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첸 광고 ‘문명의 충돌2’, 작은 위화감이 든다면[플랫]
흠결 아닌 당연한 것으로 제시
사십 대 초반 구간을 지나며 편해진 게 하나 있다. 이젠 웬만해선 ‘아직도 아이 생각은 없어?’라는 질문을 듣지 않는다는 것. 당장 나에게 생각이 있다고 출아법으로 방광 즈음에 아이를 스스로 임신해 출산할 수 있는 게 아니거니와 둘만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음에도, 결혼하고 아이 없는 상황을 언젠가 번복할 결심이나 미뤄두는 숙제처럼 생각하는 이들을 납득시키기란 어렵다. 무자녀 부부가 자신들의 결정을 납득시키는 방법은 얼른 늙어 남들을 포기시키는 것밖에 없다. 얼마 전 유튜브 조회수 1000만회를 돌파할 정도로 화제와 인기를 모은 KCC 건설 스위첸 광고 ‘문명의 충돌 시즌2-신문명의 출현’(이하 ‘문명2’) 편을 조금 흘기듯 본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3년 전 전작 ‘문명의 충돌’(이하 ‘문명1’)에서 서로의 삶의 방식을 조율하느라 애먹던 4년 차 부부는 이제 아이라는 또 다른 문명과의 공존 앞에서 새롭게 갈등하지만 그래도 둘보단 셋이 낫다며 마무리한다. 전작에서 그러했듯 김남희, 박예니 두 배우의 일상 연기가 디테일하면서도 사랑스러워 재밌게 보긴 했지만, 부부가 부딪히는 광고의 어떤 장면에서도 둘보다 셋이 나은 이유를 찾지 못한 입장에선 혹 저출생 시대의 새로운 프로파간다 아닌지 살짝 의심이 들 정도다. 하나를 더 낳아도 좋겠다며 오늘 밤 아이를 일찍 재우라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 더더욱.
미리 말하면 과거 올해의 광고상 TV부문 대상을 받았던 ‘문명1’과 이번 편을 비롯해 ‘엄마의 빈방’, ‘내일을 키워가는 집’ 등 스위첸의 광고 시리즈는 그저 브랜드 가치 타령으로 계급적 구별 짓기에만 힘쓰는 타 아파트 광고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완성도와 서사로 큰 공감을 이끌어내는 흔치 않은 사례다. 설령 ‘문명2’가 출생률을 올리기 위한 국가의 선전공작이라 할지라도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같은 광고 카피(롯데캐슬)만큼 세상에 해악을 끼치진 않는다. 둘보단 셋이 낫다는 가족 형태의 재현이 무자녀 부부의 삶을 공격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이 광고에 위화감을 느끼는 건, 어떤 삶의 형태는 일체의 자기증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심지어 그 자체로 공감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확인하기 때문이다. ‘문명2’의 수많은 장면들, 아기의 오줌을 얼굴 정면에 맞고, 아기 분유를 먹던 남편이 그걸 왜 먹느냐는 아내 구박을 받고, 자다가 아기가 울어 아내가 남편을 깨우고,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던 아내가 남편에게 육아 분담 문제로 따지고, 육아로 바빠 씻지 못한 아내의 냄새를 남편이 놀리는, 이토록 다양한 갈등은 변명해야 할 흠결이 아닌 육아를 선택한 삶에 따라 나오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풍경으로 제시되고, 또 받아들여진다. 광고 속 부부가 그 다툼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셋을 선택해 가능한 행복을 누린다면 다행한 일이다. 다만 어떤 행복은 증명할 필요가 없지만, 또 어떤 행복은 불신의 대상이 된다. 광고 바깥에서 둘만의 삶을 선택한 이들은 삶에 당연히 따라붙는 갈등에 대해 아이가 없어서가 아니라는 걸 계속 증명하거나, 아이를 낳아 해소하도록 요구받는다.
‘정상 가족’ 너머 더 다양한 관계·주거에 대한 상상의 여지 없어 아쉬움
전작 ‘문명1’부터 이번 광고까지 부부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재현한다며 많은 언론에서 상찬하는 건 그래서 흥미롭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현실적이지만, 어떤 삶은 ‘더’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부부의 갈등은 전작에서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시간 없으니 아무거나 입으라고 다그치다 외출 분위기를 망치고, 출근 시간 다 되도록 밤새 게임을 하는 남편 방 전원을 꺼버리고, 여행에서 뭔 일이 있었는지 돌아오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냉전 상태가 되는 그 모든 순간은 말 그대로의 ‘문명의 충돌’이다. 비유가 아니다. 한 집에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건 물리의 영역이다. 상대의 취향을 관념적 차원에서 존중하는 것과 그 취향이 우리 집 거실에 장식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덕분에 많은 이들이 광고에 공감했다. 그리고 종종 공감이란 체념을 동반한 안심을 의미한다. 혹은 안심을 동반한 체념. 와, 여기도 우리랑 비슷하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그냥 다 이렇게 사는 거지 뭐. ‘문명2’에서도 반복되지만, ‘문명1’이 간섭하는 아내와 철없는 남편이라는 스테레오타입을 재현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익숙함을 통해 갈등은 대충 안고 살 만한 것이 된다. 이처럼 ‘문명1’은 결혼 전엔 미처 알 수 없던 같이 산다는 것의 어려움을 꽤 잘 보여주되, 그러니 결혼은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사고의 경로는 철저히 차단한다. 문명의 충돌은 재고의 이유가 아닌 당연히 감내해야 할 것으로 자연화된다. 광고 속 부부는 실제 그렇게 사는 부부가 많아서 현실 부부인 게 아니라, 그렇게 사는 게 정상이라는 믿음과 인증을 통해 단단한 현실의 지위를 획득한다. 현실이란, 관성이다.
되돌아보면 스위첸의 성공적이었던 광고 상당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재현하는 방식으로 서사를 구성해왔다. 세상 많은 딸들의 심금을 울렸던 ‘엄마의 빈방’ 편은 엄마와 딸의 오랜 유대를 다루지만, 결국 귀하게 키워 딸을 시집보낸다는 가부장제 모델을 중심에 놓고 만들어졌다. 2014년 나온 ‘아빠의 집’ 편은 남성들의 느끼한 자기연민을 최소화한 편이지만 그 자체 든든한 울타리이자 집 역할을 하는 가부장을 긍정한다. 다른 아파트 광고들도 시도하는 것이지만, 스위첸 광고는 아파트를 단순히 몇 평형의 싸늘한 콘크리트 건물로서의 집(house)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서사, 추억이 얽힌 공간으로서의 집(home)을 보여주려 한다. 이들 광고가 성공적이었던 건 세련된 만듦새 덕이기도 하지만, 통념적으로 안전하며 또 안정적인 정상가족의 형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덕이기도 하다. 신문명의 탄생 앞에서 시행착오를 겪던 ‘문명2’의 부부는 둘째를 낳고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할 필요 없다. 손자 손녀를 봐주며 ‘니들 잘 사는 게 나한테 제일 좋은 집’이라 말해주던 2015년 ‘자식의 자식농사’ 편에서의 할머니가 있으니까. 이것이 스위첸 광고의 복음이다. 정상가족의 품에서라면 당신들 모두 안식을 취할 수 있다. 물론 웬만하면 우리 아파트 안에서.
진정한 ‘문명의 충돌’이란, 가부장제의 익숙한 관성을 부수려는 갈등
스위첸 광고는 세련된 프로파간다가 맞다. 그 사실이 창작물로서의 가치를 떨어뜨리진 않는다. 아쉬운 건 다른 지점에 있다. 어쩌면 한국 광고계에서 가장 잘 만든 TV 광고 시리즈일지도 모를 아파트 광고에서조차 정상가족 너머의 다양한 관계와 주거 방식을 상상하지 못한다는 것. 좀 더 정확히 말해 그것은 상상의 영역조차 아니다. ‘문명’ 시리즈의 부부가 현실적인 만큼, 결혼하지 않은 동거 형태와 이성애 기반이 아닌 관계, 셋보단 둘이 낫다고 생각하는 부부 역시 더없이 현실적이다. 그런 면에서 ‘문명의 충돌’이라는 제목은 새삼 의미심장하다.
진정한 문명의 충돌이란 정상가족 모델 내에서 반복되는 익숙한 갈등이 아닌, 바로 그 모델과 그 모델을 당연히 여기는 이 세계의 관성에 대한 충돌 아닐까. 예술적 상상력의 진정한 파괴력은 새로운 사회적 각본에 대해서까지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에 있다. 그런 상상력을 만나볼 수는 없을까. 물론 문명의 충돌은 이미 벌어지고 있지만. 단지 TV에 나오지 않을 뿐.
▼ 위근우 칼럼니스트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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