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우크라 전쟁에…“인도의 시대 왔다” 균형추된 중견국 [G20, 중견국이 뜬다]

2023. 9. 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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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갈등 틈타 인도·튀르키예·인니 등 부상
G20 정상회의, 높아진 중견국 입지 확인 기회
신흥국 대표 인도의 ‘줄타기 외교’·사우디는 ‘평화 중재자’ 자처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 브라질·인니 존재감도 커져
(왼쪽 상단부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제레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AFP, 로이터]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새로운 기회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경제대국의 갈등과 장기화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틈을 타 국제사회에서 ‘중견국(middle power)’의 입지가 커지고 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 브라질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와 튀르키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주인공이다.

중견국들은 미국 대 중국, 러시아 대 우크라이나 등으로 나뉜 진영을 선택하는 대신, 강대국 사이를 오가며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서방이 주도하는 대러 제재에는 동참하지는 않으면서, 자국의 지정학적 입지를 지렛대 삼아 외교·경제적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식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 주도의 서방동맹과 중국·러시아 간의 대립은 중견국들에게 위기이면서 동시에 기회”라고 설명했다.

오는 9일부터 양일간 열리는 인도 뉴델리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뉴델리의 한 버스정류장에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사진이 담긴 G20 정상회의 홍보 포스터가 걸려있다. [AP]

오는 9~10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중견국들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 G20 의장국인 인도는 글로벌 정가의 주목을 받고 있다.

블룸버그는 “인도의 순간이 오고 있다”면서 “G20 정상회의는 오늘날 지정학이 미국과 중국을 넘어서고 있다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시도를 보여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도의 순간이 오고 있다”…경제대국·외교강국 노리는 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6월 백악관에서 열린 모디 총리의 국빈방미 환영 만찬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건배를 하고 있다. [로이터]

미 정치매체 포린폴리시는 중견국을 “미·중과 달리 독립적 의제를 갖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국가로, 초강대국들의 입장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라고 정의했다.

외신들은 그 중에서도 인도가 이번 G20회의에서 자국의 지정학적 가치와 위상을 발판으로 차기 경제대국이자 외교강국으로서의 입지 굳히기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6월 국빈방문한 모디 총리를 위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준비한 화려한 환영만찬은 국제사회에서 한껏 높아진 인도의 위상을 방증한다.

무엇보다 인도는 미중 갈등이 촉발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최대 수혜국이다. 두 경제 대국의 각축전 속에 인도는 중국에 이은 ‘세계의 공장’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고, 인도를 대중 견제의 핵심 파트너로 보고 있는 미국의 경제적·기술적 지원도 적극적으로 받고 있다.

동시에 인도는 러시아와의 협력도 유지하며 공공연한 ‘외교적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인도는 우크라이나전에서 전쟁을 비난하거나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동시에, 러시아산 원유를 저렴한 값에 사들이면서 러시아의 제재 회피에 기여하고 있다. 인도는 중립 외교 노선과 국익을 추구하는 120여개국이 참여하는 ‘글로벌 사우스’도 이끌고 있다.

지난 2019년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운데)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손을 각각 잡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로이터]

밀란 바이슈나브 카네기국제평화기금 연구원은 “인도는 다자간 동맹의 줄타기를 꽤 잘 해왔다”면서 “인도의 이 같은 능력은 러시아의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라는 지정학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런가하면 튀르키예와 사우디는 우크라이나전 이후 ‘평화 중재자’를 자처하며 글로벌 외교가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흑해곡물협정을 중재했던 튀르키예는 지난 7월 협정 파기를 선언한 러시아를 설득하며 협정 복원을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흑해협정 대안을 놓고 논의하기도 했다.

포린폴리시는 “튀르키예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외부 세력”이라면서 “과거 협상을 관철시킨 에르도안은 협상 복원을 이끌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 4일 정상회담을 위해 만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모습 [TASS]

사우디도 지난달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평화 방안을 논의하는 국제회의를 주최하며 몸값을 한껏 끌어올렸다. 회담에는 중국도 참석했다. 앞서 사우디는 전쟁 발발 이후 원유 감산을 단행하며 국제사회로부터 러시아 편에 섰다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평화 회담을 계기로 중립국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불어 사우디는 중국과 밀착하면서 중동 패권을 되찾고자 하는 미국을 향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외교관계 정상화에 공을 들이자 사우디는 미국에 무기 수출 제한을 최소화하고 민간 핵개발을 지원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막내린 강대국의 시대…국제사회 협력 도모 ‘숙제’

인도와 함께 글로벌사우스의 핵심 멤버인 인도네시아와 브라질은 핵심 자원 덕분에 많은 국가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배터리 핵심 소재인 니켈의 세계 최대 생산국으로, 국제 공급망에서 갖는 존재감이 크다.

세계 최대 우림을 보유한 브라질은 기후 위기라는 글로벌 현안 해결을 위한 ‘열쇠’이자 남미지역의 리더로서 국제적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남아공은 러시아와 사실상의 동맹관계이자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의 멤버다.

인도네시아의 한 니켈 광산. 인도네시아는 글로벌 에너지 전환기를 맞아 배터리 공급망의 핵심 국가로서 국제 사회의 입지를 높여가고 있다. [로이터]

이 같은 중견국들의 부상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의 ‘강대국’이 절대적인 힘을 과시하며 국제 사회에서 군림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진단마저 내놓고 있다. 실제 오늘날 중견국들은 국제적 입지를 다지기 위해 강대국과의 ‘동맹’에 의존하는 대신 지역적 연대를 강화하며 자체 세력 형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브릭스와 글로벌 사우스가 여기에 해당한다.

마이클 파워 자산관리회사 나인티원 분석가는 “중견국들에게 외교란 강대국의 편을 드는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이들을 염두에 두고 편을 고르는 문제”라고 말했다.

다만 중견국의 부상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벗어난 중견국의 자립 행보가 각종 글로벌 현안에 대한 국제사회 협력을 저해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정치학자 이반 크라스테프는 FT와의 인터뷰에서 튀르키예가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정상회의 하루 전까지 반대했던 것을 예로들며 “중립국들의 행동주의는 그들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오른쪽) 가 사우디 왕궁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을 환영하고 있다. [로이터]

이미 글로벌 정가에서는 이들 중견국과 미국 등 서방 선진국, 중국과 러시아 등이 한자리에 모이는 오는 뉴델리 G20 정상회의가 역대 처음으로 공동선언 없이 끝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으론 의장국인 인도가 서방과 비서방을 모두 설득해 공동선언을 이끌어낸다면 국제적 위상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G20 국가들 중에서는 주요 7개국(G7) 국가와 입장이 상충되는 국가들이 있어 전체적인 공감대를 형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높아진 신뢰도를 활용해 국제적 지위를 확립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balm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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