울었다’는 말이 가장 슬펐다”고 했다.

 

▲ 한수산 소설 ‘까마귀’ 표지

한 작가는 1993년 ‘해는 뜨고 해는 지고’라는 작품으로 3년간 신문에 소설을 연재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첫 장면만 남겨둔 채 7000매의 원고를 다 버리고 소설을 썼다. 그렇게 2003년 완성된 소설이 5300매 분량의 5권짜리 장편 ‘까마귀’였다. 하지만 이조차 부실을 통감했다. 다시 3500매 분량의 원고를 덜어내고, 1500매 분량의 원고를 새로 써 2016년 나온 작품이 ‘군함도’다. 15권 분량의 장편을 쓸 욕심도 있었지만, “함축된 함의를 통해 상징적으로 시대의 진실”을 그려내기로 한 것이다.

소설 ‘군함도’의 주요 배경은 춘천이다. 춘천고를 졸업한 한수산 작가는 “군함도의 3분의 1은 춘천이다. 두 핵심 주인공의 출신지와 성장기를 소양강을 낀 춘천으로 새로 설정하고 지역적 영향을 심도 있게 배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 ‘군함도’는 내 소설과 관련이 없지만 춘천의 예술단체 문화강대국이 공연한 연극 ‘까마귀’의 배우들은 모두 살을 빼고 금니까지 뽑는 등 열연을 펼쳤다. 모두 고마웠다”고 인사하기도 했다.

아픈 역사지만 희망도 있었다. 원폭 투하 이후 일본인들은 ‘사람 살려’라고 외치는 조선인들을 싣고 가다 버렸지만, 조선인 징용공들은 자발적으로 구조대를 조직해 사람들을 도왔다. 한수산 작가의 목소리에는 조국의 이름으로 갔던 곳에서 경멸과 차별 속에 버려져야 했던 이들에 대한 울분이 담겨 있었다.

작가는 말한다. “이것은 써야 하는 소설이 아니라 쓰지 않으면 안되는 소설이었다.”

김진형 formation@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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