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샷] 정자, 난자 없이 수정 14일째 배아 탄생
영양 공급하는 태반과 난황막, 융모막도 형성
배아발달 연구로 초기 유산 원인 규명 기대
무분별한 배아 합성 규제할 가이드라인 필요
이스라엘 과학자들이 정자와 난자 없이 줄기세포만으로 완벽한 구조를 가진 인간 배아를 만들어냈다. 합성 인간 배아는 임신 초기에 배아가 어떻게 발달하는지 밝혀 조기 유산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신약 효과를 알아보는 모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무분별한 인간 배아 합성을 규제할 방안이 시급하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배아줄기세포로 14일째 배아, 태반까지 형성
이스라엘 와이즈만 연구소의 제이컵 한나(Jacob Hanna) 교수 연구진은 7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실험실에서 줄기세포로 수정 후 14일째 인간 배아의 구조와 형태를 모두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줄기세포로 만든 합성 인간 배아는 수정 후 7일째 단계에서 세포 수가 120개였으며 크기는 약 0.01㎜였다. 14일째 단계가 되자 배아는 세포 2500개가 모여 0.5㎜로 자랐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한나 교수는 “14일째의 인간 배아와 마찬가지로 여러 조직이 각각의 위치에 분리돼 있고 형태도 유사한 최초의 배아 모델”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먼저 실험실에서 배양하고 있는 인간배아줄기세포와 함께 피부세포를 역분화시켜 줄기세포 상태로 만든 유도만능줄기세포에서 각각 세포를 추출했다. 줄기세포는 인체 여러 세포로 분화되는 일종의 원시세포이다. 연구진은 줄기세포의 분화 시계를 더 거꾸로 돌려 모든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완벽한 초기 상태로 되돌렸다. 이 단계는 자연 상태에서 인간 배아가 자궁에 착상할 즈음인 수정 7일째에 해당한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된 지 일주일 된 배반포기 배아는 자궁 내벽에 도달한다. 그 안의 두꺼운 세포 덩어리가 태아가 될 배아로 발달하고 바깥 세포는 자궁 벽으로 파고들어 태반이 된다. 와이즈만 연구진은 배아로 발달할 세포는 그대로 두고, 다른 세포들에는 화학물질을 처리해 특정 유전자가 작동하도록 했다. 그 결과 배아와 함께 영양분과 산소 제공에 필수적인 태반과 난황주머니, 융모막이 만들어졌다.
줄기세포로 만든 합성 배아는 자궁 밖에서 8일 동안 정상적으로 발달해 수정 14일째에 해당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이 시기는 자연 배아가 배엽 구조를 갖추는 시점이다. 수정 후 14일이 되면 배아는 세 가지 조직으로 나뉜다. 뇌와 피부가 되는 외배엽, 근골격계의 중배엽, 소화순환계가 되는 내배엽이 나타난다.
이번 배아 유사 구조 역시 같은 형태를 보였다. 최근 몇 달 동안 줄기세포로 정자와 난자 없이 인간 배아와 유사한 구조를 만들었다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나왔다. 하지만 이번 배아처럼 세 가지 조직으로 완벽하게 분리되지는 못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합성 배아 배양액을 임신 진단 키트에 떨어뜨리자 양성 반응이 나왔다.
와이즈만 연구진은 인간 배아 모델이 실제 인간 배아와 완벽하게 같지는 않지만, 초기 배아 발달을 연구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유산의 원인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임신 중 30%는 첫 주에 실패한다. 신약 효능을 알아보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임신 여성은 임상시험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아 신약이 여성과 아기에 어떤 부작용을 주는지 알기 힘들다.
◇”환자 맞춤형 세포 제공도 가능”
앞서 한나 교수는 막달레나 제르니카-괴츠(Magdalena Zernicka-Goetz)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함께 지난해 쥐의 배아줄기세포로 합성 배아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생쥐 합성 배아를 뇌와 장기가 생기는 단계까지 발달시켰다. 정자와 난자 없이 줄기세포만으로 태아 단계의 생쥐를 만든 것이다. 연구진은 지난 6월에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국제줄기세포연구학회(ISSCR) 연례 회의에서 “정자와 난자 없이 줄기세포를 이용해 ‘인간 합성 배아’를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중국 쿤밍 과학기술대, 미국 피츠버그대 연구진도 비슷한 방법으로 합성 배아를 만들었다. 모두 각종 장기가 생겨나기 직전인 배엽 형성 단계까지 발달시켰다. 수정 후 14일쯤에 해당하는 단계이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대부분 국가에서는 실험실에서 배아를 배양할 수 있는 기한을 14일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생명윤리법은 인공 수정 시술 후 남은 배아를 난치병 치료 등을 위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수정 후 14일이 지나 줄 모양의 ‘원시선(primitive streak)’이 나타난 배아는 이용을 금지하고 있다. 14일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이날이 지나면 수정란이 둘로 나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쌍둥이가 될 가능성이 없어지고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자라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비로소 법의 보호 대상이 된다.
문제는 줄기세포로 만들어진 합성 배아에 대한 규제 법률이나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지금 단계로선 합성 배아가 태아로 발달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하지만 연구가 발전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실제로 한나 교수는 장기적으로 환자에게 이식할 세포를 합성 인간 배아에서 얻을 수 있다고 기대했다. 환자의 피부세포로 배아를 만들고 한 달 정도 배양하면, 환자에게 이식할 다양한 세포를 얻을 수 있는 장기가 발달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기증 조직을 만든 배아는 사전에 유전자를 조절해 뇌나 신경계가 형성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환자 치료를 위해 태아로 자랄 수 있는 배아를 배양한다는 점에서 윤리 논란을 유발할 수 있다. 영국 레딩대의 줄기세포 전문가인 다리우스 위데라(Darius Widera) 교수는 이날 영국 사이언스미디어센터에 “최근 줄기세포로 만든 인간 배아 모델이 점점 더 정교해지고 정상적인 발달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건에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강력한 규제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3),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3-06604-5
Cell(2022),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2.07.028
bioRxiv(2023), DOI: https://doi.org/10.1101/2023.06.15.545118
Cell Research(2023), DOI: https://doi.org/10.1038/s41422-023-008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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