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율 칼럼] 기념관·기념물 공화국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 2023. 9. 7. 11: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

(서울=뉴스1)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공동대표 = "최치원 기념관 건립부지 검토, 주요 시설, 전시·교육·체험 등 공간 구성 등에 대해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총사업비 약 150억 원이 투입되는 최치원 기념관 건립 사업은 대지면적 9950㎡, 건축면적 600㎡ 규모로 향교와 서원 등 전통건축 양식으로 설계될 계획이다. (생략) 문제는 이미 전국 곳곳에 최치원 관련 시설물이 여러 개 조성됐다는 점이다. 경북 의성, 경남 함양, 경기 남양주 등이 저마다 최치원과의 인연을 내세우면서 기념 시설을 건립했다."(중앙일보 2023. 9. 3. 150억 들여 '최치원 기념관' 짓는 경주…이미 전국에 많은데, 왜).

"충북 괴산군 괴산읍에 있는 고추유통센터. 한편에 거대한 조형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괴산군이 2005년, 5억 천만 원을 들여 만든 초대형 가마솥입니다. 괴산군은 이 가마솥을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릇으로 기네스북 인증을 받으려 했지만, 호주의 질그릇에 밀려 실패했습니다. 세계 기록에만 실패한 게 아닙니다. 솥 바닥이 너무 두껍게 설계된 탓에 군민 화합 차원에서 밥을 짓거나, 옥수수를 삶는 것도 불가능했습니다. 그야말로 5억원짜리 무용지물, 고철 덩어리가 된 셈입니다."(KBS 2023. 2. 7. '세계 최대' 집착하던 가마솥·북·CD…자치단체 '실패 교과서'로).

한편 광주광역시와 광주 남구, 전남 화순군은 2014년부터 올해까지 10년간 중국 인민해방군가와 북한의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한 정율성을 선양하는 사업과 기념 시설을 위해 세금 약 117억원을 쓴 것으로 확인돼서 논란을 낳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연초 광주광역시는 '대통령 선물(풍산개) 관리 계획'이란 이름으로 문재인 전 대통령이 기르던 풍산개 곰이와 송강이 사육 관련 시설 확충·보강 및 진료 장비 구입비로 1억5000만원을 책정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철회한 적이 있다.

위에서 열거한 지방정부의 사례들이 경제성 분석을 거친 후 이뤄졌는지에 대해서는 지극히 회의적이다. 굳이 각종 경제지표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투입된 자원에 대비하여 부수되는 산출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공적 지출이 반드시 비용 대비 효익이 클 때만 가능하지는 않다. 그런데 위의 지출이 그렇다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라든가 교육 및 보건복지 등 국민적 공감대가 이루어진 부문에 관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방정부 수장의 홍보를 위한 일회성 이벤트이거나 지역 토건업자의 배만 불릴 수 있는 사업으로 비추어진다.

잼버리 사태의 여파로 재검토되고 있는 새만금국제공항만 하더라도 2019년 사업타당성 조사에서 비용 대비 편익(B/C)이 0.479가 나왔음에도 -수치가 1 이상이어야 경제성이 입증됨-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라는 수단을 동원하여 진행하던 사업이다. 새만금국제공항 예정지의 바로 위에는 군산공항이 있고, 아래에는 무안국제공항이 있음에도 말이다. 애석하게도 무안국제공항이 화제가 되는 경우는 공항에서 고추 말리는 것이 가능하냐 여부를 놓고 온라인 공간에서 싸울 때이다.

우리나라 비수도권의 재정자립도는 지극히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시군이 10% 안팎으로 거의 전적으로 중앙정부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반면에 역설적으로 비수도권 지역의 1인당 세출 예산은 서울 강남 권역에 대비하여 10배를 상회한다. (2022년 기준 서울 송파구가 가장 작아서 153만 원이고 가장 많은 경북 울릉군이 2,430만 원이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지역 간 균형 발전을 위하여 예산이 투입됨에도 불구하고, 일부 지방정부는 혈세를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혹은 잠재적 성장을 가져올 미래 역량에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정부 수장의 가시적인 홍보와 자칫 밀착됐을 수 있는 지역 토건 세력의 배를 불리기에만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최근에 또 하나 이런 기념사업의 폐해(?)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이른바 민중미술가 임옥상의 성추행 사실이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는데, 이에 따라 임옥상이 연구소를 세워 전국 각지에서 설치한 200점 가까운 공공조형물 작품들은 당장 철거를 둘러싼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이 부분에서 놀라운 것은 연구소가 설치했다는 조형물이 무려 200점에 달한다는 점이다. 과거 동 연구소는 칼럼을 통해 "그림을 팔아 본 적도 없고 팔아봤자 가격이 형성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이것을 겸손이라 해야 할지, 위선이라 해야 할지 그저 읽는 이 각자에게 판단을 맡길 수밖에 없다.

결국 지방정부들이 행하는 일련의 사업들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기념관과 기념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성서뿐 아니라 숱한 현자들이 우상을 섬기지 말 것을, 인간의 형상을 한 조각 심지어는 그림을 그리지 말 것을 이야기하였다. 그중에서 임제 선사의 말씀 한토막으로 마무리 짓는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아라한을 만나면 아라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 권속을 만나면 친척 권속을 죽여라."

※김경율 칼럼의 내용은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acenes@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