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도 악마도 아닌 ‘어린이라는 세계’···‘이노센트’[리뷰]
‘어린이라는 세계’는 그저 밝고 말캉하기만 할까. 모든 어른은 한때 어린이였지만, 어린이를 모른다. 자신이 직접 지나온 그 구간을 안다고 착각할 뿐이어서, 많은 경우 아이들을 대상화하고 때때로 신성시한다. 6일 개봉한 노르웨이 스릴러 영화 <이노센트>는 어른들을 향해 “그 세계에도 어둠이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어느 여름날, 한 가족이 도심 외곽의 아파트로 이사 온다. 어린 소녀 ‘이다’는 속상하다. 엄마 아빠는 바쁘고 언니 ‘안나’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안나에겐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다. 이다가 보기에 엄마 아빠에겐 온통 아픈 언니밖에 없다. 그래서 이다는 가끔 못된 짓을 한다. 부모님 몰래 언니를 꼬집고 깨진 유리조각을 신발에 집어넣는다. 발바닥에 피가 철철 나는데 언니는 아픈 줄도 화를 낼 줄도 모른다.
“신기한 거 보여줄까?” 혼자 놀던 이다에게 친구가 생긴다. 역시 외톨이인 ‘벤자민’은 이다의 마음을 사려는 듯 신비한 묘기를 보여준다. 떨어지는 병뚜껑을 벤자민이 노려보자 낙하 방향이 틀어진다. ‘아이샤’가 함께 놀게 된 것은 얼마 후다. 아이샤는 신기하게도 말 못하는 안나의 마음을 읽는다. 네 사람은 순식간에 가까워지고, 함께 놀며 초능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천진난만한 네 아이의 우정 이야기인가 싶을 때, 영화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어른은 철저히 배제된 아이들만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것은 때론 선이고 때론 악이며 어떨 땐 둘 모두다. 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른 관객의 불안감은 고조된다. 벤자민의 초능력은 병뚜껑을 띄우는 수준을 넘어 강력해지고, 네 사람의 관계가 삐걱거리면서 나머지 아이들이 목숨을 위협받기에 이른다.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델마> 등 요아킴 트리에 감독 작품의 각본가로 알려진 에실 보그트가 연출했다. 데뷔작 <블라인드>(2014) 이후 두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로맨틱 코미디, 호러 등 장르를 오가며 탁월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여준 그는 아버지가 되면서 어린이의 세계에 주목하게 됐다. “저에게도 아이가 생기면서 세상을 이해하려는 아이들의 어설프고 서투른 시도를 목격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있을 때 볼 수 없었던 비밀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영화 속 아이들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다. 이들을 (어른의 시선에서) 대상화된 존재로 머물지 않게 만드는 것은 감독의 애정 어린 관찰인 것으로 보인다. <이노센트>가 유효타가 많은 공포 스릴러이면서 아름다운 성장담인 이유다.
밤늦도록 지지 않는 해, 야생적인 숲과 같은 북유럽의 여름 풍경은 영화에 스산한 기운을 더한다.
7~11세의 아역 배우들은 놀라운 연기를 펼친다. 보그트 감독은 캐스팅에만 1년 반의 시간을 들였다고 한다. 캐스팅 뒤에도 워크숍 과정을 거치며 극의 흐름을 조금씩 알도록 했다. 특히 안나 역의 알바 브륀스모 람스타드는 실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배우로 착각할 만큼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인다.
영화는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7분.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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