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논란에서 '공정'을 읽다[한반도 리뷰]

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 2023. 9. 7.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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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받는 머슴 출신이지만 나라 위한 삶…'공산주의' 낙인에 오히려 재조명
정부 논리는 소련에 살았지만 스탈린 철권통치에 맞서 싸웠어야 한다는 격
'친일‧남로당' 박정희 등과 이중잣대…'공정'에 민감한 20대 지지율 급락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연합뉴스


천하람 국민의힘 순천·광양·곡성·구례갑 당협위원장은 최근 "홍범도 장군 흉상을 꼭 육사에서 빼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1%나 될까 싶다"고 말했다.

지나친 엄살 같지만 유권자와 악수만 해봐도 민심을 안다는 정치인의 말인 만큼 흘려듣긴 어렵다. 윤석열 정부는 해병대원 순직 사건과 항명 파동에 이어 홍범도 흉상 논란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는 사람을 잘못 봤고 흉상을 잘못 건드렸기 때문이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결코 간단치 않았고 홍범도 장군은 오히려 재조명되며 역풍을 낳고 있다.

천대받는 머슴 출신이지만 나라 위한 삶…'공산주의' 낙인에 오히려 재조명


특히 일제 암흑기에 희망의 빛을 보여준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파란만장한 삶과 이역만리에서의 쓸쓸한 최후는 새삼 주목받고 있다.

요즘 '흙수저'보다도 못한 머슴 출신이었지만 베푼 것도 없는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 걸고 일제와 싸웠다. 첫째 부인은 옥사했고 두 아들은 의병 투쟁 과정에서 사망했다.

정작 망국의 군주 이씨 왕족은 호의호식 할 때의 일이다. 여론의 감정선을 건드린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해방된 조국에서조차 배척되고 부관참시 될 운명에 놓인 것이다.

국방부는 홍 장군의 소련 공산당 입당, 빨치산 활동을 문제 삼고 자유시 참변 연루 의혹 등을 제기했다. 이는 빈약한 역사인식이자 억울한 누명 씌우기다.

일단 국방부는 홍 장군이 독립군 몰살로 이어진 자유시 참변에 연관됐다는 의혹만 제기할 뿐 객관적 사실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학계에선 홍 장군이 오히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소련 당국에 탄원했다는 근거있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 논리는 소련에 살았지만 스탈린 철권통치에 맞서 싸웠어야 한단 격


1922년 1월 홍범도 장군의 모습. 독립기념관 제공
 
물론 공산당 입당과 빨치산 활동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1927년 입당할 당시 그의 나이는 만 59세로 당시 기준으론 고령이었다. 연금을 받기 위한 목적 외에 다른 거창한 계획이 있었을 것 같지 않다.

결국 정부의 논리는 항일투쟁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공산주의를 거부하고 스탈린 철권통치와도 맞서 싸웠어야 했다는 격인데 이게 과연 가능 키나 한 얘기인가?

더구나 당시 소련은 독일과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과 협력관계였다. 미‧소 냉전은 그로부터 20여년이나 지나서 시작됐고 그때는 이미 홍 장군이 타계한 뒤였다.

빨치산 낙인찍기는 더 황당하다. 빨치산은 게릴라를 뜻하는 '파르티잔'(Partisan)의 한국식 변형 발음이다.

해방 후 남로당의 빨치산 행적 때문에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지만, 약자가 막강한 침입자에 맞서 싸울 때 쓰는 일반적 전술일 뿐 이념과는 상관없다.

구한말 의병이 그랬고 임진왜란 의병이 그랬다. 공산주의자만 빨치산 전법을 쓰는 게 아니다.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운 프랑스 레지스탕스도 본질은 빨치산이었다. 그 프랑스가 나폴레옹 시대에 스페인을 침공했을 때 스페인이 저항한 방식이 게릴라였다.

'친일‧남로당' 박정희 등과 이중잣대…'공정'에 민감한 20대 지지율 급락


국방부의 홍범도 퇴출 시도가 생각보다 큰 반발에 직면한 또 다른 이유는 형평성에 있다.

육사 홍범도 흉상의 대체재처럼 거론되는 백선엽 장군의 경우 스스로 간도특설대 복무 경력과 친일 행적을 인정했음에도 국방부의 시각은 너무나 관대하다.

육사 교정의 박정희 휘호도 홍범도 기준이라면 당장 철거돼야 마땅하다. 박 대통령은 일제 시대에는 만주군 장교였고 해방 후에는 남로당 조직책으로 사형 위기에 몰렸다 백선엽에 의해 살아났다.

요새 말로 친일에다 친북행적까지 있지만 내로남불식 이중 잣대가 적용돼 특별대우를 받는 셈이다.

윤석열 정부 지지율이 최근 하락세를 보이고, 특히 '공정' 이슈에 민감한 20대와 중도층 지지율이 더욱 급락한 것은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국가의 위기는 외부 위협 이전에 내부의 반목과 균열에서 시작된다. 공자가 '무신불립'(無信不立)을 강조한 뜻도 여기에 있다. 군대와 식량을 포기하더라도 백성의 믿음만은 끝까지 지키라는 것이다. 지금 홍범도의 수난이 신뢰의 해체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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