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시장실패]③ “요금 더 못 내려” 정부 압박에도 배짱 부리는 통신 3사… 5G 중간요금제는 사실상 담합
”통신 3사 중심 독과점 카르텔, 정부 요구에 응하지 않아”
100원 단위까지 같은 5G 중간요금제… 공정위, 요금 분석 결과 언제 나오나
저소득층, 가계 통신비 부담↑… 비싼 5G ‘그림의 떡’
‘LTE(4세대 이동통신)보다 20배 빠르다’고 했던 5G(5세대 이동통신)가 사실상 반쪽짜리 서비스로 전락했다. 연간 4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통신 3사가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28㎓ 주파수를 반납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당초 통신 3사가 약속한 속도에 한참 못 미치는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LTE보다 비싼 요금을 내야 하는 현실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정부는 통신 3사가 장악한 통신 산업이 2002년 이후 과점 구조로 굳어져 시장 기능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가격에 의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시장실패’ 상태에 있는 통신 산업을 진단해 본다.[편집자주]
“5G(5세대 이동통신) 요금제의 시작 가격대가 높다는 지적이 많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올해 4월 기자간담회에서 통신 3사를 겨냥해 3만원대 5G 요금제와 같은 상품 출시를 주문했다. 이후 과기정통부는 지난 7월 ‘통신시장 경쟁촉진 방안’을 발표하면서 5G 요금제의 하한선을 낮출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중 어느 회사도 이에 화답하지 않았다. 통신 3사의 5G 요금제 시작 가격대는 SK텔레콤 4만9000원(슬림), KT 4만5000원(세이브), LG유플러스 4만7000원(슬림+) 등이다. 월 2만9000원부터 시작하는 LTE(4세대 이동통신) 요금제 대비 2배 가까이 비싼 수준이다.
정부의 거듭되는 요구에도 통신 3사가 배짱을 부리며 응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민단체·학계에서는 그 배경에 ‘통신 카르텔’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통신은 시설 투자(기지국 등을 설치)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장치산업과 유사한 구조다. 막대한 투자금으로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면 정부가 각종 규제로 산업을 흔들어도 수익을 창출하는 데 문제가 없다. 방효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은 “통신 3사 중심의 독과점 체계가 굳어지면서 3사 간에 보이지 않는 규칙이 생겼고, 통신 요금과 경쟁의 차별화가 사라졌다”면서 “이들이 쌓아놓은 독과점 카르텔을 깰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 100원 단위까지 똑같은 통신 3사 요금제… 사실상 담합 지적도
정부의 압박으로 통신 3사가 5G 중간요금제를 출시했지만 소비자들은 실질적인 가계 통신비 인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1기가바이트(GB)당 단가도 약 1000원으로 그대로이고, 기존 요금제보다 저렴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3사가 비슷한 요금제를 내놓는 사실상의 담합으로 차별화 포인트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통신 3사는 비싼 5G 요금 수준을 유지하면서 필요에 따라 판매 장려금을 통해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통신 3사의 5G 중간요금제는 사전에 회의를 통해 출시한 것 마냥 판박이처럼 닮았다. 데이터 50기가바이트(GB)를 제공하는 KT와 LG유플러스의 5G 중간요금제는 월 6만3000원으로 가격마저 똑같다. SK텔레콤은 데이터를 4GB(총 54GB) 더 주는 대신에 가격을 1000원 올린 6만4000원에 판매 중이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이들의 담합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 “통신 시장 과점 해소와 경쟁 촉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후 공정위는 통신사의 요금 체계 분석에 나섰지만 아직까지 조사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통신 3사는 온라인에서 가입하는 일부 다이렉트 요금제의 하한선이 3만원대라는 점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마저도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가입 고객의 90% 이상이 휴대폰과 통신 서비스를 함께 가입하는 ‘휴대폰 요금제’를 사용하는 상황에서 통신 서비스만 쓸 수 있는 3만원대 유심 요금제는 활용도가 떨어진다.
◇ 4만원부터 시작하는 5G 요금제, 저소득층엔 더 큰 부담
비싼 5G 요금제는 가계 통신비 인상의 주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저소득층은 결코 사용할 수 없는 ‘통신 차별’ ‘통신 소외’를 부추기고 있다. 통계청의 국내 가구당(1인 가구 이상) 통신비 지출을 보면 소득 하위 20%인 1분위 가구의 올해 상반기 월 평균 가계 통신비는 5만4490원으로 집계됐다. 5G 요금제가 출시된 2019년 상반기(4만6184원)와 비교해 18%가 뛰었다. 같은 기간 전체 가구 가계 통신비가 5.4%(11만9674원→12만6111원) 오른 것과 비교해 3배가 넘는 상승 폭이다.
통신 3사의 5G 요금제는 4만원대부터 시작한다. 이는 저소득층이 지불하는 월 평균 가계 통신비의 70~80%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쉽게 말해 5G 요금제로 휴대폰을 사용하면 가정 내에 필요한 TV나 인터넷 같은 상품을 쓸 수 없다는 의미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통신은 중요한 복지 서비스로 소득의 많고 적음에 따라 차별이 생겨서는 안 된다”면서 “저소득층도 5G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통신사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비싼 5G 요금제는 통신 차별, 통신 소외를 부추길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의 통신 요금을 깎아주는 ‘통신요금 감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심사를 거쳐 월 최대 3만3500원의 통신 요금을 깎아준다. 하지만 통신사에게는 이를 반드시 알려야 할 의무가 없다. 저소득층 상당수가 요금 감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 월 4만원이 넘는 5G 요금제는 통신요금 감면 제도를 받아도 요금의 일부만 할인이 되는 셈이라 사실상 저소득층에겐 ‘그림의 떡’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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