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구 써서 잡을 생각을 해야지"…그리고 변화구 난타, 칭찬 후 하루 만에 최악투로 변했다
[스포티비뉴스=수원, 박정현 기자] “직구 써서 잡을 생각을 해야 한다. 왜 카운트 잡는 공과 결정구 모두 변화구를 던져 타자를 잡으려고... 그럴 필요가 없다.”
염경엽 LG 트윈스 감독이 6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kt 위즈전을 앞두고 마무리 투수 고우석의 볼배합에 관해 이처럼 말했다.
고우석은 지난해 리그 세이브왕(42세이브)이자 국가대표 투수다. 최고 시속 150㎞ 중반까지 나오는 묵직한 포심 패스트볼과 고속 슬라이더, 날카로운 커브 등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다양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
LG는 kt와 주중 3연전의 첫 경기에서 고우석의 활약으로 승리를 지켰다. 고우석은 팀이 5-4로 앞선 8회말 1사 1,2루에서 마운드에 올라 이호연을 유격수 방면 병살타로 잡아냈다. 이후 9회말도 실점 없이 막아내 팀에 승리를 안겨줬다. 염 감독은 고우석을 향해 “지난 경기 키포인트는 (고)우석이었다”라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다만, 하루 만에 모든 것이 변했다. 고우석은 6일 경기에서 전혀 다른 투구를 선보였다. 팀이 3-0으로 앞선 9회말 마운드에 올랐지만, 장성우와 배정대에게 1타점 적시타를 내줘 3-2가 됐고, 이후 황재균에게 2타점 끝내기 적시타를 맞아 3-4로 쓰라린 역전패를 허용했다.
이날 고우석의 최종 성적은 ⅔이닝 4피안타 2볼넷 1탈삼진 4실점. 리그 선두 LG와 2위 kt의 맞대결로 경기 차가 ‘5.5’로 줄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리그 최고 마무리 투수이자 팀의 믿을맨 고우석의 블론세이브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이날 경기 전 염 감독은 고우석의 변화구 구사에 관해 자기 생각을 밝혔다. 야구 통계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고우석은 올해 슬라이더 피안타율(0.295)은 포심 패스트볼(0.217)보다 훨씬 높다. 사령탑은 상대에게 서서히 맞아가고 있는 슬라이더를 대신해 포심 패스트볼 구사를 높이길 원하며 선수와 직접 미팅에 나섰다. 염 감독은 “선수는 아니라고 하지만, 볼배합은 분명 변했다”라며 포심 패스트볼을 활용할 줄 아는 고우석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설명했다.
염 감독이 말한 사례는 하루 전(5일) 9회말 2사 1루 황재균의 타석이었다. 고우석은 볼카운트 2-2에서 6구째 커브를 던졌다. 커브는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났지만, 예리한 각도로 떨어져 타자를 혼란스럽게 했다. 황재균은 다양한 선택지 중 직전 봤던 변화구를 더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고우석은 역으로 152㎞ 포심 패스트볼을 결정구로 활용해 타이밍을 완벽히 빼앗아 스윙 삼진을 이끌었다.
염 감독은 “커브를 던지면서 직구가 통했다. 그러니 직구 써서 잡을 생각을 해야 한다. 왜 카운트 잡는 공과 결정구 모두 변화구를 던져 타자를 잡으려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얘기했다.
이어 “초구에 (고우석의 포심 패스트볼을) 제대로 친 타자가 있었나. 배정대도 아웃됐다. 그렇게(공 하나로) 아웃카운트를 올리면, 얼마나 좋은가. 초구에 152㎞ 이상 던졌을 때 타자들의 타율을 뽑아보면, 2할이 넘지 않는다. 맞히기 쉽지 않다. 잘 치면, 인정해주고 다음에는 변화구로 승부를 시작하면 된다. 그게 볼배합이다. 근데 왜 초구부터 (변화구로) 볼을 주며 시작하나. 시원하게 던져 끝낼 수 있는데...”라고 덧붙였다.
고우석은 6일 등판에서 대부분 초구에 포심 패스트볼을 던졌다. 다만 승부를 걸어야 할 시점에서 던진 변화구가 적시타가 돼 무릎을 꿇었다. 무사 2루 장성우에게 볼카운트 2-2에서 던진 슬라이더가 공략돼 1타점 적시타를 허용했다. 이어서 1사 1,2루에서는 볼카운트 1-1에서 카운트를 잡기 위해 들어간 커브가 통타 돼 1타점 적시타를 내줬다.
상대가 3-2 턱밑까지 추격한 2사 만루에서는 볼카운트 2-2에서 황재균에게 던진 승부구 커터가 2타점 끝내기 안타로 연결돼 고개를 숙여야 했다. 커터는 변형 패스트볼의 한 종류이지만, 경기 뒤 수훈선수로 선정된 황재균은 이 공을 커브였다고 말할 만큼 타자에게는 패스트볼보다는 변화구에 가까운 무브먼트를 보였다. 결국, 적시타 3개 모두 변화구 계열로 맞은 것이다.
모든 것은 결과론이다. 고우석이 변화구를 던지고도 팀 승리를 지켰다면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증명하지 못한 건 선수다.
고우석은 지난 5일 수훈 선수로 선정된 뒤 인터뷰에서 “감독님이 (볼배합에 관해) 하신 말씀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다만, 내가 고집이 있다. 감독님이 등판하기 전 ‘슬라이더가 약하다’고 말씀하셔서 끝까지 슬라이더만 던져 감독님께 보여 드려야겠다 이렇게도 생각했다. 근데 경기에 나서니 또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라며 “아이러니하게 (황재균 삼진을 제외하고) 모두 슬라이더로 아웃 카운트를 잡았다. 슬라이더가 정타 위험도에서 가장 벗어난 공이기도 하다. 내가 부상으로 많이 빠져 감독님이 나를 많이 못 봤기에 슬라이더가 상대적으로 더 약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며 자신의 슬라이더를 증명하고자 했다.
다만, 이날 적시타 3개 모두 변화구가 맞아 나갔다. 포심 패스트볼 비중을 높이려고 했던 염 감독의 미팅에 귀를 기울여야 할 시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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