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테크] 스위스 절경 ‘체르마트’를 가상 공간으로...현실과 한층 더 가까워진 디지털 세계

이병철 기자 2023. 9. 7.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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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스위스 XR 위크 행사서 한-스위스 연구진 성과 발표
현실 공간, 가상에 옮겨 놓은 메타 투어리즘
현실감 높이는 방법에 다양한 접근 방법 제시
한-스위스 협력시 시너지 기대
6일 서을 종로구 주한스위스대사관에서 한국과 스위스 연구자들이 메타 투어리즘 기술을 시연했다. 메타 투어리즘은 가상 공간에서 관광을 하는 기술로, 사용자가 느끼는 현실감을 키우기 위한 연구가 한창이다./이병철 기자

사계절 스키장으로 유명한 스위스 체르마트의 풍경을 누구나 집에서도 즐기는 시대가 현실이 됐다. 현실 세계를 가상 공간에 그대로 옮겨 관광을 즐기는 ‘메타 투어리즘’ 기술 덕분이다. 스위스의 연구진이 사실적으로 담아낸 알프스의 풍경이 서울에 펼쳐졌다.

아담 키릭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연구원은 6일 서울 종로구 주한스위스대사관에서 열린 ‘콘텐츠 제작·디자인’ 발표회에서 체르마트 풍경과 홈 오피스를 구현한 메타 투어리즘 기술을 선보였다.

ETH 연구진은 이번 행사에서 스위스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한 곳인 체르마트를 여행할 수 있는 가상현실(VR) 콘텐츠를 소개했다. VR 장치를 착용하자마자 체르마트의 거리가 눈 앞에 펼쳐졌다. VR 속 체르마트 거리는 컴퓨터 그래픽이 아닌 사진을 조합해 3차원(3D)으로 구성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용자의 실제 이동 동선에 맞춰 가상의 체르마트 거리를 거니는 느낌도 재현했다. 메타 투어리즘 기술을 활용한다면 집에서도 시간과 장소에 관계 없이 원하는 곳 어디든 여행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키릭 연구원은 “메타 투어리즘 기술을 통해 여행자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확장현실(XR) 산업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다”며 “현실의 세계를 얼마나 실감나게 옮겨 놓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소개했다.

이날 발표회는 주한스위스대사관과 스위의 XR 연구 진흥을 위한 단체 ‘스위스 XR 진흥위원회(Virtual Switzerland)’가 공동으로 개최한 ‘스위스 XR 위크’의 부대 행사 중 하나로 열렸다. 키릭 연구원을 비롯해 공간 디자인을 바탕으로 메타 투어리즘 기술을 연구하는 도락준 티랩스 대표(고려대 교수), 앤서니 고 0XES 이사, 조경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원, 이성희 KAIST 교수 등 한국과 스위스의 연구자들이 최신 연구 성과를 이번 행사에서 소개했다.

최근에는 혼합현실(MR)을 활용한 메타 투어리즘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혼합현실은 현실에 가상의 정보를 더해 상호작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다. 단순히 정보를 시각적으로만 제공하는 증강현실(AR)보다 한층 더 발전해 실제와 가상의 물체를 조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스위스 연구진은 실제 관광지에 가상의 안내소를 만들고 관광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기술도 소개했다. 사용자가 있는 자연 환경에 가상 예술 작품을 전시해 가상의 박물관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혼합현실 기술이 더 발전하면 복잡한 시장 풍경을 재현하거나 가상의 다른 관광객들과의 상호작용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키릭 연구원은 “메타 투어리즘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려면 사용자가 실제 관광지에서 느낄 수 있는 기분과 그곳의 문화까지 재현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다른 사용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환경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스위스 연구진이 사실적인 공간을 구현하는 데 집중했다면 한국 연구진은 사용자가 느끼는 현실감을 높이는 기술을 소개했다. KAIST 연구진은 가상의 지하 도시를 만들고 사용자가 지상과 지하를 오가는 환경을 구현했다.

KAIST 연구진이 개발한 VR에 접속하자 지하 도시로 이어지는 엘리베이터가 등장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자 실제로는 가만히 서있었으면서도 지하로 내려가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단순히 시각적인 자극만이 아니라 지하라는 새로운 공간이 주는 느낌을 살리기 위한 소리도 함께 활용했다.

조경현 KAIST 연구원은 “가상의 지하 도시라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주고 싶었다”며 “한국은 생활 공간이 좁은 만큼 사용자가 실제 이동하지 않고도 공간을 옮겨가는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고 소개했다.

메타 투어리즘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감소세로 접어들면서 관심도가 떨어진 메타버스, VR 산업의 새로운 활력소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5월 글로벌 시장조사 기업 팩트&팩터스에 따르면 전 세계 메타 투어리즘 관련 시장 규모는 2028년 2억2080만달러(약 3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절대적인 규모로는 크지 않지만 매년 26.6%의 급성장이 기대되는 시장이다.

연구자들도 메타 투어리즘이 미래 관광 산업을 크게 바꿔놓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단순히 가상 공간에서 여행하는 것만이 아니라 숙소 예약, 전시 관람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락준 티랩스 대표는 “현재 메타버스는 게임과 콘텐츠에 국한돼 있으나 앞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로 확장돼 나갈 것”이라며 “실제 공간을 얼마나 정확하게 가상에 구현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위스 XR 위크 행사를 공동 주최한 유럽4XR의 레티시아 보추드 대표(왼쪽)는 "한국과 유럽 연구진의 협력이 기대된다"며 "특히 문화 콘텐츠 분야에서 시너지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아담 키릭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연구원은 "같은 문제를 두고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한 한국 연구자들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이병철 기자

한국과 스위스 연구자들은 이날 행사를 계기로 XR 기술을 위한 협력도 기대했다. 키릭 연구원은 “한국 연구자들은 우리와 같은 문제를 두고 색다른 접근법을 택했고, 방식도 참신했다”며 “또 최첨단 기술과 기존 기술을 융합하는 능력도 뛰어나 공동 연구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은 XR과 관련한 기반시설(인프라)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레티시어 보슈 스위스 XR 진흥원 대표는 “진정한 의미의 메타 투어리즘을 구현하려면 고성능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는 물론 6세대(6G) 통신 기술도 상용화가 돼야 한다”며 “이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미래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술적인 교류뿐 아니라 한국의 문화 콘텐츠 산업과 협력해 다양한 분야로의 확장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메타버스가 코로나 팬데믹 시기 반짝 인기를 얻었다는 지적도 있으나 연구자들은 여전히 관련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단순히 기술적인 성장보다도 다양한 분야에 응용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추드 대표는 “코로나 시기 유럽에서는 가능한 모든 메타버스 플랫폼를 테스트했다”며 “얼마나 다양한 응용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시기”라고 평가했다.

한편 이달 4일부터 15일까지 개최되는 스위스 XR 위크에서는 연구 교류뿐 아니라 문화 전시 행사도 함께 열린다. XR 기술을 활용한 예술 활동을 하는 스위스 크리에이터들은 이달 11일부터 15일까지 관공서, 스튜디오를 방문하고 이태원팝한남에서 전시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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