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상임이사국 무거운 책임”…북·러 접촉 앞두고 러시아 재차 압박
윤석열 대통령은 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문제를 두고 “모든 유엔 회원국은 안보리(안전보장이사회) 제재 결의를 준수해야 하며 그러한 결의안을 채택한 당사자인 안보리 상임 이사국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고 말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조만간 회담을 갖고 군사협력을 논의할 것으로 관측되는 상황에서 러시아를 향해 재차 비판 메시지를 낸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현지시간) 자카르타 컨벤션센터 열린 EAS에 참석해 “북한은 불법적인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로 유엔 안보리로부터 가장 엄격하고 포괄적인 제재를 받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한·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서도 “어떠한 유엔 회원국도 불법 무기거래 금지 등 유엔 안보리가 규정한 대북한 제재 의무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며 러시아를 압박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리창 중국 총리와의 회담에서도 상임 이사국으로서 중국의 역할을 당부해 중국에도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은 “회의에 참석한 모든 국가를 겨냥하고 타격할 수 있는 실존적인 위협”으로 규정했다. 이와 함께 “중대한 안보리 결의 위반” “세계 평화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짚었다. 윤 대통령은 구체적인 대응책으로는 “핵·미사일 개발의 주요 자금원인 가상자산 탈취, 해외노동자 송출, 해상환적 등 북한의 불법 행위를 적극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문제는 곧 북한의 인권 문제”라고 했다.
한·미·일 관계 격상도 거듭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한·미·일 ) 3국은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면서 “한·미·일을 하나로 묶는 동력은 바로 인도·태평양 지역의 자유, 평화, 번영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대한민국은 보편적 가치에 따른 규칙 기반 국제질서를 확립하는데 책임있게 기여하겠다”고 했다. 캠프 데이비드 3국 회담 뒤 첫 다자회의 무대에서 3국 공조를 국제적으로 각인하려는 뜻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남중국해 문제 등 주요 역내 정세에 대한 한국 입장 표명도 이뤄졌다. 윤 대통령은 중국과 아세안 일부 국가가 영유권 마찰을 빚는 남중국해 문제를 두고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국제법 원칙”이라며 “협상이 진행 중인 남중국해 행동 준칙이 국제법 원칙을 존중하는 가운데 각국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도록 수립될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회담 때 3국이 중국을 직접 명시해 비판 입장을 밝힌 것의 연장선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침공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행위라고 확인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지난 7월 우크라이나 방문 때 발표한 ‘우크라이나 평화연대 이니셔티브’를 언급하고 “향후 우크라이나의 재건 복구 노력에 책임있게 기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얀마 문제를 두고는 폭력 사태와 인도적 위기에 우려를 제기하고 인도적 지원 의사를 표명했다.
윤 대통령은 한·아세안 관계를 두고 “인·태에 대한 아세안의 관점과 한국의 인·태 전략은 정확히 같은 곳을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세안을 비롯한 인·태 국가들과 모두 함께 긴밀히 연대하고 협력할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전문 8개항 본문 32개항으로 구성된 정상들간 공동합의문이 도출됐다. 식량·에너지 안보와 역내 경제개발협력 문제 등이 담겼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부분은 포함되지 않았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현지 브리핑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국제규범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점이라는데는 회원국 의견에 큰 차이가 없었다”면서 “다만 이 문제에 어떤 입장을 취하고 어떤 시간과 계획에 따라 역할할지는 (갈렸다)”고 말했다.
회의에서 임박한 북·러 정상회담을 두고 구체적 언급이 나오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미국과 일본, 뉴질랜드가 북한 핵·미사일 개발의 불법성을 언급하는 등 인·태 지역에서 북한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언급한 정상들이 많았다고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했다.
자카르타 |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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