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바이블’ 하정훈 “예견된 교권 사태, 두 돌까지 훈육 제대로 안 하면 아이도 힘들어진다”

문영훈 기자 2023. 9. 7.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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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학부모의 도 넘은 행동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다. 우리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할까. “부모의 권위가 없으면 교권도 설 수 없다”고 강조하는 하정훈 원장을 만났다. 

7월 18일 서울 서이초에서 20대 초임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권 추락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듯 수많은 교사가 분노와 애도를 마음에 품고 한여름 아스팔트 위로 나왔다. 이후에도 유명인의 특수교사 고소 사건, 이른바 '왕의 DNA’로 불리는 교육부 사무관의 교사 갑질 사건까지 일부 학부모의 도를 넘은 자식 사랑이 세간에 알려졌다.

서울 동작구에서 하정훈소아청소년과의원을 33년째 운영하는 하정훈(63) 원장은 최근 '삐뽀삐뽀 119 소아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전국의 많은 부모에게 육아 조언을 건네고 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부모의 권위’다. 보호와 사랑만이 좋은 육아가 아니라는 것. 8월 11일 금요일 진료를 마친 시간, 하 원장을 만났다. 전날 대대적으로 보도된 '왕의 DNA’ 사건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애들은 평범하게 키워야지 내 아이를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모든 게 꼬이는 게 된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의무와 책임 가르쳐야"

7월 29일 서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식(왼쪽). 서울 서울시교육청 정문에 서이초 교사 추모 리본과 추모글이 붙어있다.
아이가 특별하게 보이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요.

그건 선생님이 판단할 일이죠. 부모 눈에는 다 귀하고 특별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선생님 역할이 중요한 거죠. 그걸 부모가 하려니까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아주 특별한 아이면 선생님도 알게 돼요. 부모 판단보다 선생님 판단이 맞는 겁니다.

교권 추락이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된 거죠. 우선 부모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권위를 누가 인정하겠습니까. 교사가 가진 힘도 다 빼놨어요. 아이들이 얼마나 눈치가 빠른데요. 아이들도 선생님 알기를 우습게 아는 거죠. 부모가 마냥 잘해주니까 아이가 부모의 권위를 무시하고 당연히 학교 선생님을 존중할 리가 없죠. 선생님에게 권한을 줘야 학교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요. 일련의 사태는 예견된 문제라고 봅니다.

얼마나 됐나요.

15년 사이에 급격하게 나빠졌다고 봐요. 아이 위주의 육아와 교육이 만연하게 된 거죠. '아이는 사랑으로 키워야 한다’ '아이에게 꽃길만 걷게 하겠다’ 등이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아기를 키우면 아이는 자기가 대장인 줄 알고 학교에 가서도 대장처럼 굽니다. 아이에게 권리는 굉장히 강조하는데 문제는 권리에 따른 의무와 책임을 무시하고 있는 거죠.

부모가 어떻게 의무와 책임을 아이에게 가르쳐 줄 수 있나요.

권위가 있으려면 아이가 부모에게 바랄 게 있어야 합니다. 부모는 부모 위주로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그 팀에 끼려고 노력하면서 부모 말을 듣게 됩니다. 저는 여유가 있더라도 5% 부족하게 아이를 키우라고 합니다. 부족한 걸 얻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고 그럴 때 권위가 생기는 겁니다. 아이에게 규칙과 한계를 명확하게 정해주고 무조건 따르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두 돌까지 훈육하지 않아도 된다’ 같은 이상한 말이 떠돌고 있어요.

잘못된 말인가요.

강아지도 어릴 때 길들여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키우기 힘들고요. 어릴 때 훈육하는 것과 나중에 훈육하는 건 난이도가 아예 다릅니다. 그걸 학교에 보낸 뒤에 선생님에게 해달라고 하면 될 리 없죠. 부모는 아이를 일대일로 보지만 선생님은 여러 명의 학생들을 같이 봐야 하잖아요.

말도 못하는 아이에게 훈육하는 건 가혹하지 않나요.

훈육은 가르치는 게 아닙니다. 틀을 잡는 겁니다. 아이들이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구나’를 알게 되는 것. 이게 훈육의 시작입니다. 이유식 먹을 때는 앉아서 먹어야 한다와 같은 규칙 안에서 마음껏 놀게 해야 합니다.

어릴 적 부모가 엄하게 대해서 상처가 남았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훈육을 하지 말자고 하죠. 그런데 그건 백 중 두세 명의 이야기입니다. 붕어빵을 만들 때 불을 세게 해서 붕어빵을 태웠다고 칩시다. 그럼 불을 줄이면 됩니다. 그런데 붕어빵 틀을 버리자고 하는 거죠. 그 틀이 부모와 선생님의 권위입니다. 그걸 두 돌까지 만들어주지 않으면 나중에 만드는 건 너무 힘든 일입니다.

두 돌이 지나고 아이를 훈육하는 것도 가능한가요.

가능하지만 몇 배 이상 힘들죠. 좀 과격하게 말하면 두 돌까지 훈육이 제대로 안 되면 그 이후가 많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훈육이라는 건 자기 통제예요. 내 행동을 컨트롤 하는 능력을 기르는 거죠. 예를 들어 학교에서 게임을 하고 싶다고 게임할 수 있나요? 학교에선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런 통제가 안 되는 학생들은 욕망을 참지 못하죠. 성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쉬고 싶잖아요. 하지만 내가 스스로와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일을 해야 하죠. 비싼 차와 비싼 가방도 누구나 사고 싶죠. 하지만 참아야죠. 그걸 못 참으면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그 자기 통제를 두 돌 안에 가르쳐야 해요.

체벌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체벌을 논의하기 전에 가족에 대한 소속감 문제를 먼저 이야기해야 합니다. 엄마 아빠의 행복한 삶, 그리고 아이가 여기에 끼이려고 하는 게 소속감과 유대감이죠. 이런 상황에서는 체벌이 문제가 안 됩니다. 하지만 가족이 주는 소속감 없는 체벌은 폭력이 됩니다. 가정의 소속감이 사라진 지금 상황에서는 체벌은 안 됩니다.

학생인권조례 개정 움직임이 있습니다.

저는 처음 만들어졌을 때 학생인권조례엔 권리만 있지 의무와 책임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권리를 규정한 것인 만큼 의무도 함께 규정해야죠. 또 학생이 잘못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어야 합니다. 통제를 할 수 있어야죠.

하 원장은 교권이 바로 서려면 "부모가 선생님을 어렵게 생각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내 아이를 교육시키는 걸 선생님이 대신해 주잖아요. 아이에게도 '선생님 말 잘 들어야 해’라고 강조해야 합니다. 요즘은 '선생님이 뭐라고 하면 이야기 해’라고 하잖아요. 부모가 선생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데 어떻게 아이가 선생님의 권위를 인정하겠어요. 문제는 일부 학생으로 인해 대부분의 아이들 시간이 빼앗기는 거죠. 학교라는 시스템이 유지되려면 선생님이 모든 걸 통제할 수 있고 잘못된 학생을 뺄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해요."

통계청이 발표한 '2022 출생·사망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24만9000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10년 전(약 48만 명)의 반토막 수준이다. 지난해 저출산 대응 관련 예산은 51조원. 16년간 280조 원의 예산이 들어갔지만 합계출산율은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다. 하 원장은 "20만 명의 아이가 덜 태어나는 건 전시나 다름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준 전시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과연 있을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9년 발표한 '저출산·고령사회 대응 국민 인식 및 욕구 심층 조사 체계 운영’ 보고서에 따르면 '출산하지 않는 주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미혼 성인남녀 2000명에게 물은 결과 44.7%가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아이 양육 및 교육 비용이 부담스러워서’(19.3%), '아이 없이 생활하는 것이 여유롭고 편해서’(12.6%) 등이 뒤를 따랐다.

보통 부모가 보통 아이를 키우는 법

‘육아에 돈이 많이 들고 힘들어서’ 아이를 안 낳는다고 합니다.

가스라이팅의 일종입니다. 정부는 저출산 대책을 만들 때 '아이를 키우는 건 힘드니까 우리가 도와줄게’ 태도로 임하죠. 그게 말이 되려면 정부의 지원이 부족한 국가에선 아이가 덜 태어나야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죠. 대책 자체가 육아는 힘들다는 이미지를 자꾸 심어주는 겁니다. 물론 아이 키우는 일은 힘들죠. 하지만 과거엔 견딜만하다, 보람 있다고 생각했어요. 요즘은 사회와 정부가 나서서 힘들다고 강조합니다. 사실 국가가 해야할 역할은 지원보다 아이 키우는 게 재밌다는 인식을 만드는 겁니다.

인식 변화는 어려운데요.

그렇죠. 하지만 한국은 트렌드에 민감하잖아요. 아이 키우는 게 재밌고 즐거운 일이라는 이미지만 만들어진다면 지원 없이도 아이를 낳을 거예요. 대표적인 사례가 반려견입니다. 반려인에 대한 지원 없이도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는 계속 늘고 있어요. 오히려 반려견을 키우는 장벽이 과거보다 더 많아졌죠.

육아 예능은 오랫동안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보통 부모가 보통 아이를 키우는 건 안 나오죠. 아이에게 비싼 걸 사줄 수 있는 여유로운 부모, 혹은 아이가 문제 행동을 하는 사례가 나오죠. 그러니까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미안해지거나, 솔루션 육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솔루션 육아는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아이들에게는 필요한 방식 아닌가요.

그렇죠. 하지만 보통 부모는 그걸 따라하면 안 됩니다. 방송 초반에 고지해 줄 필요가 있어요. '이 방식은 보통 아이들에게 쓰면 안 된다’ 같은 안내가 필요합니다. 군대에는 관심병사가 있잖아요. 군대 전체를 관심병사 위주로 운영하면 군대가 돌아가지 않듯, 아이의 행동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 써야 하는 방식을 보통의 육아에 적용하면 안 된다는 거죠. 설명 육아도 마찬가집니다.

설명 육아는 뭔가요.

아이에게 모든 걸 설명해주는 거죠. 그런데 사회에 나가면 나한테 다 설명해 줍니까? 아니죠. 아이가 스스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아이를 자꾸 납득시키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한 두 마디로 알려주되 이후엔 내버려 두면 아이는 기본적으로 자기가 스스로 세상을 이해하려고 해요. 아이는 자기 눈으로 본 세상을 스스로 이해하게 돼요.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 아닙니다.

아이에 대한 훈육을 구시대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전통을 참 좋아하면서 육아법에 관해선 전통을 싫어하더라고요. 제가 말한 훈육은 전 세계에서 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로마 유적을 좋아해서 유럽에 자주 가는데요. 유럽의 어느 국가를 가건 부모가 정말 엄해요. 사랑하지만 그만큼 엄하게 아이를 대하는 거죠. 지금 한국에서 하는 방식은 전 세계에 아무도 안 하는 육아법을 하고 있는 거예요.

"소아과 의사가 진짜 육아 전문가"

하 원장은 현재 구독자 32만 명의 '하정훈 삐뽀삐뽀 119 소아과’를 운영하고 있다. 590개의 영상이 게시돼 있을 만큼 활발히 활동한다. 이 채널의 이름은 동명의 저서에서 따온 이름이다. 1997년 출간된 '삐뽀삐보 119 소아과’는 발간된 지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육아의 바이블로 통한다.

왜 육아에 관한 콘텐츠를 계속 만드시나요.

저출산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사실 제가 재밌어서 하는 겁니다. 내가 가진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걸 주는 거죠. 저는 어릴 적부터 꿈이 소아과 의사였어요.

최근 소아과 의사 부족으로 소아과 '오픈런’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소아과 의사가 부족하지는 않아요. 다만 소아과를 운영해서 돈을 벌 수 없는 거죠. 그러니 폐업하고 자꾸 다른 일을 하게 되고요. 사실 소아과 의사는 질병 치료만 하는 게 아니라 육아에도 정통해요. 특별한 케이스가 아닌 보통의 육아죠. 하지만 육아 상담을 해주는 건 돈이 안 되거든요. 정부는 육아 지원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쓰면서 진짜 육아 전문가인 소아과 의사에는 신경을 안 쓰니 답답한 노릇이죠.

#하정훈 #육아 #교권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뉴스1 
사진출처 유튜브캡처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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