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도 시동은 걸려야죠" 애플 출신 韓엔지니어, 2차전지 판 바꾼다

김성휘 기자 2023. 9. 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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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일의 혁신기업답사기]<8> 방성용 그리너지 대표
[편집자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는 '혁신'을 위해 피·땀·눈물을 흘리는 창업가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꿈꾸는 혁신을 공유하고 응원하기 위해 머니투데이 유니콘팩토리가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와 [혁신기업답사기]를 연재합니다. IB(투자은행) 출신인 김홍일 대표는 창업 요람 디캠프 센터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벤처캐피탈리스트로 활동 중인 베테랑 투자전문가입니다. 스타트업씬에선 형토(형님 같은 멘토)로 통합니다. "우리 사회 진정한 리더는 도전하는 창업가"라고 강조하는 김 대표가 만난 여덟번째 주인공은 차세대 리튬배터리를 개발한 방성용 그리너지 대표입니다.

[이 기사에 나온 스타트업에 대한 보다 다양한 기업정보는 유니콘팩토리 빅데이터 플랫폼 '데이터랩'에서 볼 수 있습니다.]
방성용 그리너지 대표(왼쪽)가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의 본사에서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3.8.28. /사진=이기범

10대 시절 가족과 미국으로 이민을 간 소년이 있다. 소년은 전기와 자동차에 푹 빠진 엔지니어가 됐고, 2002년 현대차 미국연구소에 입사했다. 이후 테슬라, LG전자를 거쳐 애플에 입사한 그는 애플카(자율주행 전기차) 개발을 위한 '타이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LTO(리튬티타네이트, 리튬-티탄 산화물) 배터리를 개발한 방성용 그리너지 대표의 이야기다.

그는 2017년 애플을 나와 창업했다. 그리너지는 현재 국내에서 유일하게 파우치형 LTO 배터리를 양산한다. 파우치형은 얇은 배터리 재료를 차곡차곡 쌓아 포장한 형태다. 그리너지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에도 포함됐다.
리튬배터리는 알겠는데 LTO가 뭐지?
방 대표 명함 속 그리너지(Grinergy)에는 알파벳 'in'이 들어간다. 그는 "이노베이션(혁신)"이라고 풀이했다. 회사이름의 뜻은 '그린 이노베이션 에너지'라는 얘기다. 그가 '혁신'에 꽂힌 건 테슬라같은 첨단 차량도 내부 배터리에 납산전지(lead-acid battery)를 쓴다는 걸 알고 나서다.

한 차례만 쓰고 충전할 수 없는 배터리를 1차 전지, 충전해 재사용하는 것을 2차 전지라 한다. 납산전지는 글자그대로 납과 황산을 이용한 2차 전지로 무려 160여년 전인 1859년 프랑스 물리학자 가스통 플랑테가 발명했다. 납중독이나 황산누출과 같은 단점이 있다. 하지만 다른 2차 전지보다 안정성이 좋고 전압이 세서 지금도 사용한다.

1990년대 개발된 리튬이온전지는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을 섞은 물질이 양극, 흑연이 음극 소재다. 둘 사이에 리튬 이온이 이동하며 에너지가 생긴다. 그런데 단점이 있다. 과충전·과열되거나 충격을 받으면 화재가 날 수 있다. 날씨의 영향도 받는다. 아주 추운 날씨에 리튬 배터리를 쓰는 골프장 내부차량(카트)이 멈추는 건 그래서다.

방 대표는 "납산전지가 영하 30도에서도 충전이 되는 반면 기존 리튬전지는 영하 10도면 충전이 안 되고 전기차나 ESS(에너지저장장치)의 화재나 폭발위험이 있다"며 "리튬전지가 납산전지를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조수아 디자인기자
세계가 주목한 K-배터리…"납 배터리 대체"
LTO 배터리는 소재를 혁신, 흑연 대신 리튬티타네이트를 음극재로 사용했다. 화학적으로 더 안정적이어서 영하 35°C부터 400°C까지 극한 기온에서도 충전, 작동한다. 화재 등 이상현상을 보일 가능성도 현저히 낮다. 북유럽 등 추운 나라부터 무더운 나라까지 세계 각지에서 러브콜이 오는 이유다. 방 대표는 "못으로 뚫거나 총알이 관통해도 화재가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됐다"고 말했다.

기존 리튬전지의 또다른 숙제는 수명이다. 상용 트럭이나 철도차량의 경우 기계 수명은 길지만 리튬 배터리 수명은 그에 못미친다. 그리너지의 LTO 배터리는 일반적인 리튬 배터리보다 충전 속도는 3배 빠르고, 수명은 7배 길다고 회사 측은 밝혔다.

그리너지는 2021년 매출액 6억원, 지난해 29억원에 이어 올해 100억원을 바라본다. 꽤 가파른 성장이다. 그리너지의 LTO 파우치셀 양산은 사실상 세계최초로 평가된다. 일본 도시바는 LTO 배터리를 먼저 개발했지만 파우치 방식은 양산하지 않았다. 파우치형은 직사각형이나 원통 모양의 기존 배터리보다 밀도가 높아 에너지효율이 좋다.
美 이민→한국서 창업한 이유는 '사람'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의 본사에서 인터뷰를 가진 방성용 그리너지 대표. 2023.8.28. /사진=이기범
방 대표는 청소년기부터 미국서 보냈고 글로벌 기업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리너지의 주요 시장도 유럽과 북미다. 국내 창업에 고민은 없었을까.

방 대표는 "제가 국내에 좀 더 네트워크가 강했더라면 더 좋은 조건으로 투자를 유치하지 않았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스타트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이고 기술"이라며 "한국이 엔지니어들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 파우치셀 배터리 생산설비가 가장 훌륭해 한국에서 창업했다"고 말했다.

이에 김홍일 대표는 "투자자가 주는 1000달러만큼 고객이 주는 1달러도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고 방 대표에게 공감했다. 어떤 제품이든 고객과 시장의 인정을 받아야 기업이 영속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리너지는 현재 미국의 로봇회사에 배터리를, 네덜란드 건설장비업체에 ESS를 공급한다. 핀란드와는 차세대 트램 배터리 공급을 논의 중이다. LTO 배터리가 납산전지를 점차 대체한다면 회사 이름의 '그린'에 걸맞은 '혁신'을 이루는 셈이다.

방 대표는 자녀에게도 창업을 권할 수 있다고 했다. "너무 힘들다. 자식한텐 안 시킨다"는 여느 창업자들과 달랐다. 그는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호기심을 가져 달라"고 조언했다.
다음은 김홍일 대표(Q)와 방성용 대표(A)의 일문일답
Q) LTO 배터리에 어떻게 관심을 두게 됐나.
A) 엔지니어로서 호기심에 의해 창업했다는 게 정답일 것 같다. 2008년 테슬라에 입사했다. 전기자동차에 대해 잘 몰랐지만 막연히 내연기관보다는 전기자동차를 만들어야 엔지니어로서 사회에 기여한다는 생각이었다. 입사 후 교육을 받는데 테슬라 '로드스터' 자동차에 납산전지가 들어 있더라. 궁금했다. 2015년 애플 타이탄 프로젝트에 합류해 LTO를 더 공부했다.

Q) 납산전지가 아직도 많이 쓰이는지 몰랐다.
A) 리튬전지가 좋지만 납산전지를 대체하지 못했다. 자동차는 저온에서도 시동을 켜야 되는데 리튬전지가 저온에서 작동을 잘 안 하고 출력이 안 나오니까 납산전지를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납산전지는 재활용 프로세스를 제대로 따르지 않으면 납 중독 문제가 생긴다. 그리너지는 납산전지를 대체할 차세대 전지를 개발하려고 한다.

Q) 해외경험이 많은데 한국에 돌아와 창업했다.
A) 미국에서 창업할 기회도 있었지만 한국에 왔다. 한국에선 단순 소재납품을 넘어 다양한 배터리를 만들어볼 수 있는 설비지원이 가능했다. 그리너지의 LTO도 거의 모든 소재와 설비가 국산이다.

Q) 대기업에서도 배터리는 개발할 수 있지 않나. 창업한 동기가 있다면.
A) 한 가지 배터리가 모든 산업군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지금 LG, SK, 삼성SDI가 하는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은 대기업들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이 많다. 그런데 아직까지 전동화되지 않은 산업군도 있다. 제품 특성마다 다양한 배터리 솔루션이 필요하다.

Q) 배터리 산업의 밸류체인에서 그리너지는 어디에 있나.
A) △소재 △생산설비 △배터리 셀 △보호회로 등이 들어있는 BMS(배터리관리시스템) △패킹 단계로 나뉠텐데 우리는 배터리 셀부터 BMS까지 한다. 양산을 위한 공장도 준비중이다.

Q) 창업하길 잘 했다고 생각하나. 제일 힘든 부분은 무엇인가.
A) 사람인 것 같다. '엔지니어'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한국 엔지니어들이 아주 똑똑하다. 그런데 주어진 과제를 잘 해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 방향으로도, 저 방향으로 생각해보고 실험도 해야 한다.

Q) 실수를 안 하려는 사회가 된 것 같다. 그런 면에서 회사가 바라는 인재상은.
A)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하는 엔지니어들이 호기심을 갖길 바란다. 도전하고 실패하는 게 경험을 얻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면 좋겠다. 사실 스타트업이니까 그런 다양한 기회가 있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대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시간'과 '도전'밖에 없다.

Q) 자녀가 창업한다면 권하겠나 말리겠나.
A) 아빠가 엔지니어라 그런지, 10대인 아들도 자전거를 고쳐서 용돈을 벌곤 하더라. 만약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창업하겠다면 반대할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하고, 대기업들이 풀지 못하는 문제를 한번 풀어보겠다고 하면 창업을 권할 것이다.

방성용 그리너지 대표가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의 본사에서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3.8.28. /사진=이기범

※ [김홍일의 혁신기업답사기] 인터뷰는 산업방송의 '스타트업 인사이트' 프로그램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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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휘 기자 sunny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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