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안암병원, '환자 1초'를 소중히 여기는 병원될 것"
고려대 안암병원이 메디컴플렉스 신관 시설을 본격적으로 가동한다. 6일 준공식을 진행해 10년에 걸친 대규모 사업을 일단락했다.
기존보다 병원의 공간을 2배가량 키웠으나, 넓어진 공간을 오롯이 환자가 활용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기존 1051개의 병상을 그대로 유지해 환자 1인당 공간을 늘렸다. 진료와 입원 과정에서 쾌적한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상급종합병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의료서비스 향상에도 역량을 쏟았다. 응급의료센터와 수술실 등 중증 의료시설을 확장했고 중환자실도 대부분 1인실로 전환하고 있다.
코메디닷컴은 지난 4월 취임해 신관 신축 사업을 마무리한 한승범 고려대 안암병원장을 만났다. 한 원장은 인터뷰에서 병원이 일부 비용과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가치 중심의 의사결정'에 초점을 뒀다고 강조했다. 병원은 결국 사람을 살리는 곳이라는 '원칙'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설명이다.
"경영자로서 이런 일들을 쉽게 결정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겠죠.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었습니다. 병원 공간이 늘어난다면 그만큼 예산과 비용이 늘어나고 여러 가지 수익과 경영상 압박 요소도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익과 가치적 요소의 균형을 맞출 방법을 상당히 고민했습니다.
병원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료를 잘 보고 환자를 잘 치료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단기간 이익을 늘리기 위해 병상수를 늘리기보단 중증·응급 치료 역량을 더욱 높여 장기적으로 상급종합병원으로서 더 적합한 수익성을 보완하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병원의 변화, 환자가 '편안하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 원장은 특히 최종 정비 과정에서 '방문한 환자가 정말 병원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지' 여부를 가장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모든 병원이 환자 중심 병원을 추구하곤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지점은 실용적인 접근입니다. 아무리 병원이 의료서비스가 편리해졌다고 홍보해도 환자가 변화를 직접 느끼지 못하면 어떤 소용이 있을까요? 그렇기에 우리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고려대 안암병원이 정말 편해졌다'고 직접 느끼고 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를 위해 병원은 환자의 입장에서 병원을 방문했을 때 느낄 수 있는 불편한 일들을 찾았다. 지난해엔 한국생산성본부와 대대적인 환자 경험 조사를 진행했다. 국내 상급 종합병원 이용 환자를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고 경험담을 분석하고 비교했다. 간담회도 열어 병원 관계자가 환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개선방안을 토론했다.
이를 통해 알아낸 것은 접수와 수납, 진료 대기와 검사실, 진료실 이동 등 복잡한 구조를 가진 대형병원이 환자들에게는 낯설고 어려운 공간이라는 점이다.
한 원장은 환자의 불편 개선을 위한 장기 계획에서 신관 준공은 '변화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하드웨어(시설)의 개선에 맞춰 소프트웨어(환자 경험)의 개선이 이어질 것"이라면서 향후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 두 가지 약속을 제시했다.
"우선 우리 병원은 '여러분의 힘든 여정을 함께 하겠다'는 첫 번째 약속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진료와 수납을 비롯한 각종 행정절차를 간소하게 정비하고 진료 과정에서도 더욱 친절히 설명하며, 초협진 진료를 확대해 치료 계획 결정에 환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론 고려대 안암병원이 다른 누구보다도 환자에게 신뢰받고 사랑받는 병원이 되길 바랍니다.
또 다른 약속은 '환자의 1초'도 소중히 여기고 함께 시간을 아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단 것입니다.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분 1초의 골든타임을 다투는 중증·응급환자를 시간의 지체 없이 치료하겠다는 의지입니다. 동시에 병원을 찾는 모든 환자가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미래병원도 본질은 같아... 인재 양성·정책 연구 강화해야
고려대 안암병원의 이러한 변화는 2025년 고려대 창립 120주년과 2028년 고려대 의대 창립 100주년을 앞둔 고려대의료원의 계획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미래병원으로의 전환을 선도하고 역할과 모범을 제시해 'K-호스피털(병원)'의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목표다.
다만, 한승범 원장은 "미래병원을 향해 가더라도 결국 의료기관의 본분은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상급 종합병원과 대학병원으로서 갖는 본질인 진료와 의학 연구, 사회적 책임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한 원장은 고려대 안암병원에 더해야 할 방향으로 인재 양성과 의료 정책·경영 연구도 제시했다.
이는 한 원장이 고민하는 대학병원의 미래 역할이기도 하다. 교육적으론 후배와 후학들이 필수·중증의료 현장을 떠나지 않도록 수련·노동환경 변화에 맞춰 의대 교육과 수련 과정을 체계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일이 단순히 해결해야 할 과업으로 느껴질 때 의사로서의 생활은 힘들어지게 됩니다. 기본적으론 의사는 봉사하고 타인을 돕는 직업입니다. 봉사하는 사람은 물질적인 보상 외에도 '무형의 보상'을 통해 행복감을 느낄 때 타인에 대한 헌신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의사는 공부하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연구하고 의료기술을 다듬으며 끊임없이 자기 완성도를 높여야 하죠.
이런 일들이 가능하려면 의사는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이 일에 집중하고 담아야 합니다. 과거에는 의국(전공의 기숙사)이나 100일 당직 등의 수련체계가 이를 도왔습니다. 스승과 선배 등 개인적 관계를 통해 의료의 본질을 전달하는 도제 교육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환경이 크게 달라지면서 이러한 생각을 전달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죠. 국내만이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의료원 차원의 인재 양성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습니다."
한 원장은 동시에 경영적인 측면에서도 대학병원과 상급 종합병원의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미래 의료 수요에 대비해 의료전달체계를 정비할 혜안과 혁신 의료기술 연구 강화·사업화 활성화 방안, 의료 생산성을 극대화할 병원 시스템 효율화 방안 등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럴 때 중증·응급의료와 환자 경험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는 가치 중심 의사결정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경영적인 여유 공간도 찾을 수 있단 이유에서다.
오는 11월 17~18일 신관 개관을 계기로 개최하는 병원의 국제 심포지엄에서는 이와 관련한 내용이 다뤄질 예정이다. 국내외 전문가를 초청해 스마트병원 도입, 의료기관 운영 혁신 방안 등을 모색하는 동시에 정책 전담 세션도 따로 마련한다. 정책 세션에선 국내외 사례와 제언을 통해 미래의료 환경에 대비한 상급 종합병원의 역할과 의료 전달체계 정비 방안을 논의한다.
최지현 기자 (jh@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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