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 없는 R&D, 비효율 걷어낼 때”...몸집만 불리다 뒤늦게 체질개선 나선다는 과기정통부
예산 증액은 수탁과제서, 삭감은 주요사업…논란 가능성
정부가 내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 과학계의 비효율을 덜어내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간 투자가 늘어도 성과가 나오지 않았던 만큼 효율적인 운영으로 과학기술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10년 넘게 투자에 비해 성과가 나지 않은 분야에 대한 체질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된 상황에서 늑장 대응이라는 지적과 함께 자칫 효율성의 잣대로 장기 투자가 필요한 기초과학 투자가 소홀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주영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7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대회의실에서 “내년 정부 R&D 예산 삭감은 투자 대비 성과가 적었던 국내 과학기술계의 비효율을 걷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주 본부장은 “본부장에 취임할 당시 ‘코리아 R&D 패러독스’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며 “투자가 늘어도 성과는 늘지 않는 국내 과학계를 표현하는 단어”라고 설명했다.
주 본부장은 “출연연이 그동안 국가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데는 동의한다”며 “다만 지금은 국가 간 기술패권 경쟁으로 출연연이 전략기술 연구에 집중해야 한다는 기조 아래에 전체적인 예산을 재분배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R&D에서 코리아 패러독스 문제는 주 본부장의 말과 달리 한두 해 일이 아니다. 2010년대 들어 국내에선 R&D 성공률이 98%인 상황에서 투입이 성과로 이어지지 않은 문제를 어떻게 혁신으로 해결할 것인지 과학기술계에서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됐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R&D 예산을 늘리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정부 R&D 불신론에 명분만 준 셈이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달 22일 내년도 국가 R&D에 올해 예산과 비교하면 16.6% 줄어든 25조9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하면서 역대 최고 수준의 예산 삭감을 단행했다. 1조8000억원 규모의 예산을 일반 재정사업으로 재분류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10.9%의 예산 삭감이 이뤄지는 셈이다.
국내 과학계의 연구 성과가 투자 대비 낮은 수준이었다는 지적은 지난 십수 년간 꾸준히 나오고 있었다. 이런 지적이 실제 연구비 삭감으로 이어진 것은 33년만에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 정부에서는 꾸준한 투자와 지원으로 과학기술을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효율화를 이유로 대대적인 예산 삭감을 강행한 것이다.
주 본부장은 이번 예산 삭감의 이유로 ‘나눠먹기식 R&D 카르텔’과 ‘출연연의 비효율적 연구’를 꼽았다. 그는 “산업계에 지원하는 일부 R&D 예산으로 경쟁력 없는 기업을 유지하거나 연구 제안서를 대신 써주는 브로커 업체가 있는 만큼 카르텔적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출연연도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략기술 연구를 효과적으로 했느냐에 대한 비판은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출연연 예산 삭감의 또다른 이유로는 최근 급증한 연구비가 지목됐다. 정희권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조정관은 “최근 출연연의 인력은 거의 늘지 않은 상황에서 수탁과제 예산이 40% 가량 늘었다”고 지적했다.
수탁과제는 정부, 공공기관, 민간 단체로부터 위탁 받는 연구 사업을 말한다. 수탁과제 예산 증가는 2019년 일본의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수출 금지와 2020년 이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단기적인 연구 사업이 많아진 탓이다. 다만 내년 출연연 예산은 자체 연구를 기획할 수 있는 주요사업비가 10% 이상 삭감됐다. 일시적인 사업의 증가로 자체 예산을 삭감한 점에서는 논란이 예상된다.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예산은 20% 이상 삭감하는 대신 12대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지원은 일부 늘어난다. 정부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 전략기술 연구비 1000억원을 배정하고 출연연간 경쟁을 통해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정 조정관은 “국가전략기술을 중심으로 수탁과제도 늘어나는 만큼 삭감된 연구비 만큼은 벌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 본부장도 “대표적인 국가전략기술 분야인 인공지능(AI)과 우주 관련 예산이 각각 9%, 10.2% 증액됐다”며 “바이오, 양자를 중심으로 국제 협력 예산도 증액했다”고 말했다.
이번 예산 삭감이 출연연에서 박사 후 연구원 인력을 줄이고 신진 연구자 성장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충분한 지원을 준비하고 있다면서도 연구 효율화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주 본부장은 “신진 연구자에 대한 지원은 계속 늘려 나갈 계획”이라며 “다만 실제 연구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이 예산 삭감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잘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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