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테크]“세포 구석구석까지...더 이상 비밀은 없다” 현미경이 부른 혁명

최인준 기자 2023. 9. 7.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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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10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세계현미경총회 주요 참석 석학들. /I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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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과학상을 받은 해외 석학 3명이 다음달 부산을 찾습니다. 주인공은 극저온 전자 현미경을 개발한 공로로 2017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리처드 핸더슨 영국 케임브리지대 MRC 분자생물학 연구소 교수와 요아힘 프랑크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입니다. 그리도 또다른 한 명은 현미경으로 ‘꿈의 나노 물질’로 불리는 그래핀을 발견해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현미경’ 분야의 혁신적 발전을 이끈 과학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첨단 현미경을 만들었거나 혹은 현미경을 활용해 미시세계 원리를 밝혀 과학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이들은 다음달 10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제20회 세계현미경총회(IMC20)에 참석해 국내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세계현미경총회에선 학계 연구자 뿐 아니라 현미경 관련 80여개 기업이 참가해 최신 제품을 공개합니다. 현미경 기술 트렌드를 공유하는 산업 박람회도 진행됩니다. 역사가 짧은 학술 행사이지만 2000여명이 참석할 정도로 규모가 큽니다. 현미경이 과학 연구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비중이 나날이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미경은 단순히 작은 물체를 확대해 보는 것을 넘어 눈으로 보이지 않는 미시 세계를 관찰하고, 신소재를 개발하는 등 다양한 영역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세균, 바이러스의 입체 이미지를 촬영하는 현미경 기술이 개발되면서 새로운 치료제 개발에도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수많은 노벨상 연구 이끈 과학자의 눈, ‘현미경’

현미경은 근대 과학의 역사와 함께 발전했습니다. 현미경이 과학 연구에 활용된 것은 17세기부터입니다. 영국 물리학자 로버트 훅이 현미경을 이용해 처음 세포를 관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를 통해 쓴 저서 ‘마이크로그라피아’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미시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했습니다. 훅의 현미경은 최고 30배율로 확대경 수준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빛을 광원으로 사용한 첫 복합 현미경이었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큰 발전이 없던 현미경은 19세기 들어 새로운 전기를 맞습니다. 렌즈 여러 개를 조합해 빛을 시료 표면에 정확히 집중시키는 방식이 개발되면서 지금의 광학(光學) 현미경의 기본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현미경은 과학 연구실에서 반드시 갖춰두고 사용하는 필수 장비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미경을 통해 세균, 세포를 관찰하게 되면서 수많은 노벨상 수상 연구들이 나왔습니다.

현미경이 과학 연구에서 중요해지면서 새 현미경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 노벨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프리츠 제르니케는 위상차 현미경을 발명해 지난 195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광학 분야에서 천체 망원경 연구를 하던 그는 회절격자의 파인 선들의 간격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흠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광파면(光波面) 변형인 위상차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서로 다른 투명한 물질들을 통과한 광선들을 구분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전시켜 위상차 현미경을 개발했습니다.

2021년 니콘 스몰월드현미경 사진전 가작, 내장 상피세포, Caleb Dawson. /Nikon Small World
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한 꽃가루들. 색은 나중에 입힌 것이다. 한국인 과학자들이 꽃가루를 잉크 삼아 의료용 소재를 3D 프린팅하는 데 성공했다. /싱가포르 난양 공대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찍은 헬라 세포의 분열. /미국국립보건원(NIH)

◇”더 이상 비밀은 없다”

광학 현미경은 역설적으로 ‘빛’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대물렌즈와 접안렌즈를 사용하는 광학식 현미경은 발전을 거듭했지만 배율을 계속 올리다보니 물체가 흐리게 보이는 문제가 나타난 것입니다. 확대해 보고자 하는 시료가 가시광선의 파장인 1㎛(마이크로미터·1㎛는 100만분의 1m) 보다 작으면 반사된 가시광선을 렌즈로 봐도 제대로 형태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다 미시의 세계를 들여다보려는 과학자들에겐 큰 고민 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준 것이 현재 전세계 연구실에서 널리 쓰이는 전자현미경입니다. 빛 대신 전자가 만들어내는 파동을 이용해 물체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전자 현미경으로 머리카락 굵기의 1만분의 1크기까지 볼 수 있습니다. 적혈구부터 세균, 바이럿, 원자까지 관찰할 수 있을 만큼 비약적인 발전이었습니다. 1926년 독일 과학자 한스 부쉬는 전자가 자기장을 지날 때 운동방향이 휘어지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빛이 렌즈를 지날 때 굴절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죠. 전자 현미경에 이 연구 결과가 적용됐습니다.

혁신 기술이라도 단점은 있게 마련이죠. 전자현미경을 보려면 진공 상태로 물체를 둬야 하는데 그럴 경우 생체 분자 구조가 파괴됩니다. 케임브리지대의 핸더슨 교수는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포도당으로 외부를 코팅하고, 약하게 전자 빔을 쏴서 여러 각도에서 이미지를 촬영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여러 사진을 합쳐 3차원 사진을 얻었습니다. 핸더슨 교수는 단백질 사슬이 세포막을 위아래로 7차례 거쳐 통과하는 독특한 구조로 박혀 있다는 것을 처음 발견했습니다.

컬럼비아대의 요아힘 교수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핸더슨 교수의 방식은 규칙적으로 배열된 단백질만 관찰이 가능했습니다. 요아힘 교수는 아무렇게나 배열된 여러 단백질에 전자 빔을 쏴서 2차원 영상을 얻습니다. 이렇게 나온 수천장의 이미지를 결합해 3차원 이미지를 만듭니다. 그리고 이렇게 3차원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을 수학 알고리즘으로 정리해 리보솜 단백질을 3차원 형태로 관찰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세포 같은 시료가 진공상태에서 파괴되지 않도록 얼렸습니다. 하지만 세포 안의 물이 얼면서 생기는 결정 때문에 정확한 관찰이 어려웠습니다. 스위스 로잔대 자크 뒤보셰 교수는 액체질소를 사용해 물을 매우 빠르게 얼려 얼음 결정이 생기는 걸 막았습니다. 이 3명의 과학자의 노력의 결정체가 바로 2017년 노벨상 수상의 영예를 안긴 극저온 전자현미경입니다. 당시 노벨위원회의 새러 스노게루프 린세 위원장은 “이제 더 이상의 비밀은 없어졌다. 우리는 세포 구석구석, 생체분자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생화학의 혁명을 맞이했다”고 밝혔습니다.

울산대 물리학과 김정대 교수 연구팀이 자체 개발한 주사 터널링 현미경을 통해 ‘Fe5GeTe2’ 신자성 물질을 관찰하고 있다. /울산대 제공

◇저가 광학 현미경으로 수십억짜리 전자현미경 성능 구현

이런 전자현미경은 보통 대당 수십억원 나갈 정도로 고가 장비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 때문에 연구비가 풍부한 일부 국가 연구소에서만 구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저렴한 기존 광학 현미경으로 전자 현미경에 필적하는 정밀 이미지를 관측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이목을 끌었습니다.

지난 4월 독일 괴팅겐 대학병원에서는 기존 광학 현미경의 한계를 깬 ‘ONE(one-step nanoscale-expansion) 광학 현미경’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습니다. 일반 광학 현미경은 배율을 아무리 높여도 20나노미터(nm·1nm는 10억분의 1m)보다 작은 물체를 볼 수 없습니다. 연구진은 이보다 더 선명한 1nm 이하까지 볼 수 있는 광학 현미경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는 확장 현미경이라는 기술이 적용됐습니다. 물을 흡수하면 크게 팽차하는 흡수성 화학물을 사용해 세포 조직을 팽창시키는 방식으로 거리를 떨어지도록 했습니다. 관찰하려는 단백질 샘플을 고정시키고, 화학물질이 들어간 물을 부어 1000배 이상 부풀린 것입니다. 여기에 열을 가하거나 특정 효소를 넣어 단백질을 조각으로 분해하는 방법도 적용했습니다. 이 같은 연구를 통해 전자 현미경에서만 가능했던 단백질 단위 관찰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지금도 현미경 성능을 높이기 위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현미경으로 단백질이나 화학물질의 구조를 밝히는 것을 넘어 치명적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지원 광주과학기술원(GIST) 교수와 이성수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박사 연구팀은 지난달 초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수퍼 박테리아’를 잡는 치료제 후보 물질을 발굴했다고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에 발표했습니다. 연구진은 세균의 입체 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3차원 홀로그래피 현미경을 이용해 항균 물질을 가한 박테리아가 죽는 과정을 직접 관찰했다고 합니다. 현미경의 발전이 인류를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할 훌륭한 연구 도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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