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대통령, 러 면전서 "책임 더 무겁다"…푸틴에 연이틀 경고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7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참석해 "모든 유엔 회원국들은 이러한 안보리(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를 준수해야 하며 그러한 결의안을 채택한 당사자인 안보리 상임 이사국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러시아 정상회담을 앞둔 블라디미리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날에 이어 계속 압박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주요 지역과 국제정세에 대한 우리나라의 입장을 표명하며 이같이 밝혔다. 동아시아정상회의는 아세안과 한일중, 그리고 호주·뉴질랜드·인도와 미국, 러시아 등 18개 나라가 참여해 안보 현안 등을 논의하는 전략적 성격의 포럼이다.
윤 대통령은 회의에서 "한국은 아세안 중심성에 대한 확고한 지지를 바탕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자유, 평화, 번영을 위해 아세안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과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정확히 같은 곳을 지향하고 있다. 한국과 아세안 모두 포용, 신뢰, 호혜의 원칙 하에 규칙 기반 질서 확립을 위한 연대를 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세안의 인태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인도-태평양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AOIP)'과 한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같은 맥락이라는 설명이다.
이날 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남중국해, 미얀마 문제, 그리고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다시 한번 명확히 확인했다. 먼저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이것은 유엔 헌장을 비롯한 국제법에 대한 위반 행위"라며 △70여년 전 불법 침략에 의해 국가 존망의 위기를 겪은 한국의 경험 언급 △7월 키이우 방문 및 '우크라이나 평화연대 이니셔티브' 발표 사실 공유 등을 언급했다.
남중국해에 대해서는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국제법 원칙"이라며 △역내 핵심 해상교통로인 남중국해에서 규칙기반의 해양질서 확립 필요성 강조 △국제법 원칙 존중 및 각국 권리 보장 하에서 남중국해 행동준칙 수립 기대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른 항행과 비행의 자유를 수호하면서 아세안과 해양안보 협력 확대 예정 등을 말했다.
미얀마 문제에는 "지속되는 폭력 사태와 그에 따른 인도적 위기는 아세안의 단결과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며 △폭력 중단과 포용적 대화를 통한 아세안의 해결방안 지지 △미얀마 국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실시 의사 표명 등을 밝혔다.
북핵 위협에 대해서는 전날 한-아세안 정상회의, 아세안+3(한일중) 정상회의에 이어 이날 역시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은 중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자 세계평화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며 "오늘 회의에 참석하신 모든 국가를 겨냥하고 타격할 수 있는 실존적인 위협이다. 북한의 핵 개발 의지보다 이를 저지하려는 국제사회의 결의가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은 불법적인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로 인해 유엔 안보리로부터 가장 엄격하고 포괄적인 제재를 받고 있다"며 "따라서 모든 유엔 회원국들은 이러한 안보리 제재 결의를 준수해야 하며 그러한 결의안을 채택한 당사자인 안보리 상임 이사국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핵, 미사일 개발의 주요 자금원인 가상자산 탈취, 해외노동자 송출, 해상환적 등 북한의 불법 행위를 적극 차단해야 한다"며 "우리는 북한 독재정권의 권력유지 수단으로 동원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참혹한 인권 실상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의 WMD(대량살상무기) 문제는 곧, 북한의 인권 문제"라고 말했다.
새로 구축된 한미일 협력체를 기반으로 국제사회에서 공동리더십을 발휘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윤 대통령은 "한미일을 하나로 묶는 동력은 바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자유, 평화, 번영에 대한 책임감"이라며 "보편적 가치에 따른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확립하는데 책임있게 기여하겠다.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역내 기여를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전날에도 한-아세안 정상회의 자리에서 "국제사회의 평화를 해치는 북한과의 군사협력 시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경고를 날렸다. 윤 대통령의 강경한 메시지에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과 맞물려 급박하게 돌아가는 동북아 정세가 반영됐다. 외신 등은 미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열차를 타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해 푸틴 대통령과 회담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달 10일부터 13일까지 극동연방대학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서 푸틴 대통령과 만나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해주는 대신 북한이 필요한 군사위성, 핵잠수함 기술과 식량 지원 약속 등을 받아낼 것이란 관측이다.
규범에 의한 국제질서를 정면으로 파괴하고 있는 러시아가 핵 위협을 날로 노골화하고 있는 북한과 직접적인 군사 거래를 본격화한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두 나라 중 한 나라(러시아)는 다섯 개(안보리 상임이사국)중 하나인 세계 평화와 안보에 대해 비토권을 갖고 가장 중요할 때 영향력을 행사해야 하는 나라고 다른 한 나라(북한)는 20여년 동안 유엔 안보리가 가장 엄중하게 보고 가장 혹독한 결의안을 시행하고 있는 당사자"라며 "이 두 나라가 만나서 협력하는 것이 아이러니다. 대한민국의 안보에 위해를 가할뿐 아니라 국제 안보의 레짐(체제), 규약과 합의사항을 일거에 모두 거스르는 행동이기 때문에 엄중하게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미국을 포함해서 한국은 이 문제에 대해서 꽤 선제적으로 오랫동안 유심히 말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아세안 관련 회의는 △10개 회원국의 아세안과 한국의 정상회의 △아세안과 한일중 3국의 정상회의 △아세안과 한일중, 그리고 호주·뉴질랜드·인도와 미국, 러시아가 참여하는 동아시아정상회의 등이 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박종진 기자 fre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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