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 두 방 60만원…"남는 게 없어" 대상포진 백신, 병원은 부담?
[편집자주] 한번 걸리면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대상포진은 요즘 같은 환절기를 잘 노린다. 큰 일교차에 면역력이 떨어지기 쉬운 틈을 타 침입하기 좋아서다. 최근 백신 수요가 높아진 배경이다. 다행히 지난해 12월 항체 생성률이 높은 백신 1종이 추가 승인되고 제약업계에서 대상포진 후 신경통 치료제 개발에도 속도를 내면서 대상포진 예방·치료법이 진화하고 있다. 문제는 대상포진 백신 접종 비용이 최고 60만원에 이를 만큼 비싸졌다는 것. 그런데도 병·의원에선 '남는 게 없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몸값 높아진 대상포진 백신의 무료 적용 가능성과 대상포진 후 신경통 치료제 개발 현황, 예방법 등을 짚어본다.
최고 60만원에 이르는 높은 가격에도 대상포진 백신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일부 업체에선 물량이 부족해 공급을 못할 정도란 얘기도 나온다. 올 상반기 대상포진 백신 접종횟수가 전년 동기보다 2배가량으로 늘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대상포진 백신 수요가 되살아난 것으로 풀이된다. 대상포진 환자수가 늘어 관심도가 높아지고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대상포진 백신 무료접종을 시작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일교차가 커지면서 면역력이 떨어지는 이달에는 백신 수요가 더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6일 의약품 조사기관 아이큐비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대상포진 백신 접종횟수는 40만5163도즈(1회 접종분)로 전년 동기 20만312도즈 대비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9년 상반기 접종횟수인 37만5800도즈보다도 많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대상포진 백신인 스카이조스터(제조·판매 SK바이오사이언스)와 '싱그릭스'(제조 GSK, 판매 GC녹십자·광동제약), '조스타박스'(제조 MSD, 판매 HK이노엔)의 접종횟수를 더한 수치다.
분기별 대상포진 백신 접종량을 보면 2019년 2분기 18만7227도즈에서 4분기 26만7783도즈까지 증가했지만 코로나19 발생 직후인 2020년 1분기 11만7831도즈로 급감했다. 이후 2021년 3분기 8만4480도즈까지 줄었다가 올해 들어 1분기 20만8186도즈, 2분기 19만6977도즈로 증가했다.
제약업계에선 코로나19가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에 가까워지면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등으로 감소했던 대상포진 백신 접종 수요가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GSK가 배우 마동석을 기용해 '당신도 대상포진 대상자'라고 광고하는 등의 영향으로 백신 접종 인지도가 늘고 대상포진 환자수가 많아진 점도 수요 증가 요인이 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7년 71만1442명이었던 대상포진 환자수는 2019년 74만4516명, 2021년 72만5831명으로 늘었다.
일부 지자체들이 65세 이상 노인들에 무료로 대상포진 백신을 접종시켜주는 사업을 하는 점도 원인이다. SK바이오사이언스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잠잠해진 올해부터 대상포진 백신 수요가 늘면서 공급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지자체에 공급하기로 한 물량은 병의원 도매상의 물량을 바탕으로 전체 공급량을 추산하는 아이큐비아 통계에 잡히지 않아 실제 대상포진 접종량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매출 기준 올 상반기 대상포진 백신 시장이 약 45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3% 증가했다. 시장 확대에 따라 제약사 간 경쟁도 치열해졌다. 지난해 12월 국내에 출시된 싱그릭스는 50만~60만원(행사 시 40만원대)에 달하는 가격에도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항체생성률이 97.2%에 이른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해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다. 매출 기준 올해 2분기 점유율이 47.2%(매출 111억원)로 1위에 올랐다. 올해 1분기까지만 해도 매출 점유율 1위는 43.4%(매출 95억원)인 스카이조스터였다.
접종량 기준 2분기 점유율은 스카이조스터(39.3%, 7만7314도즈)가 여전히 1위다. 이어 싱그릭스(31.1%, 6만1270도즈), 조스타박스(29.6%, 5만8393도즈) 순이다. 통계에 잘 잡히지 않는 지자체 대상포진 백신 접종 물량을 감안하면 스카이조스터와 조스타박스 접종량은 더 많을 수 있다. 스카이조스터와 조스타박스는 50세 이상 항체생성률이 60~70%가량으로 비교적 낮아 가격도 각각 15만원 내외, 17만원 내외로 싱그릭스보다 저렴하다. 2회 접종해야 하는 싱그릭스와 달리 1회만 접종해도 되고 접종 후 통증이 덜해 지자체에서 주로 이 두 개의 백신을 사용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도 대상포진 백신 수요 증가세는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대상포진 백신 접종 인식이 확산하고 있고, 통상 백신 접종이 가장 활발한 시기가 면역력이 떨어지는 7~9월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대상포진 백신 시장 규모도 2021년 27억8000만달러(약 3조6800억원)에서 2028년 63억5000만달러(약 8조4000억원)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출산의 고통에 맞먹는다는 대상포진 통증. 그래서 50세 이상의 연령층은 대상포진을 예방하는 백신 접종이 권고된다. 하지만 "맞고 싶어도 비싸서 못 맞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격이 만만치 않다.
6일 제약업계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대상포진 백신 3가지 중 50세 이상 항체생성률이 97.2%로 가장 높은 '싱그릭스'는 접종 비용(2회 기준)이 최고 60만원에 이른다. 평균 50만~60만원이고, 병원에서 이벤트를 하는 경우 40만원대까지 가격이 내려가기도 한다. 접종 대상은 50세 이상과 18세 이상의 면역저하자다.
이보다 저렴한 백신으로 1회만 맞아도 되는 '스카이조스터'와 '조스타박스'는 50세 이상이 대상으로 항체생성률은 60~70%로 상대적으로 낮지만 가격이 10만원대로 더 저렴하다. 심평원이 공개하는 비급여진료비 정보를 보면 서울 내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스카이조스터 백신을 접종하는 비용은 평균 15만원, 조스타박스는 평균 17만원이다. 제조사에서 공급하는 가격은 8만~9만원 선이다.
A형간염이나 인플루엔자(독감) 등 다른 백신보다 대상포진 백신 접종 비용이 비싼 편인 건 맞다. A형간염 백신의 의원급 기준 서울 평균 접종 가격은 평균 8만원, 인플루엔자 접종비는 평균 4만원이다.
백신 제조사에선 대상포진 백신이 프리미엄 백신이고 접종 대상군이 많지 않아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쌀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백신 개발비용과 판매량 등을 고려해 가격을 결정하는데, A형간염은 성인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해 50세 이상이 대상인 대상포진 백신보다 접종 대상군이 많고 매년 맞아야 하는 독감은 더 대상군이 많아 접종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조스타박스 제조사인 MSD 관계자는 "대상포진 백신 등 프리미엄 백신이라고 통칭되는 백신들은 기초백신(독감, A형간염 등)들보다 임상에서 공급까지 더 많은 제반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에 이런 요소들이 가격 책정에 반영됐다"고 말했다.
싱그릭스 백신 제조사인 GSK 관계자는 "제품이 보유하고 있는 효능과 대상포진 발병 후 있을 합병증에 관한 사회 경제적인 효과 등을 포괄적으로 고려해 가격을 책정했다"며 "대상포진 예방접종은 질병 예방효과가 크며 발병했을 때 소요되는 비용에 비해 예방접종을 했을 경우 비용 절감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대상포진 예방백신 접종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일부 지자체에선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무료 백신 접종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65세 이상 어르신에게 무료로 대상포진 백신을 접종하도록 하겠다는 선거 공약을 내기도 했다.
현재도 어르신 대상 대상포진 무료 백신 접종은 국정과제에 포함돼 있다. 다만 아직 정부가 검토 중인 사항으로 내년 상반기가 돼야 무료 접종 등에 대한 사항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어르신 대상포진 백신 접종을 무료 국가예방접종에 포함시키게 되면 매년 상당 규모의 재정이 투입되기 때문에 무료 지원의 비용 효과 타당성을 분석하고 있고, 여러 개의 백신 중 어떤 백신을 어떻게 활용할지 등도 검토 중"이라며 "내년 상반기 중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6일 머니투데이가 백신 도매업계에서 단독 입수한 자료들에 따르면 현재 대상포진 백신 중 가장 비싼 싱그릭스의 도매가는 38만원(2회 접종 기준)이며, 이벤트가까지 적용하면 최저 33만원이다. 도매가는 병·의원이 온라인 플랫폼 또는 도매상을 통해 사입하는 가격을 말한다. 또 기존의 대상포진 양대 산맥이던 '조스타박스(MSD)'와 '스카이조스터(SK바이오사이언스)'의 도매가는 각각 9만9000원, 8만8000원(최저가 8만1000원) 선에 책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백신 3종의 접종 비용이 싱그릭스가 46만~60만원, 조스타박스가 17만~20만원, 스카이조스터가 13만~15만원이 점을 고려하면 병·의원이 백신을 접종할 때마다 각각 최대 22만원(이벤트가 적용 시 27만원), 조스타박스가 10만1000원, 스카이조스터가 6만2000원(최저가 적용 시 6만9000원)은 챙길 수 있단 얘기다.
하지만 상당수 병·의원에서는 대상포진 백신 접종 홍보에 열을 올리지는 않고 있다. 왜일까? 서울 강남구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A 원장은 "대상포진 백신은 접종한다고 해서 수익이 많이 남지는 않는다. 오히려 품만 들고 부담만 떠안아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A 원장에 따르면 백신을 접종할 때마다 백신 접종가격이 '매출'로 잡힌다. 그런데 개원가의 경우 '법인'인 병원급과 달리 '개인사업자'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개인사업자의 매출을 기준으로 세금을 내는데, 연 매출이 8800만원 이상이면 백신 가격의 35% 이상이 세금으로 떼인다. 일반적으로 개원가 연 매출이 3억원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세금은 38~40%(1억5000만원~5억원 기준)이다. 여기에 직원 월급, 4대 보험료, 임대료 등 고정 비용을 제하면 사실상 대상포진 백신 접종 수익의 50%는 떼인다는 것. 예컨대 싱그릭스를 평균 접종 가격인 50만원에 접종할 경우 사입가(38만원)을 제하면 12만원이 남지만 실제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6만원가량으로 낮아진다는 설명이다.
백신 접종 전 의사가 받는 진료비는 '0원'이다. 6만원 안에 진료비, 주사를 놓는 처치료가 사실상 몽땅 포함된 셈이다. A 원장은 "세금으로 떼이는 게 많다 보니 개원가 사이에선 '투명 인간'이 수입의 절반을 떼간다고들 표현한다"며 "주변 개원가의 접종 시세를 고려해 비용을 더 올리고 싶지만 비싸서 접종하러 오는 사람이 줄면 재고가 부담된다"라고도 호소했다. 그는 "이런 재고 부담에 '손님'의 발길이 끊길 것이란 우려에 개원가에선 싱그릭스 출시 초창기 접종 최고가였던 60만원의 가격대가 무너지는 추세"라고도 귀띔했다.
현재 나온 백신 3종은 모두 '냉장' 보관해야 한다. 따라서 병·의원에서는 백신 냉장고에 제품을 보관하는데, 냉장 제품 특성상 개봉하지 않더라도 재고를 반품할 수 없는 데다 구매 후 남은 제품의 유효기한은 대부분 1년 미만이다. 만약 이 기간에 소진하지 못하면 병·의원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버려야 한다. 또 다른 백신 플랫폼에선 오늘(6일) 백신을 주문할 경우 싱그릭스는 내년 3월까지, 스카이조스터는 내년 8월까지, 조스타박스는 내년 7월까지 소진해야 한다. 특히 싱그릭스처럼 백신 가격이 오르면 개원가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
실제로 또 다른 개원의 B씨는 대상포진 백신의 재고 부담을 우려해 대상포진 백신 접종을 '예약제'로만 운영한다. B 원장은 "도매 플랫폼을 통해서는 택배를 통해 백신을 받기까지 1~2일이 걸리고, 도매상에게 주문하면 당일에도 받을 수 있어 예약받자마자 주문한다"고 귀띔한다.
병·의원의 또 다른 고민거리는 대상포진 백신 접종자들의 '통증 호소'다. 최근 출시된 싱그릭스의 경우 백신 접종 후 통증이 가장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문일 대한개원의협의회 정책이사는 "싱그릭스는 기존 백신 2종보다 항체 생성률이 높고 백신 효과가 오래 지속하는 게 장점이지만 백신 접종 후 통증이 심한 게 단점"이라며 "실제로 접종한 환자가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고들 호소한다. 마치 대상포진에 걸렸을 때의 통증 정도에서 체감상 90~95%에 달하는 통증이 며칠간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개원가에서는 백신 접종 후 통증으로 환자들이 '뭐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항의도 올 정도라고 한다. 서울 관악구에서 피부과의원을 운영하는 C 원장은 "접종자들의 이런 항의가 부담스러워 대상포진 백신 자체를 접종하지 않고 있다. 대상포진에 걸려서 오는 환자만 치료한다"고 밝혔다.
이런 사정은 상급종합병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도권의 한 상급종합병원은 대상포진 백신 접종을 입원환자만 실시하고 있다. 대상포진 백신을 접종하는 목적으로 병원을 찾아오는 경우 개원가에서 맞을 것을 권장하며 돌려보낼 정도다. '법인'인 상급종합병원은 '개인사업자'인 개원가보다 세율이 22% 정도로 낮지만 인건비, 시설 운영비 등 부대비용이 크다. 이곳 감염내과 D 교수는 "입원한 환자들은 면역력이 떨어진 경우가 많은데, 현존하는 대상포진 백신 중 면역저하자에게 접종할 수 있는 게 싱그릭스가 유일하다"며 "46만원을 책정했지만, 매출만 높게 잡힐 뿐 남는 게 없고 오히려 적자를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호소했다.
박미주 기자 beyond@mt.co.kr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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