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의 아트홀릭] "862대 1의 승자, 6천만원 우승 상금의 주인공은?"
■ 글 : 정승조 아나운서 ■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가 관객 1만 5천명을 돌파했다. 개막 닷새 만이다. 박혜령 청주공예비엔날레 보도 팀장은 지난 9월 6일 필자와의 통화에서 "9월 1일 개막 이후 9월 5일까지 집계 결과 관람객 1만 5천명을 기록했다"라고 밝혔다.
사실 이렇게 뜨거운 열기는 비엔날레와 함께 진행되었던 '2023 청주국제공예공모전'에도 가득했다.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조직위 집행위원장은 지난 9월 1일 CJB 모닝와이드 방송에 출연해 "공모전의 총상금은 1억 4천 3백만원이고 응모 작품은 전 세계 54개국의 작품 886건"이라며 "2023 청주국제공예공모전 중 백미인 공예 분야 경쟁률은 무려 862대 1이었다"라고 밝혔다. 1999년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우수 작가를 발굴하고 세계 공예의 흐름을 주도해 온 청주국제공예공모전답지 않은가.
정승조의 아트홀릭은 862대 1의 승자, 6천만원 우승 상금의 주인공인 2023 청주국제공예공모전 대상 수상자 '고혜정'을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정승조의 아트홀릭 독자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고혜정입니다. 저는 금속을 주재료로 오브제(또는 조각), 테이블웨어 그리고 장신구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Q 지난 8월 발표된 2023 청주국제공예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으셨어요. 당시 무엇을 하고 계셨고 수상 소식을 듣고 기분이 어떠셨어요.
당시 예정일보다 조금 일찍 발표가 났습니다. 여느 때처럼 저는 작업실에서 연말에 있을 전시 준비를 하며 작업 중이었는데요. 비엔날레 측으로부터 연락받았습니다. 조금 먹먹했습니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긴 했지만 워낙 다른 출품작들도 훌륭할 것을 예상했기에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었습니다.
그동안은 작품 생활하며 공모전에는 거의 출품하지 않았었고 주로 개인전과 단체전에 참가하며 작품 생활에 집중해 왔는데요. 언젠가부터 저 자신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고심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작품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받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처음 출품한 청주공예공모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앞으로 작업하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Q 작품 'The Wishes(소원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뭘까 궁금했어요.
이번 수상작 '소원들(The Wishes)'은 그동안 힘들 시기를 겪어왔던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마음속 깊이 담긴 간절한 소망을 담고자 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의 상자'는 원래는 항아리였다고 해요. 제우스가 인간에게 벌을 주기 위해서 판도라에게 선물한 항아리 안에서는 슬픔과 질병, 가난과 전쟁, 증오와 시기 등 온갖 악(惡)이 쏟아져 나오고 항아리 안에는 희망만 남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마지막 남은 희망으로 인해 불행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보며 살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이 작품은 3500여개의 민들레 씨앗 모양이 군집을 이루어 비정형적인 항아리 형상을 하고 있어요. 굴곡진 외관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많은 우여곡절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내포하는 동시에 완만한 곡선들은 제주의 오름을 닮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바쁘고 복잡한 사회에서 벗어나 휴식이 필요할 때 모두가 자연을 찾아가듯 인간이 갈구하는 희망은 자연 속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요.
민들레 씨앗을 호~ 불며 소원을 빌기도 하고 해돋이나 달 또는 별을 올려다보며 각자의 간절한 소망을 떠올리기도 합니다. 길에서 답을 찾기 위해 산을 오르거나 순례자의 길을 걷기도 하는데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소원을 빌듯 이 작품은 보는 사람의 각도에 따라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는 비정형적인 항아리입니다.
Q 작품 구상에 도움이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요.
그리스 신화 관련한 책을 읽다가 '판도라의 상자'가 희망이 담긴 항아리였다는 이야기를 보게 됐는데요. 거기에서 영감을 얻게 되었어요. 최근 팬데믹과 전쟁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많은 이들을 위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Q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나요. 완성까지 시간은 얼마나 걸렸는지도 궁금하고요.
그동안 해 오던 작업과 같이 기능을 함축한 형태라는 기본은 유지하면서 사이즈와 형태적인 면에서 과감한 시도를 해보았어요.
가느다란 선으로 제작된 것이기에 크기가 커지면서 의도했던 외곽 형태가 매끄럽게 표현이 안 될 수도 있었는데요. 비정형적인 형태이다 보니 오히려 굴곡지고 구부러지는 완만한 곡선으로 외곽 형태를 표현할 수 있었어요. 이를 통해 작품에 담고자 했던 제 의도가 더 효과적으로 표현됐지 싶습니다.
사실 제작 기간이 5개월 정도로 그간의 작업 중 가장 오래 걸렸는데요. 언제 끝날지 가늠할 수 없었던 게 심적인 부담이었습니다.
Q 제작은 어떤 과정과 순간의 반복이었을까요.
우선 민들레 씨앗 형태를 양식화해서요. 다양한 사이즈의 유닛 원형을 만들고 반복 제작했습니다. 이번 작업은 약 3500여개의 유닛을 마이크로 용접으로 한 유닛당 5~6포인트를 용접으로 접합했는데요. 작은 유닛들을 더 촘촘하게 배열해 밀도감을 높이고요. 크고 작은 유닛들을 적절히 배치해 볼륨감을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데 주력했습니다.
Q 작업 중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없었나요.
작가 생활하며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은 몇 번 있었지만, 이번 작품 제작은 그동안 제가 고민해왔던 요소들을 자유롭게 표현해보려고 해서 그런지 작품의 결과물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됐고요. 오히려 제작에 집중하는 하루하루가 즐거웠습니다. 매일 작업이 얼마나 진척이 될지 그날의 오후가 기다려지기도 했어요.
Q 작가께선 늘 '은'을 주로 써오셨는데요. 이번에도 그러셨나요?
저는 늘 은으로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작품 사이즈를 키우려다 보니 견고성을 높이기 위해서 황동(brass)으로 제작해서 은도금했는데요. 마치 은으로 제작한 것과 거의 효과가 똑같이 나왔습니다.
평소에 은을 주로 쓰는 이유는 은 색감이 주는 모던한 매력 때문입니다. 은 중에서도 '정은(sterling silver)'을 주로 쓰는데, 92.5%의 은과 7.5%의 동이 합금 되어 견고성을 더한 재료입니다. 빛나는 또는 백색을 뜻하는 그리스어 Argos에서 은의 원소기호 Ag가 유래한 것처럼 희고 빛나는 광택을 지녔습니다.
동양화에서 먹색 하나로 농담과 선의 굵기에 따라서 다양한 표현을 하듯이, 은도 한가지 색상인 것 같지만 무광 처리를 하거나 광택을 내거나 하는 마감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효과를 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Q 수상작인 The Wishes(소원들)은 무언가를 형상화한 작은 작업물이 이어져 있어요. 의미하는 바가 있다면요.
민들레 갓털(홀씨가 아니라 갓털이 맞는 표현이라고 합니다)을 형상한 유닛입니다. 민들레 씨앗을 관찰하고 여러 가지 샘플링 과정을 거쳐 조형의 요소 점, 선, 면이 모두 들어가 효과적으로 표현되는 한 가지 유닛이 도출되었고요. 그 유닛의 사이즈를 다양하게 변형시켜 제작했습니다.
민들레 시리즈는 제가 꾸준히 제작 발표해왔던 시리즈인데요. 민들레는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 마치 여러모로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도 굴하지 않고 작업을 이어가는 작가 생활과도 같고요. 씨앗이 수천 킬로미터까지 날아갈 수도 있다는 면에서 작품 생활 반경이 넓어지기를 바라는 제 마음과도 같지 싶습니다.
Q 대상작 말고도 작업 전반에 걸쳐 애정 가는 작품 BEST 2가 있다면요.
첫 번째는 '에스프레소 슈거 볼(espresso sugar bowl)'입니다.
이 용기는 제가 이탈리아 여행에서 에스프레소를 처음 접했던 일화를 바탕으로 탄생이 된 작품인데요, 매화 가지에 꽃이 피어 있는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실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은으로 제작되었고 자연을 담아 휴식과 편안함을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작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in the woods'라는 브로치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제가 제주 사려니 길 산책 중에 수집한 소나무 껍질을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
당시 산책 중에 약간의 비가 내리고 있던 기억을 그 안에 담았는데 소나무 껍질이 마치 큰 구름과 같아, 아게이트라는 천연석과 함께 매치하고, 작은 진주를 여러 개 매달아 빗방울을 표현하였는데, 진흙에서 진주를 발견한 것 같은 저에게는 숨겨진 보석 같아 브로치 뒷면 뒷장식에는 다이아몬드를 세팅하였습니다.
두 작품 모두 어떤 자연이 주는 편안한 휴식 같은 작업이라 제가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작업입니다.
Q 작업이 안 풀리거나 난관에 봉착할 때는 어떻게 하세요.
숲을 보려면 숲을 나와야 하는 것처럼 작업실에서 벗어나 다른 경험을 하려고 합니다. 진행하던 작업을 계속 붙들고 있으면 시야가 더 좁아져 더 안 풀리는 경우가 있거든요. 작업실 근처에 인왕산이 있는데 가까운 수성동 계곡이나 둘레길을 걷기도 하고, 작업 동료나 지인을 만나 이야기(작업과 관련되지 않더라도)를 나누다 보면, 해결점이 나오기도 합니다.
Q 작품의 영감은 어디서 받으시는지, 또 작업의 자양분은 무엇인가요.
저는 'simply nature'라는 주제로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기(器), 테이블 웨어, 장신구 작업을 해왔습니다. 세네카가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다'라고 말했듯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자연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천혜의 환경을 가진 제주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영향으로 자연과 늘 친숙한 저는 쉽게 간과될 수도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서정적이고 섬세하게 표현하려고 합니다.
제 작업은 자연을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주변에서 쉽게 보이고 그 아름다움을 간과할 수 있는 자연물 예를 들어 민들레의 씨앗, 소나무의 솔잎 등을 반복 제작한 후 군집적으로 구상하거나 나뭇가지에 매화꽃이 핀 모습을 간결하게 묘사하는데요. 단순한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제 나름대로 재해석해서 제작하게 됩니다. 관찰 대상을 정하면 그 형태를 파악하고 어떻게 금속으로 구현해낼지 다양한 샘플 과정을 거쳐 하나의 완성된 유닛이 나오면 그것을 반복 제작하고 접합하여 입체물을 만들어냅니다.
Q 앞으로의 계획 궁금하고요. 대중들께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나요?
앞으로는 자연과 화합할 수 있는 작업을 하려고 합니다.
인류가 발전하는데 많은 기여를 해왔던 자연에게 역습을 당하고 있는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지속이 가능한 예술 활동을 위해 관습을 바꾸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의 재료를 다루는 작업을 하면서, 작업의 효율성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작업 제작 과정이 자연을 훼손하는 일과 결부되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고찰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깁니다.
대량 생산하는 산업 현장에 비할 바 아니라는 이유로 그동안 간과하고 합리화시켰을지도 모르는, 어쩌면 자연에서 영감을 얻고 예술 활동을 하는 우리에게 창의성에 앞서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이 자연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아닐까 합니다.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그동안 지식과 지능을 활용해 왔다면, 앞으로는 지혜롭게 작업을 하여 자연과 균형을 이루는 삶을 추구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작가 고혜정에게 '공예'란?
공예를 얘기할 때 제가 가장 많이 거론하는 단어가 '온기'와 '정성'입니다.
공예는 작가가 다루는 재료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특정한 기술에 대해 오랜 시간 연마하고 축적되어 어떤 경지에 이르러야 하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대량 생산된 제품과 다르게 그 오랜 시간 동안 작가의 손을 거쳐서 만들어진 물건이기에 그만큼의 온기와 정성이 사용자에게 전달되어 그 가치도 높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를 얘기한다면 공예는 '휴식과 여유로움을 주는 사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작가의 은 티스푼을 사용한다면, 찻잔과 함께 세팅했을 때 시각적으로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손에 닿았을 때의 촉각과 미각까지 만족시키고 마지막으로 물기가 있는 은 스푼을 닦는 행위까지 차를 마시는 짧은 시간 동안 일상을 멈추고 은 티스푼과 함께하는 모든 과정의 시간이 휴식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고혜정 작가의 '소원들'을 비롯해 전 세계 57개국 251명(팀)의 작품 3,100여 점을 살펴볼 수 있는 2023청주공예비엔날레는 오는 10월 15일까지 청주 문화제조창과 청주시 일원에서 볼 수 있다.
아울러 지난 9월 1일 'CJB 모닝와이드'는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에 대해 변광섭 청주공예비엔날레조직위 집행위원장을 인터뷰했다. 다시 보기는 유튜브 CJB청주방송이나 청주방송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사진·영상 제공 : 작가 고혜정, 음악작곡.연주 : KOOSKO, 영상편집 : 이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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