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위로 퍼지는 둥둥 소리…칼군무로 물살 가르는 용머리 배
'선장' 드러머 역할 막중…속도 변화 주며 배 전체 조율해
(부여=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용머리를 단 배에 총 12명이 탄다.
머리에는 북을 치는 드러머가, 꼬리에는 키잡이(스틸러)가 자리 잡아 서로를 마주한다.
그사이에 쭈그려 앉은 10명이 수면을 헤치며 노를 당기는 데 여념이 없다.
이들 중에 정면을 바라보는 이는 없다. 45도 각도로 고개를 숙인 채 묵묵히 노를 젓는 선수들의 시선은 수면이나 앞사람의 등에 닿는다.
배가 물살을 가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드러머가 내는 경쾌한 북소리가 다른 소리를 압도해서다.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둥둥 소리에 주의를 빼앗길 무렵이면 어느새 100m가 지난다.
카누의 세부 종목으로 분류된 용선(드래곤 보트)은 분업이 확실한 운동이다.
스틸러가 방향을 잡고, 드러머가 속도를 조절하며 경기 운영을 맡는다.
나머지 패들러들은 다른 모든 것을 잊고 노를 젓는 행위에만 집중한다.
7일 오후 충남 부여군 백마강 카누 훈련장에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나서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이 한창이었다.
언뜻 보기에는 뱃머리에서 패들러들과 마주 앉아 북만 치는 드러머가 가장 편한 듯하다.
그러나 드러머의 임무는 막중하다.
취재진을 모터보트에 태우고 훈련 중인 대표팀을 쫓아간 하재흥(강원카누연맹) 여자 대표팀 감독은 "드러머는 배로 치면 선장"이라고 설명했다.
하 감독은 "드러머가 선수들을 통솔해서 리듬을 조절한다"며 "호흡에 맞춰 북을 친다. 경기 양상에 따라 속도에도 변화를 준다"고 말했다.
실제로 하 감독이 "이제 강하게 올려"라고 지시하자 여자팀 드러머 이현주(한국체대)는 북을 더 빠르게 내려치며 기합 소리를 냈다.
때로는 혼자 다른 박자로 노를 젓는 패들러를 지목하며 배 전체가 한 치의 오차 없는 '칼군무'를 이루도록 조율했다.
고개를 박고 배를 움직이는 패들러를 반대편에서 조망하는 드러머만 할 수 있는 일이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 정식종목이 된 용선은 중국 광둥성 주장(珠江) 삼각주 일대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본토' 중국에서 열리는 만큼 이번 항저우 대회에서도 이견 없이 채택됐다. 남녀 200m, 500m, 1,000m 등 6개 메달 레이스가 펼쳐진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 남북 단일팀이 꾸려져 여자 500m 금메달, 여자 200m와 남자 1,000m 동메달을 수확한 대표팀은 이번에도 메달을 노린다.
1,000m 경주에 특화된 선수들로 팀을 꾸렸다는 남자 대표팀의 박민호(서산시청) 감독은 아예 금메달을 목표로 한다.
박 감독은 "선수 구성을 보면 목표를 금메달로 두고 도전해야 한다"며 "2018년 남북 단일팀보다 남자부는 전력이 더 강해졌다"고 자신했다.
남자팀의 드러머 심현준(동국대)은 실제로 이현주보다 더 빠른 간격으로 북을 때렸다.
그러자 패들러들이 북소리를 따라가려 힘을 쥐어 짜냈다. 25초 만에 100m를 '전력 질주'한 것이다.
하 감독은 "몇 년씩 준비해온 중화권, 동남아시아 팀들은 사실상 1,000m 전 구간을 전력 질주한다"고 말했다.
박 감독도 "우리는 아직 '속도 강화' 훈련을 시작하기 전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이들 감독에 따르면 국제 무대에서 경쟁하는 팀들은 200m를 40∼45초에 주파한다고 한다. 금메달을 노리는 대표팀으로서는 갈 길이 멀다.
지난달 29일 본격적인 훈련을 시작한 터라 아직 대표팀의 기량은 '정점'에 이르지 않았다.
하지만 박 감독은 선발된 선수들의 기량을 믿는다. 1,000m 경주가 익숙한 선수들로 꾸린 만큼 점차 용선에 적응하면서 기록이 좋아질 일만 남은 것이다.
박 감독은 현역 시절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이 종목에 나서 예선에서 1위(3분35초646)를 차지한 바 있다.
당시 동메달을 땄던 박 감독은 "그때도 훈련할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았다"며 기록 향상을 자신했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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