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줄타기 외교’ 이번에도 먹힐까···다중동맹과 방관자 사이 불안한 존재감
“인도의 외교 정책은 여러 개의 공을 공중에 띄운 채 절대 떨어뜨리지 않는 섬세한 행위다.”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부 장관이 자국 외교 정책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자주 비유하는 문구다.
오는 8일(현지시간) 뉴델리에서 개막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인도의 ‘줄타기’ 외교에 세계의 눈이 쏠리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과 중국·러시아 사이에서 ‘다중동맹’을 표방해온 인도가 G20을 계기로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 키우기에 나섰다”며 “지정학이 미국과 중국의 힘을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고 6일 전했다.
자국우선주의 내건 ‘다중동맹’
그간 인도는 세계 질서의 어느 쪽에도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국익을 추구하겠다는 외교 정책을 표방해왔다. 실제로 인도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4자 안보 협력체인 쿼드(Quad) 회원국이면서 동시에 중국이 이끄는 신흥국 협의체 브릭스(BRICS)의 일원이다. 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규탄하는 대열에 서는 대신, 헐값에 러시아산 원유를 사들이며 교역을 확대했다.
어찌보면 ‘괘씸’해보이는 행보에도 미국은 인도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인도를 향해 “미국과 가장 가까운 파트너 중 하나”라고 표현하면서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를 건너뛰고 바로 G20이 열리는 인도행을 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G20 정상회의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 “인도는 특권을 가진 전략적 파트너”라고 추켜세우며 인도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인도가 강대국의 면전에 ‘자국 우선주의’를 내걸 수 있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우선 지정학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는 요충지에 자리하고 있다. 또 최근 중국을 제치고 세계 인구 1위 대국에 등극한 데다, 경제 규모도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5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애플 등 세계의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중국의 규제를 피해 인도로 향하고 있다. 게다가 인도는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똘똘 뭉친 글로벌사우스(남반구에 위치한 개발도상국)의 주축으로 나서며 ‘입김’을 키운 상황이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남아시아 프로그램의 책임자인 밀란 바이슈나브 선임 연구원은 “인도는 여러 동맹 사이에서 줄타기를 아주 잘 해왔다”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중국의 부상과 러시아의 쇠퇴로 인해 인도가 지정학적으로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웨스트(미국·유럽 등 동맹국), 글로벌 이스트(러시아·중국·이란 등 동맹국), 글로벌 사우스(인도·사우디 등 125개국) 등으로 재편된 ‘다극화된’ 세계 질서 속에서 인도가 끈끈한 동맹이 아닌, 느슨한 파트너십인 ‘다중동맹’을 내걸고 지정학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이샨카르 장관은 이같은 ‘자국 이익 우선’ 외교에 대해 “초심자나 시대착오적인 사람에게는 명백히 모순되는 접근 방식과 목표를 추구하는 것처럼 당황스러워 보일 수 있다”면서 “인도의 외교는 단순한 산술이 아니라 미적분학이라고 생각하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방관자적 태도, 존재감 키우는데 한계
그러나 인도 정부 내에서도 다중동맹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블룸버그는 익명을 요구한 인도 관리들이 다중동맹의 불안정성을 인정했다며 당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G20 정상회의에 불참하는 점을 꼽았다.
시 주석이 집권 이후 처음으로 G20 정상회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공동성명 도출 가능성도 낮아졌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시 주석 불참 사유로 인도와의 신경전을 꼽았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두루 참여하는 다자협력의 상징인 G20이 반쪽짜리로 전락하면 의장국으로서 회의를 주재한 모디 총리의 외교 전략도 도마에 오를 것이 자명하다.
이미 지난달 브릭스 정상회의에서 인도는 브릭스가 친중 국가연합으로 변질될 것을 우려해 회원국 확대에 반대했지만, 다른 나라들이 중국 편을 들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아랍에미리트(UAE), 아르헨티나, 이집트, 에티오피아의 신규 가입이 승인됐다. 모든 나라와 두루두루 잘 지내겠다는 인도가 결정적인 순간 어느 나라의 지지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 셈이다.
현재 인도는 세계 무대에서 확실한 승자가 나타날 때까지 베팅을 회피하고 있지만, 이런 방관자적 태도가 향후 인도의 존재감을 키우는데 한계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뉴델리에 있는 국방정책연구센터의 수샨트 싱 수석 연구원은 “브릭스를 주요 7개국(G7)에 대항하는 조직으로 만들려는 러시아와 중국의 계획을 인도가 견제하려 했지만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면서 “인도는 지정학적으로 중국에 대항할 수 있는 강대국을 지향하지만, (브릭스 사태로 볼 때) 결국 인도의 위상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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