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동물원 패러다임 바꾼 美사파리 철학
세계적인 야생동물 보호기관인 ‘샌디에이고 동물원 야생동물 연합’은 지난 8월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사파리 파크에 코끼리들을 볼 수 있는 ‘데니 샌포드 엘리펀트 밸리’를 구축한다고 밝혔다. 관광객들이 사파리에 자동차를 타고 들어가면 길 양쪽으로 펼쳐지는 초원과 함께 지구 최대의 육상 동물인 아프리카 사바나 코끼리를 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사회성이 뛰어난 코끼리는 평소 30~40마리씩 무리지어 다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단체는 이곳을 코끼리들이 무리지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또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층이 동물과 더 교감할 수 있는 탐험의 장소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동물원 측은 아프리카 초원의 광경을 재현하기 위해 식물과 냄새, 소리를 그대로 구현할 전문 원예사와 수목연구자로 팀을 구성했다. 물론 이 동물원에는 코끼리뿐 아니라 시속 최대 108km로 달리는 치타, 사자, 코뿔소, 아프리카펭귄을 포함한 각종 새 등 다양한 동물이 자연과 어우려져 살고 있다.
이런 해외 소식을 종종 듣고 있다보면 한국의 동물원 환경과 새삼 격차가 느껴진다. 솔직히 국내 소형 동물원의 현실은 처참하다. 경남 김해시 부경동물원의 ‘갈비 사자’로 불리우던 ‘바람이’, 경북의 한 민간 목장에서 탈출해 사살된 암사자 ‘사순이’ 사례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나마 청주동물원으로 옮긴 바람이는 운이 좋았다. 여전히 대부분의 민간 소형 동물원, 사설 목장에서는 열악한 환경에서 사자, 호랑이, 곰 같은 맹수가 살고 있다. 현행법의 맹수 사육장은 방사장과 합해 한 마리당 약 4평 남짓한 면적과 2.5m 높이의 펜스만 갖추면 된다.
물론 국내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인 야생동물 안전 관리 강화와 보호 대책을 마련하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는 있다. 오는 12월에는 야생생물법 개정안과 동물원수족관법이 시행된다. 새 동물원수족관법에 따르면 동물원과 수족관 운영은 등록제가 아닌 허가제로 바뀐다. 동물별로 적합한 사육 기준도 시행규칙을 통해 정해진다. 다만 이미 운영되고 있는 동물원은 새 기준에 맞게 시설을 개선하는데 5년의 유예기간을 줬다. 하지만 여전히 법을 더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다.
아예 부실한 동물원을 문 닫아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인간 중심 환경과 서식지 파괴로 야생동물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완전한 폐쇄는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자연에서 보존이 어려운 개체의 경우 각별한 관리와 보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동물 생태계 연구와 교육을 위해서도 동물원의 완전한 폐쇄는 여전히 답이 될 수 없다. 국내 최초 자연번식으로 태어난 용인 에버랜드의 인기스타 판다 ‘푸바오’ 역시 인간의 보존 노력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현재 판다는 전 세계 1800여 마리 정도 남은 멸종 취약종이다.
먼저 동물원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동물원이 철창에 갇힌 동물을 보고 떠나는 곳이 아니라, 생물 다양성 증진과 종 복원이 이뤄지는 곳으로 다시 규정하는 작업이 먼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는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샌디에이고 동물원 사례는 그런 점에서 참고할 모범이 될 만해 보인다. 기후 변화와 인간과 야생동물의 갈등, 서식지 손실과 밀렵에 따른 개체수 감소는 야생동물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샌디에이고 동물원은 “동물원은 인간이 동물을 이해할 수 있는 교육 공간이자, 멸종위기 동물의 보존지, 보존 과학의 터전”이라는 철학을 고수한다. 이곳이야말로 인간과 야생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보존 솔루션’을 제시한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물론 미국에 비해 비교적 좁은 땅덩어리를 가진 한반도에서 야생 환경을 그대로 보존한 사파리를 바라는 것은 꿈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좁은 공간에서 정형행동을 보이는 야생동물을 방치할 수 만도 없다.
일각에서는 관리가 부실한 민영 동물원은 문을 닫고 재단을 만들어 ‘대형 사파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아예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전 세계에서 운영되는 동물원들 역시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외부 지원을 받는다. 정부와 민간에서 제도적, 재정적 지원을 받는 것이다. 각종 기부, 기념품과 관광상품 개발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기도 한다. 그러려면 동물원의 질적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 국내에서도 환경부, 지자체, 동물단체 및 시민들이 힘을 보탠다면 인간과 동물이 공존 가능한 사파리가 탄생할 수도 있다.
20여년간 갇혀 지내다 우리를 탈출한 암사자 사순이는 총에 맞아 숨지기 전 20분간 숲 속에 앉아 짧은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사순이가 보낸 그 20분이 아마 20년 가운데 유일하게 자유를 만끽한 순간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사순이는 짧은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만약 사순이가 인간에게 말을 건넬 수 있었다면 무엇을 말했을까. 자연에서 시속 60~80km로 달리는 사자가 좁은 우리로 끌려들어가는 것은 자연과 인간이 소통하는 미래 동물원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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