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위스키 다음 주자는 꼬냑’... 대형주류기업 격전지로

유진우 기자 2023. 9. 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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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이 지나가고, 위스키가 서 있는 자리를 꼬냑이 넘보고 있다.

하이트진로, 나라셀라, 신세계L&B 같은 우리나라 주류업계 대표 선수들이 최근 일제히 꼬냑 시장에 손을 뻗쳤다.

대형 주류기업들이 적극적으로 구애(求愛)하면서 꼬냑에 씌인 고루한 아저씨 술 이미지는 희미해지고 있다. 대신 위스키보다 특별하고, 와인보다 고급스러운 술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대 주류기업 하이트진로는 6일 프랑스 꼬냑 브랜드 ‘하디’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하디는 1863년 영국인 엔소니 하디가 세운 꼬냑 브랜드다. 영국인이 시작한 브랜드지만 철저히 프랑스 전통방식을 고수해 만든다.

헤네시나 레미 마틴, 까뮤 같은 거대 꼬냑 브랜드에 비하면 생산량은 적다. 대신 개성이 뚜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 최대 위스키 온라인 주류 소매업체 위스키익스체인지는 “허브나 향신료 향을 내세우는 다른 브랜드보다 하디는 과일향에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이 브랜드 역량을 집중한 ‘라리크 포시즌스’ 같은 꼬냑은 현지 기준 판매가가 1500만원을 웃돈다.

하디는 하이트진로가 창립 이후 99년 만에 처음으로 수입·유통하는 꼬냑이다. 100주년을 앞둔 하이트진로는 종합주류회사로서 빠르게 변하는 국내 주류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앞으로 하디 같은 희소성 높은 제품군을 넓히기로 했다.

유태영 하이트진로 상무는 “꼬냑을 시작으로 성장세가 높은 위스키와 데킬라, 보드카 같은 다양한 증류주를 취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올해 국내 코스닥 시장에 입성한 주류수입사 나라셀라 역시 독립법인 나라스피릿을 통해 올해 3월부터 꼬냑 브랜드 프라팡을 들여오고 있다. 프라팡은 가장 오래된 꼬냑 브랜드 가운데 한 곳이다. 1270년부터 750여년 동안 21대에 걸쳐 포도를 재배하고, 꼬냑을 만들었다.

‘원조’에 가까운 만큼 프라팡은 꼬냑 지역에서도 가장 알짜배기에 속하는 그랑 샹파뉴(Grand Champagne) 중심부 땅 300헥타르를 가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330년 전인 1697년 ‘태양왕’ 루이 14세는 프라팡 가문에 400년 넘게 고품질 꼬냑을 만들어 온 공로를 인정해 귀족 작위를 수여했다.

나라스피릿 관계자는 “특별함과 이야깃거리, 독특함 그리고 차별성 이렇게 네 가지 요소에 중점을 두고 엄선한 꼬냑”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국내 주류수입업계 1위 신세계L&B도 테세롱 같은 고가 꼬냑 브랜드에 힘을 실고 있다. 테세롱은 ‘와인 대통령’으로 통하는 세계적인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유일하게 100점 만점을 준 꼬냑 브랜드다.

꼬냑은 프랑스 정부가 법령으로 정한 등급제에 따라 숙성년수를 엄격하게 따진다. 2년 이상 숙성한 원액으로 만들면 VS(Very Special), 4년 이상 묵힌 원액으로 만들면 VSOP(Very Special Old Pale)라 부른다. XO(Extra Old)라는 이름은 10년 이상 묵힌 특별한 꼬냑에만 붙는다.

테세롱은 모든 꼬냑을 XO 등급 이상으로 만든다. 한국베버리지마스터협회 관계자는 “2년 숙성, 4년 숙성 제품을 만들지 않고 10년 숙성 제품만 만들면 그에 따른 창고 운용 비용이나 이자 비용까지 떠안아야 한다”며 “이런 기회비용을 감안하고 오래 숙성한 제품만 내놓는다는 것은 품질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는 뜻”이라고 했다.

팬데믹을 기점으로 국내 주류 시장에는 다양한 소비자 취향에 맞춘 개성 있는 술 소비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2010년 중반 불어 닥친 크래프트 맥주 붐에 이어 지난 몇 년 간 와인 시장이 급성장했다. 최근에는 이 자리를 위스키가 꿰찼다.

낮은 도수 주류에서 시작해 점차 높은 도수 주류 시장이 커지는 경향은 미국이나 일본처럼 경제 고도화가 먼저 일어난 다른 국가 주류 시장에서 동일하게 나타난 현상이다.

맥주는 보리를 싹 틔운 맥아로 만든다. 위스키도 맥주처럼 맥아가 원료다. 반면 와인은 포도를 발효해 빚는다. 꼬냑은 이 와인을 증류한 술이다.

주류업계 전문가들은 낮은 도수 시장이 맥아로 만든 맥주에서 포도로 만든 와인으로 움직이듯, 상대적으로 도수가 높은 증류주 시장에서도 위스키를 거쳐 꼬냑같은 브랜디(포도주를 증류해 만든 고도주)로 흘러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이를 입증하듯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2010년대 내내 100톤 안팎이던 꼬냑 수입량은 지난해 262톤으로 2배 이상 불어났다.

수입 금액 역시 2013년 392만달러(약 52억원)에서 지난해 1083만달러(약 144억원)으로 176% 증가했다. 와인과 위스키 시장이 주춤하는 올해도 꼬냑 수입량과 수입 금액만큼은 지난해와 거의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임해종 블루브릭바 지배인은 “우리나라 시장에서 위스키를 뺀 나머지 수입 증류주 시장은 다른 주류에 비해 성장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며 “꼬냑은 포도 재배지와 생산자 취향에 따라 서로 다른 복합적인 향을 내기 때문에 다양성과 고급스러움을 함께 원하는 소비자들 취향에 맞추기 좋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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