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 슈퍼스타’ 루카 돈치치 퇴장 직관한 썰 풉니다! [마닐라통신]
[OSEN=마닐라(필리핀), 서정환 기자] ‘NBA 최고의 슈퍼스타’ 루카 돈치치(24, 댈러스 매버릭스)와 필리핀의 첫 인연은 좋지 못했다.
슬로베니아 남자농구대표팀은 6일 필리핀 마닐라 몰 오브 아시아에서 개최된 ‘FIBA 농구월드컵 2023 8강 토너먼트’에서 캐나다에게 89-100으로 패했다. 순위결정전으로 밀린 슬로베니아는 7일 리투아니아와 대결한다. 메달획득에 실패했지만 돈치치는 앞으로 두 경기를 더 치러야 한다.
1992년 NBA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이 허용된 후 국제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는 늘 미국의 몫이었다. 마이클 조던, 샤킬 오닐, 찰스 바클리, 빈스 카터, 코비 브라이언트,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 케빈 듀란트 등 시대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들이 미국농구의 얼굴이자 FIBA 최고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이제 미국 외에서도 NBA 슈퍼스타가 나오는 세상이 왔다. 그 중에서도 루카 돈치치(슬로베니아), 야니스 아테토쿤보(그리스), 니콜라 요키치(세르비아)는 과거 덕 노비츠키(독일)와 토니 파커(프랑스), 파우 가솔(스페인)이 누렸던 위상을 뛰어넘었다.
미국은 이번 월드컵에 최정예 선수들을 내보내지 않았다.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는 물론이고 데미안 릴라드, 트레이 영, 제이슨 테이텀, 자이언 윌리엄슨 등 새로운 세대들도 빠졌다. 앤서니 에드워즈가 있지만 냉정히 말해 미국농구를 대변하기에는 스타성이 많이 떨어진다.
아테토쿤보와 요키치마저 월드컵 출전을 고사했다. 자연스럽게 대회의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유일하게 참가한 슈퍼스타 돈치치 한 명에게 모아지고 있다. 조던브랜드가 시그내쳐 농구화를 만들어주는 돈치치 한 명의 스타파워가 미국대표팀 전체의 화제성을 능가하고 있다.
돈치치는 가는 곳마다 화제를 뿌리고 있다. 돈치치의 슬로베니아는 일본 요키나와에서 예선전을 치렀다. 일본이 대회의 흥행을 위해 슬로베니아 유치를 대회의 강력한 조건으로 내걸었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일본은 돈치치 경기를 다른 경기와 묶어서 패키지로 판매하면서 엄청난 흥행에 성공했다. 돈치치 경기는 기본 입장료가 30만 원 수준인 데도 없어서 못 보며 대박이 터졌다.
조별예선 5경기에서 돈치치는 평균 26.4점, 7.4리바운드, 6.8어시스트를 올렸다. 득점은 모든 선수 가운데 1위였다. 그는 베네수엘라와 첫 경기서 혼자서 37점을 쏟아냈다. NBA 최고의 수비수들도 돈치치를 막지 못하는데 FIBA농구는 어쩌면 더 수월했다.
하지만 슬로베니아가 지나치게 돈치치 한 명에게 의존하는 경향도 컸다. 상대팀 입장에서 돈치치 한 명만 집중적으로 막아도 슬로베니아 전력이 크게 떨어졌다. 돈치치의 득점력은 갈수록 떨어졌다. 슬로베니아가 토너먼트에서도 약점을 극복할 수 있을지 관건이었다.
오키나와 예선을 마친 슬로베니아는 마닐라로 이동했다. 돈치치는 NBA 퍼스트팀 가드 샤이 길져스-알렉산더와 8강에서 정면으로 충돌했다. 경기당 23.8점을 올린 알렉산더 역시 득점력에서는 돈치치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다. 캐나다는 RJ 바렛, 딜런 브룩스, 루겐 도트 등 알렉산더를 도와줄 득점원들이 즐비하다. 돈치치 원맨팀 슬로베니아와 깊이가 다르다.
돈치치는 경기시작 한 시간을 앞두고 드디어 코트에 등장했다. 2만명 가까운 필리핀 팬들 전체가 돈치치를 보기 위해 비싼 입장권을 지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국팀보다 더 큰 엄청난 함성이 터졌다. 돈치치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집중됐다. 경기장에 돈치치의 77번 댈러스 저지를 입고 온 관중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NBA 스토어가 두 곳이나 있는 필리핀이다. 돈치치 저지 구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팬들은 “루카!”를 연호하며 돈치치가 한 번이라도 자신을 봐주길 기다렸다. 돈치치는 묵묵하게 훈련에만 열중했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그는 자유투를 연습하고 점프슛을 연마했다. 슛 하나도 대충 쏘는 법이 없었다. 트레이너가 패스를 해주고 수비자 역할까지 했다. 돈치치는 연습에서도 터프한 상황에서 스텝백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선수소개가 하이라이트였다. FIBA에서는 작은 등번호대로 소개한다. 77번인 돈치치가 가장 나중에 소개됐다. 돈치치의 이름이 불리자 항공기가 착륙하는 정도의 엄청난 소음이 들려 귀가 멍멍했다. NBA 퍼스트팀 가드 알렉산더도 인기가 많았지만 돈치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알렉산더의 저지를 입고 온 필리핀 팬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필리핀 팬들은 절대적으로 돈치치 편이었다. 돈치치가 공만 잡아도 환호성이 터졌다. 시그내쳐인 스텝백 3점슛이 터지자 모두가 행복해했다. 마치 매니 파퀴아오 복싱경기를 보는 기분이었다. 반면 캐나다가 공을 잡으면 야유가 나왔다. 팬들이 노골적으로 슬로베니아 편을 들었다.
돈치치는 심판과 여유있게 농담도 하면서 경기를 주도했다. 하지만 심판은 돈치치에게 가차없이 공격자 파울을 선언했다. 월드컵 흥행을 위해서는 돈치치가 이기는 것이 FIBA에게 이득이지만 스타라고 봐주는 법은 없었다. 딜런 브룩스와 루겐 도트가 돌아가며 전담마크를 했지만 돈치치는 웃으면서 드리블을 했다. 댈러스 매버릭스 팀메이트 드와이트 파월은 돈치치에게 파울을 하고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했다.
코트사이드에 필리핀의 유명연예인들이 대거 앉았다. 돈치치가 만졌던 공이 아웃되자 남자배우가 공을 만지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농구가 국기인 필리핀에서 돈치치의 존재감은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농구계 BTS가 따로 없었다.
돈치치는 더블팀 수비를 가볍게 따돌리고 어시스트를 찔러줬다. 동료의 3점슛이 성공되자 브룩스에게 도리도리 세리머니를 했다. 돈치치는 다시 한 번 브룩스의 수비를 여유 있게 제치고 리버스 레이업슛을 성공시켰다. 수비 좋은 NBA 선수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드는 최고스타의 위엄이었다. 돈치치가 2대2 할 것이 뻔한 상황인데도 캐나다는 수비를 할 수 없었다. 돈치치는 계속해서 앤드원이 아니냐며 심판과 밀당을 했다.
설렁설렁 뛴 것 같은데 돈치치는 전반에만 벌써 17점을 넣었다. 슬로베니아가 50-50 동점으로 전반전을 마쳤다. 하지만 돈치치 혼자서 쏟아내는 에너지가 너무 컸다. 동료들의 도움이 절실했다. 농구는 혼자하는 스포츠가 아니기 때문이다.
돈치치는 계속 잘 싸웠지만 점수 차는 3쿼터 후반 16점까지 벌어졌다. 여러 선수가 다 터지는 캐나다를 돈치치 혼자 감당하기는 벅찼다. 알렉산더(31점), 바렛(24점) 콤비가 돌아가면서 터졌고, 니케일 알렉산더-워커도 14점을 보탰다. 짜증이 많아진 돈치치는 계속 심판판정에 항의하다 관중석에서 캐나다 관중과 두 번이나 설전을 벌이는 쓸데없는 행동까지 했다.
결국 사건이 터졌다. 4쿼터 종료 6분 37초를 남기고 슛을 시도하던 돈치치가 넘어졌다. 돈치치가 파울을 주장하자 심판이 두 번째 테크니컬 파울을 주면서 즉각 퇴장을 명령했다. 돈치치는 곧바로 라커룸으로 향했다. 화가 난 필리핀 팬들이 “레프리 썩”(Referee Suck)을 합창했다. 에이스를 잃은 슬로베니아는 결국 힘없이 무너졌다. 돈치치의 메달 도전이 허무하게 끝났다. 경기장에서 전광판을 통해 라커룸으로 향하는 돈치치의 모습을 끝까지 생중계했다.
취재기자 입장에서도 최고스타 돈치치가 퇴장당하고 경기에도 졌으니 완전히 망한 경기였다. 돈치치가 기분 좋게 인터뷰를 해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돈치치는 믹스트존에서 취재진을 쳐다보지도 않고 빠르게 지나가버렸다. 왜 퇴장을 당했는지 그의 말을 직접 듣기 어려워 보였다.
슬로베니아 동료들에게도 돈치치에 관한 질문만 쏟아졌다. 22점을 넣은 클레멘 프레펠리치는 “돈치치는 국가전체를 짊어진 슈퍼스타다. 부담감이 심했을 것이다. 우리가 제대로 도와주지 못했다”며 위로했다.
원래 돈치치는 공식기자회견에 임할 예정이 아니었다. 하지만 FIBA에서 급하게 선수를 바꿔서 돈치치를 단상에 세웠다. 믹스트존에 있던 기자들 백여명이 한꺼번에 기자회견장으로 우르르 몰렸다. 기자회견에 임한 돈치치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돈치치는 “일단 캐나다를 축하하고 싶다. 세계최고 선수들이었고 막기 힘들었다. 우리 팀 선수들도 100%를 다했다. 우리도 고개를 들어야 한다. 우리 팀이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퇴장상황에 대해 돈치치는 공개적으로 심판을 저격했다. 그는 “국가대표팀을 뛰다 보면 감정이 격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심판이 파울을 불어주지 않았다.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불만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뛸 때 파울을 불어주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심판을 좋아하지 않지만 난 존경한다”고 꼬집었다.
심판 입장에서도 최고의 스타가 자신의 판정에 대놓고 불만을 지적했으니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돈치치가 손해봤다고 느낄 여지는 충분했다. 하지만 선수가 심판과 대립각을 세워서 득이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슬로베니아는 여전히 두 경기를 더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한 기자가 “심판에게 따지는 것이 신사적인 태도는 아니었다”고 지적하자 돈치치는 “할 말없다”고 일축했다.
앞으로 감정조절을 어떻게 할지 묻자 그는 “우리는 메달에 가까웠다. 팀을 위해 더 노력하겠다. 감정조절도 아까 말했지만 국가대항전이라 최선을 다하려 했다. 물론 잘 조절해야 한다”고 반성했다.
알렉산데르 세쿨리치 슬로베니아 감독은 “루카처럼 매 경기에서 상대에게 압박을 당하다 보면 감정을 조절하기 힘들다. 루카는 항상 공을 만지고 있고 파울을 당한다. 정말 피곤하고 힘들 것이다. 당신도 이런 상황에 직면해봐야 알겠지만 정말 힘들다. 물론 보기 좋지 않지만 아주 힘들다. 그래서 어떤 리그든 루카가 아주 특별하고 막기 힘든 선수인 것”이라며 돈치치를 감쌌다.
경기와 상관없이 한 필리핀 기자는 돈치치를 사랑하는 필리핀 팬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다. 돈치치는 “사랑에 감사드린다. 정말 많은 팬들이 날 사랑해주신다. 내일도 경기가 있는데 이기면 좋겠다”고 감사했다.
최고의 흥행카드인 돈치치의 8강 탈락으로 FIBA도 막심한 손해를 입게 됐다. 하지만 캐나다 역시 준결승에 진출할 자격이 충분한 강팀이다. 돈치치는 여전히 두 번 남은 순위결정전에서 경기장을 매진시킬 것이다. 필리핀 팬들은 이 선수의 경기를 눈앞에서 두 번 더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여전히 감사하고 있다. / jasonseo3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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