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선의 풀무질] 태극의 정치

한겨레 2023. 9. 7.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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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의 풀무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린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전범선ㅣ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이제는 “공산전체주의”라는 말까지 나온다. 한쪽에서는 후쿠시마 오염수 대신 윤석열 대통령을 방류하고 싶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자들은 공산전체주의에 맹종하는 반국가세력이라고 싸잡는다. 우파는 친일, 좌파는 종북이라는 낡은 이분법이 재유행한다. 지겹다 못해 지루하다. 거대 양당의 공생 관계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 서로에 대한 혐오를 부추겨서 각자의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악순환을 끊어내고 싶다.

미래가 원하는 정치는 무엇인가? 시대전환 대표 조정훈 의원은 “좌도 우도 아닌 앞으로”를 표방한다. 바람직하다. 하지만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모두 산업문명의 직선적인 세계관을 전제한다. 역사는 결국 앞으로 나아가며, 그 방향으로서 왼쪽과 오른쪽이 있다는 뜻이다. 이는 사실 프랑스혁명 이후 지난 250년 동안 득세한 다분히 서구적이고 근대적인 관점이다. 좌우를 거쳐서 앞으로 가자는 것이다.

서구 근대문명은 변증법적 통일을 지향한다. 정립과 반정립, 테제와 안티테제를 하나의 진테제로 종합한다. 정과 반의 이분법으로 모순을 발견하고, 합리적인 토론으로 해결한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봉합에 불과하다. 변증법은 끊임없이 분열을 재생산한다. 나누고 합치고를 무한 반복하여 앞으로, 위로 나아간다. 변증법은 생장 논리, 성장 논리다. 생명이 재생산하고 자라나는 방법이자, 문명이 확장, 팽창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산업문명의 무기로 기능했다. 무한 성장의 신화를 뒷받침하는 핵심 논리가 바로 변증법이다.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기후생태위기 시대, 문명은 성장에서 성숙으로의 목표 전환이 불가피하다. 무한 분열과 통합의 성장 논리는 유효기간이 지났다. 증기기관차처럼 폭주하고 로켓처럼 폭발하는 산업문명을 멈춰 세울 때다. 앞으로 나아가고 위로 올라가는 강박을 버리고 내면을 깊이 들여다본다. 내장하고 반추하여 발효하는 성숙의 논리. 변증법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양극화를 해결해야 한다.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남한과 북한, 자유와 공산, 중국과 미국, 동양과 서양, 남성과 여성, 인간과 자연 등 모든 근대적 이분법을 포함하고 초월하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태극기에 해답이 있다. 음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태극을 국기로 내걸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중국과 북한은 공산주의 혁명을 뜻하는 붉은색과 별을 내세운다. 피비린내 나는 비장함이다. 일본은 태양의 뿌리(日本), 떠오르는 해로서 붉은 원을 모신다. 그 빛으로 세상을 정복하려고 하면 욱일승천기가 된다. 반면 태극기는 양극의 조화를 뜻한다. 도가의 전통적인 태극은 좌우 흑백이지만, 태극기는 상하 홍청이다. 왜 그럴까?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朝鮮)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동해안에서 동트는 모습을 보라. 하루에 딱 한번, 해돋이 때 볼 수 있는 절묘한 조화다. 해님이 바다님 위에 반쯤 걸쳤을 때, 붉은색과 푸른색, 홍청의 태극이 드러난다. 밤의 끝에서 낮이 비롯되는 순간. 어둠의 극에서 밝음의 극이 흘러나온다. 태극은 양극의 통합, 통일이 아니다. 해님과 바다님은 절대 하나 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하나다. 해돋이와 해넘이 때는 둘이 하나임이 극히 자명하다.

낮과 밤, 태양과 지구, 하늘과 바다가 사실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표상하는 것이 태극기다. 너를 이미 나로 여기고 참된 나, 참나를 찾는 것이 이 땅의 오랜 얼이다. 풍류와 동학, 삼일운동과 대한민국의 정신이자 생명평화의 길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사회양극화의 해법은 태극에 있다. 정과 반을 하나로 합치기보다는 양극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끝과 끝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편 가르기 전에 손을 맞잡고 둥글게 둥글게 춤추자. 우리가 다 같이 순환과 상생의 강강술래를 출 때, 양극화된 한국 사회가 태극을 이룰 수 있다.

다시 현실 정치로 돌아오자. 민주당과 국민의힘, 좌파와 우파가 솔직히 얼마나 다른가? 남북한은 분단되었지만 여전히 하나의 생명공동체다. 중국과 미국은 경제적으로 불가분하다. 기후생태위기 앞에서 우리가 모두 하나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태극의 정치다. 대한민국 국기의 참뜻을 실현하는 정치를 기다린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뭇 생명이 염원하고 있다. 지구가 하나의 태극을 이루는 날을 간절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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