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주인공의 기준을 허물다…‘마스크걸’ 이한별

남지은 2023. 9. 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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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배역’ 천연덕스럽게 연기…“나만의 길 만들겠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스크걸’에서 김모미로 출연한 이한별은 원작 웹툰과 비슷한 느낌으로 시청자들한테 사랑받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저한테 또 일이 들어오겠죠?”

막 주목받기 시작한 신인인데 마냥 들떠있지 않았다. 지금 이 관심은 ‘아주 특별한 경우’라고 여기는 듯했다. 지난달 18일 공개된 넷플릭스(OTT) 드라마 ‘마스크걸’의 주인공 이한별 얘기다. 지난 5일 한겨레 사옥에서 만난 이한별은 “‘마스크걸’이어서 제가 주연을 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캐스팅할 때 원작 웹툰 속 인물과 닮았는지도 중요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한별은 웹툰 팬 사이에서 주인공 김모미와 ‘싱크로율(비교되는 대상들이 들어맞는 비율) 100%’ 소리를 듣고 있다. 배우로서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이한별한테는 ‘웃픈’ 얘기이기도 하다. 김모미는 극 중 설정이 ‘못생겨서’ 연예인 꿈에 도전도 못 해보고 마스크를 쓴 채 인터넷 방송을 하는 인물이다.

“처음엔 싱크로율이 높다는 말이 칭찬인가 했어요.(웃음) 사람들이 저를 원작 속 김모미로 받아들여 주는 거라 다행이라 여겼어요. 또 배우 세명이 한 인물(김모미)을 연기하는 걸 우려했던 (관계자)분들이 절 보고 그(3인1역) 결정을 납득한 게 안심이 됐어요.(웃음)”

‘못생긴 김모미’와 닮은 이한별의 등장은 한국 드라마에서 주인공 섭외 기준이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그동안 외모로 놀림당하는 주인공은 ‘예쁘고 멋진’ 배우들이 특수 분장을 하고 연기했다. 2015년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에서 황정음은 주근깨와 폭탄머리로 등장했고, 2020년 ‘여신강림’에서 문가영은 안경을 쓰고 주근깨를 그렸다. 2008년 영화 ‘미스 홍당무’도 마찬가지. ‘마스크걸’에서 일반적으로 예쁘지 않은 배우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 자체는 도전이자 큰 변화인 셈이다. 한 지상파 방송 출신 프리랜서 피디는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은 예쁘거나 멋져야 시청자들이 본다는 게 정설이었다. 보통은 이한별을 캐스팅했더라도 유명한 나나나 고현정이 등장하는 장면을 먼저 보여주며 시선을 끈 뒤 성형 전 얘기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했다.

김용훈 감독은 드라마 첫 출연에서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모습에서 그의 가능성을 봤다고 한다. 넷플릭스 제공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전회를 공개하고, 시청자들도 드라마에서 사실감을 선호하게 되면서 가능해진 시도다.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무빙’에서 배우 이정하는 뚱뚱한 주인공 김봉석을 연기하려고 살을 30㎏ 찌웠다. 지난해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는 주인공인 장애인 역할에 실제 장애인이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배우한테는 이런 출발이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한별이 차분하게 배우로서 행보를 고민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배우로서 이렇게 시작해도 괜찮을까 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오히려 김모미로 인해 다음 작업을 했을 때 제가 더 달라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실제로 드라마에서는 광대를 더 도드라지게 하고 다크써클과 입 주변의 검은 색감을 강조하며 “못생겨 보이는 노력”을 더했다.

무엇보다 이한별한테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다. 극 중 김모미가 그랬듯 현실 연예계도 드라마 속 표현대로라면 ‘예쁘지 않은 이들’한테 좀처럼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 이한별도 김모미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나는 기회를 많이 얻을 이미지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어딘가 나만 보여줄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거라 믿고 현장에 대한 열망을 동력삼아 버텨온 거죠.” 김모미와 달리 이한별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려 해왔다. 그는 20대 초반에 연극을 보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고, 고향인 경북 구미에서 상경해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며 4~5년 동안 단편영화에 출연해왔다.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극중에서 ‘주인공의 외모가 별로’라는 설정을 ‘예쁜 배우’들이 주근깨나 안경 등으로 표현해왔다. 프로그램 갈무리. 방송사 제공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8월 한 달간 방영한 오티티 포함 드라마·영화에 출연한 배우 브랜드평판을 조사한 결과 이한별은 이병헌, 고윤정에 이어 3위에 올랐다. 이한별의 가능성을 엿본 염혜란, 유재명 등이 소속된 기획사와 전속 계약을 맺고 패션지 화보도 촬영했다. 이 모든 게 “얼떨떨하다”는 그는 대중의 반응을 확인하는 건 조심스럽다고 했다. “앞으로 제가 어떤 길을 가게 될지 모르지만, 영화 ‘윤희에게’처럼 감정을 켜켜이 쌓아가는 연기 등 배우로서 저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길을 만들어가겠습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마스크걸’에서 김모미로 출연한 이한별은 원작 웹툰과 비슷한 느낌으로 시청자들한테 사랑받는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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