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연금개혁, 작전계획 있나
국민연금 기금 고갈을 22년 앞두고 ‘더 많이 더 오래 내고 더 늦게 받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겠다는 재정계산위원회의 개혁안 초안이 나왔다. 정부는 국민 의견을 수렴해 10월 말까지 종합운영계획을 수립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과연 노후에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 많은 국민들이 고개를 갸웃하는 상황에서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정말로 개혁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시점이 ‘10월 말’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개혁은 결국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연금법이 개정되어야 완료된다. 정부가 국회에 국민연금 개혁안을 제출하는 시점은 제22대 총선을 160~170일쯤 앞뒀을 때다. 여든 야든 공천 과정에서 상당한 잡음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국회의원들이 연금개혁을 자신의 공천 여부라는 ‘정치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논의할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2003년에도 이랬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연금 기금이 2047년에 고갈될 것이라는 재정계산 결과가 나오자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안을 마련해 10월 30일 국회에 제출했다. 제17대 총선 168일 전이었다. 개혁안 제출 후 집권여당이 쪼개지고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소추를 당하는 등의 여러 일이 벌어졌고, 개혁안은 국회 임기 종료와 동시에 자동 폐기됐다.
상황이 나쁘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단식을 왜 하는지도 모르겠는 대표가 이끄는 거대 야당은 정부가 하는 모든 일에 반대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연금개혁도 비슷할 것이다. ‘더 내고 덜 받는다’는 개혁안을 강하게 비난하며 선거에 활용할 우려도 있다. 최소한 정부·여당으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은 얻어내려 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2015년에도 연금개혁을 이유로 정치적인 대가를 챙기려 했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했는데,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공무원과 관계 없는 일반 국민이 대상인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생애평균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을 40%에서 50%에로 높이자고 주장했다. 그러려면 보험료를 더 받아야 하는데,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또 민주당은 여당인 새누리당과 공무원연금 개혁을 협상하면서 행정부가 제정·개정하는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을 조건으로 걸었다. 결국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유승민 원내대표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민주당만 특별히 연금개혁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2007년 유시민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추진한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 개혁에 반대하고, 민주노동당(!)과 손잡았다. 두 당은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12.9%로 올리자는 정부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시켰다.
결국 한덕수 국무총리(그 때도 총리였다)가 한나라당의 수정안을 받아들여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라는 현재의 제도가 만들어졌다. 국민연금의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나라 공적연금보다 보험료를 지나치게 적게 낸다는 것인데, 한나라당이 일조한 것이다.
그래도 그 때는 여야가 중요한 현안을 협의하며 대안을 찾아가는 문화가 살아 있었고, 야당이 강하게 반대하면 정부가 차선책으로 야당안을 수용하는 여유가 있었다. 지금의 정부·여당, 거대 야당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국민연금 제도를 고치지 않으면 미래 세대는 소득의 3분의1을 보험료로 납부해 노인들을 부양해야 한다. 매년 태어나는 아이들은 줄어드는데, 젊었을 때 보험료도 별로 내지 않은 사람들이 청년들의 어깨를 짓누르게 된다. 이런 일을 막으려면 국민들을 설득하고 정치력을 발휘해 야당 협조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권은 시급해 보이지 않는 흉상 이전 같은 일로 지지율만 갉아먹고 야당의 ‘이유 없는 투쟁’에 이유를 만들어주고 있다. 연금개혁을 이루기 위한 작전계획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손덕호 사회정책팀장]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무비자에 급 높인 주한대사, 정상회담까지… 한국에 공들이는 中, 속내는
- 역대급 모금에도 수백억 원 빚… 선거 후폭풍 직면한 해리스
- 금투세 폐지시킨 개미들... “이번엔 민주당 지지해야겠다”는 이유는
- ‘머스크 시대’ 올 것 알았나… 스페이스X에 4000억 베팅한 박현주 선구안
- 4만전자 코 앞인데... “지금이라도 트럼프 리스크 있는 종목 피하라”
- 국산 배터리 심은 벤츠 전기차, 아파트 주차장서 불에 타
- [단독] 신세계, 95年 역사 본점 손본다... 식당가 대대적 리뉴얼
- [그린벨트 해제後]② 베드타운 넘어 자족기능 갖출 수 있을까... 기업유치·교통 등 난제 수두룩
- 홍콩 부동산 침체 가속화?… 호화 주택 내던지는 부자들
- 계열사가 “불매 운동하자”… 성과급에 분열된 현대차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