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처음으로 '한국 학교' 가는 날

칼럼니스트 이은 2023. 9. 7.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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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육아 인류학] 미국 사는 우리 아이들, 한국인으로서의 뿌리 지키기

오늘은 우리 아이들의 생애 첫 '한국 학교' 개강 일이다. 그 동안 유색인종이 거의 없는 작은 도시에 살다가 캘리포니아로 이사 오게 되면서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바로 한글학교 혹은 한국학교 프로그램이었다. 높은 물가와 집세,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이슈로 최근 들어 캘리포니아를 떠나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데 우리가 무리해서 오히려 캘리포니아로 이사온 이유 중의 하나가 한국인으로서의 뿌리를 기억하는데 더 좋은 환경이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과연 캘리포니아 지역에는 많은 한국 학교가 있었고 매주 토요일 진행하는 한국학교에 아이들을 등록시키게 되었다. 물론 아이들은 처음에는 토요일에도 학교에 가야한다는 것에 망연자실한 표정이었지만 간식 시간도 있고 열심히 공부하면 할아버지 할머니께 한국어로 멋있는 편지도 쓸 수 있다고 하니 결국 학교에 간다고 약속했다.

큰 아이는 완벽한 이중언어 구사자 이다. 방학 때 한국에 가도 말을 따로 하지 않으면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인 줄 모를 정도로 발음과 언어 구사력이 좋다. 하지만 문제는 한국어 쓰기인데 한국 학교에 다녀 본 적도 없고 게으른 엄마가 따로 공부시킨 적이 없으니 맞춤법이 많이 부족하다. "할머니, 만이 보고 십어요" 하고 쓰는 식이다. 작은 아이는 아직 유치원 생이니 아예 한글을 가르칠 생각을 안했는데 문제는 미국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반일반 유치원을 다니는데도 엄청난 속도로 한국어가 줄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집에서도 자꾸 영어만 쓰려고 한다. 내가 한국어로 말을 해도 대답을 계속 영어로 하는 식이다. 내가 한국어로 모르는 단어를 쓰면 영어로 자신은 알아들을 수 없다며 다시 영어로 말해달라는 식이다. 처음에는 유치원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아서 언어 혼란이 오나 보다 하고 배려해줄 생각에 영어로 설명을 해주곤 했는데, 얼마 전부터는 다시 한국어로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작은 아이가 점점 한국어를 쓰는 빈도수가 줄어드는 것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갖게 된 아이들의 한글 교재. 아직은 책을 펴 보지도 않았지만 차츰 한국어에 더 관심을 갖게 되길 바라며... ⓒ이은

언어가 생각과 문화의 근간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큰 아이지만 나는 큰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끼는 그 특정한 유대감과 정서 교감에 한국어도 큰 일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아이와도 그 교감을 지속적으로 느끼고 싶고 아이가 미국에서 자라더라도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고 체감하면서 크도록 이끌고 싶다. 미국의 대학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까지 강의 했던 엄마지만 내 아이들을 꾸준히 체계적으로 지도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당장 급한 세미나가 있고 당장 급한 강의 준비가 있으면 아이들의 한국어 공부, 한국 문화 공부는 뒷전으로 밀리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전에 살던 곳에서는 한국 학교는 고사하고 다른 한국인조차 찾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사 온 이 곳에서 한국 학교를 찾고 참 반가웠다. 2~3세들의 한국어 교육과 한국 문화 교육이 꽤 오래된 숙원 사업이었던 역사가 긴 한국학교였다. 다양성이 강조되는 미국 사회이기에 우리 아이들이 더 자신의 뿌리에 긍지를 갖고 스스로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아이들의 한국 학교 첫날이다. 아이들은 조금은 긴장한 모습으로 각자가 교실로 들어간다. 소명감을 갖고 아이들을 지도해 줄 선생님들의 인상이 참 좋아 보였다. 다양한 나이와 다양한 표정의 아이들이 어우러져 교실로 들어간다. 이 곳의 아이들 대부분이 아직은 거의 영어로만 대화하고 있지만 곧 한국어가 자연스럽게 섞여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공립도서관 세계어 코너에 가서 한국어 동화책을 몇 권 빌려와 봐야겠다. 오늘의 잠자기 전 아이들 동화책은 한국어 동화책이 될 것이다.

*칼럼니스트 이은은 한국과 미국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 미국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마치고 현재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낙천적인 엄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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