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유착→여론 눈치보기→복귀’…준법 비웃는 전경련 부활 패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한국경제인협회로 이름을 바꾸고 새 출범했다. 전경련은 1961년 삼성그룹 고 이병철 회장 주도로 한국경제인협회로 창립하였으며 이후 1968년 전경련으로 개칭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 미르재단 등에 기업들의 돈을 거둬 출연한 정경유착의 주역으로 지목돼 한동안 고사해 있었으나 윤석열 정권하에서 부활하는 중이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탈퇴했던 삼성, 에스케이(SK), 현대차, 엘지(LG) 등 국내 4대 그룹도 속속 복귀하며 전경련 부활에 힘을 싣는다.
전경련 부활은 재벌의 정경유착·기업범죄 등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우선 정경유착의 경우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겨버렸다. 정경유착은 정치권력과 경제권력과의 은밀한 거래이기 때문에 사전적으로 막기가 쉽지 않다. 조직 내의 윤리위원회 등의 역할에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러기에 범죄를 저지른 주체에 대한 엄격한 사후 처벌이 중요하다. 처벌이 강해야 범죄의 억지효과(deterrence effect)가 생긴다. 이번 사례는 정경유착을 저지르고 잠시 소나기를 피하다가 윤리위원회·윤리헌장을 설치하며 슬그머니 부활하는 최악의 패턴이다. 거기에 언론에서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과거 전경련은 재벌총수의 배임·횡령·탈세 등 경제범죄에 대한 선처 논리를 끊임없이 전파한 주역이다. 재벌총수한테 실형을 주면 국가 경제가 무너지고 그룹이 무너질 것이라는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공포마케팅 말이다. 재벌총수가 범죄를 저지른 후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받고, 또는 실형을 받더라도 사면과 가석방으로 풀려나고 바로 경영으로 복귀하는 악순환이 다시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
■ 부활에는 명분이 없다
전경련 부활을 둘러싼 근원적인 질문은 도대체 부활의 이유가 무엇인가다. 재계 쪽부터 살펴보자. 재계의 이익단체는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이 있다. 나아가 재벌들은 대관 업무를 할 수 있는 자체적인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거기에 4대 그룹은 내년 2월 정기총회까지 전경련 활동을 지켜본 뒤 회비납부와 회원사로서의 활동을 논의한다는 애매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자기들도 정경유착 오명 단체에 재가입하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 도움이 될지 확신이 없는 것이다. 그러면 전경련 내부의 간절함인가? 그러기에도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우선 부활의 명분과 비전이 없다. 처음에는 한국의 헤리티지를 지향한다고 했다. 헤리티지는 미국의 유명한 보수적 씽크탱크로 작은 정부, 개인의 자유, 강력한 국방 등의 원칙에 따라 다양한 정책을 연구해 제시했다. 특히 공화당 쪽에 정책 영향력이 높다. 그래서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비판이 있자 전경련은 갑자기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로 롤모델을 바꾸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는 초당적(bipartisan) 씽크탱크를 지향하고 국가안보, 국제정치 등에 강점을 보이는 기관이다. 이 기관의 예산은 기업기부 32%, 각국 정부 25%, 재단 24%, 개인기부 14% 등으로 분산되어 있다. 전경련이 갑자기 국가안보 중심의 씽크탱크를 지향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기업 그것도 거대 재벌의 회비에 의존하는 전경련이 중립적 씽크탱크가 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리고 씽크탱크가 되기에 전경련은 역량이 모자란다. 이번에 통합된 한국경제연구원은 현 정권 초반 청와대 개방 및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제도적 신뢰도’가 증가해 국내총생산(GDP)이 최대 12조원까지 증가한다는 낯뜨거운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재계도, 전경련 내부도 아니면 결국 부활의 주역은 정권인데 정권 관계자 그 누구도 시원하게 얘기하지 않는다. 다만 ‘윤심’의 대표라 불리는 김병준이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에 이어 상근고문으로 임명됐다. 정권이 4대 그룹과의 직통 창구를 만들어 놓은 셈이다.
■ 공포 마케팅의 효과
전경련은 범죄를 저지른 총수에게 실형을 주면 또는 경영에서 물러나면 나라가 망한다는 악의적 사실 왜곡의 주역이다. 한 예로 2012년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의 횡령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 당시 전경련은 기업가 정신 위축이 우려된다는 내용의 탄원서를 냈다. 이런 예는 셀 수 없이 많다. 이는 검찰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이나 기업 범죄 수사에 밝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여하튼 이런 논리는 총수만 행복하게 한다. 경제를 살린다는 논리로 이번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사면 전 고향 주민·동창 수백명에 최대 1억원까지 현금을 쏘더니 지난주 82살의 나이에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3월 배임·횡령 형기가 만료됐으나 관련 법률에 따라 5년간 취업이 제한됐다가 올해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되면서 취업 제한이 풀렸다.
경제개혁연구소의 ‘재벌 총수일가와 전문경영인의 배임・횡령 등 범죄와 형사처벌・취업제한 현황’을 보면, 2011~2021년 동안 배임·횡령 등으로 재벌총수 일가의 유죄가 확정된 사건은 총 11건이다. 총수일가 18명 중 9명은 실형, 9명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실형을 받은 9명 중 6명은 형이 종료되었는데 형량을 모두 채우고 만기 출소한 경우는 한명도 없다. 사면·가석방 등으로 풀려난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자신의 범죄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기소 또는 유죄 확정 이후에 일시적으로라도 회사에서 퇴직한 총수일가는 16명 중 4명에 불과하다. 핵심 경영진이 범죄를 저지른 후 집행유예로 풀려나거나, 실형을 받더라고 사면·가석방으로 풀려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경영은 계속한다. 선진국 상장회사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유독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데에는 전경련이 퍼뜨린 공포 마케팅이 한몫했다. 이런 곳이 중립적인 입장에서 각종 공공정책에 신뢰할 만한 보고서를 내는 씽크탱크로 거듭나겠다고 하니 이게 진정성 있는 계획인지 그냥 부활을 위한 명분 쌓기에 불과한지 헷갈린다.
오랜 세월 동안 평판을 구축해온 국제전략문제연구소도 최근 구글, 아마존, 메타, 애플 등 빅 테크 기업들이 기부금액을 많이 올려서 문제가 되고 있다. 규제이슈가 집중된 빅 테크 기업들이 씽크탱크를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시도이다. 하물며 4대 그룹에 이렇게 목을 매는 전경련이 중립적 씽크탱크로 거듭나겠다니 어이가 없다. 거기다 전경련은 현재 규제이슈가 큰 카카오·네이버에 먼저 가입요청까지 하였다.
■실질적 ESG 경영의 시금석, 전경련
아무런 명분이 없는데도 전경련은 부활했다. 그럼 향후의 몇 가지 포인트를 짚어보자. 우선, 4대 그룹 등은 전경련의 비전과 조직체계가 명확해지고 그것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어떠한 활동도 하면 안 될 것이다. 특히 삼성 이재용 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전경련 탈퇴를 약속하고 앞으로 전경련 활동을 안 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번에 결국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전경련 부활의 물꼬를 터준 셈이 됐다. 이재용 회장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하고 삼성 준감위도 마찬가지이다. 정경유착을 방지하라고 만들어진 조직이 정경유착단체의 부활을 도운 꼴이다. 향후 정경유착이 발생하면 탈퇴하라고 삼성계열사에 권고했다는데 이는 사후약방문식 처방이다. 전경련은 4대 그룹이 핵심이다. 4대 그룹 역할 없이 정경유착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 이전 국정농단과 다를 것이 없다. 4대 그룹은 정경유착이 일어나면 사후적으로 사과하며, 우리는 정치권력에의 피해자라며 탈퇴할 것이다. 이러라고 준감위, ESG 위원회 등을 만든 것이 아니다. 4대 그룹의 준법 관련 위원회들은 더 적극적으로 전경련을 견제해야 한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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