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도전하는 ‘탁구 신동’
탁구 국가대표 신유빈(19·대한항공)의 오른손바닥엔 콩알만 한 굳은살과 3㎝ 길이 흉터가 있다. 그녀는 “굳은살은 어릴 때부터 있었다. 없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돌이 갓 지났을 때 탁구채를 잡아 지금까지 왔으니 굳은살은 언제 처음 박였는지도 모른다. 흉터는 수술 자국이다. 쉴 새 없이 연습과 경기를 하다 보니 손 통증은 고질병이었지만 2년 전엔 너무 아팠다. 코치들에게 “전보다 천배 만배는 아프다”고 호소하자 병원에 데려갔다. 피로 골절. 핀을 박고 뼛조각을 제거하는 수술을 여러번 거쳐야 했다. 작년 9월에야 끝났다. 신유빈은 “혹시 ‘이제 탁구를 못 하게 되는 건가’라는 불안한 생각에 운 적도 많다. 그때 팬 분들이 ‘빨리 회복하길 기도해요’ 응원을 많이 주셨다. 그 덕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재활을 거쳐 다시 탁구대 앞에 선 신유빈은 작년 11월 슬로베니아 노바고리차 월드테이블테니스(WTT) 컨텐더 대회에서 여자 단식 우승을 거머쥐었다. 임종훈(26·한국거래소)과 짝을 이뤄 혼합 복식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생애 첫 성인 국제 대회 2관왕.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다짐했다.
그 단호한 다짐은 올해도 기세를 이어갔다. 5월 남아공 더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선배 전지희(31·미래에셋증권)와 여자 복식 은메달을 땄다. 여자 단·복식을 통틀어 은메달 이상 성적을 낸 건 1993년 스웨덴 예테보리 대회 현정화(단식 우승) 이후 30년 만. 6월 나이지리아 라고스 WTT 컨텐더(여자 단·복식)와 8월 브라질 리우 대회(여자 복식·혼합 복식)에서 나란히 2관왕에 올랐다. 단식 정상은 2번(라고스·8월 페루 리마) 차지했다.
신유빈은 아버지가 운영하는 탁구 클럽에서 운명처럼 탁구와 만났다. 2009년 5살 나이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실력을 뽐내며 ‘신동(神童)’으로 불렸다. 초등학교 3학년이던 2013년 전국종별학생탁구대회 초등부 여자 단식에서 고학년 언니들을 돌려세우고 정상에 올랐다. 초등학생 시기 세 살 나이 차를 뒤집은 건 드문 일. 그건 전조에 불과했다. 그해 전국남녀탁구종합선수권에서 대학생 선수를 4대0으로 완파한 것. 엄연한 대학 탁구부 소속 선수였다. 다음은 탁구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2019년 만 14세 11개월), 이어 올림픽 탁구 최연소 출전 선수(2021년 도쿄올림픽)까지 그는 승승장구했다.
그녀는 ‘연습 벌레’다. 선배들 틈에서 ‘지옥의 볼 박스(연속으로 탁구공을 받아치는 훈련)’를 거듭했고, 탁구에 전념하기 위해 고등학교 진학도 포기했다. ‘고교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는 주변 권유에 1년 늦게 방송통신고에 입학하긴 했다. 현재 3학년으로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다. “남들과 다른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후회는 없다. 하고 싶은 탁구를 마음껏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목표는 하나다. 세계 최고가 되는 것. 주위에선 ‘탁구 천재’로 추켜세우지만 ‘만리장성’을 넘지 못하면 ‘우물 안 천재’일 뿐이다. 최근 열린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서 갈 길이 멀다는 걸 다시 절감했다. 5일 끝난 여자 단체 결승에서 신유빈(단식 세계 9위)은 1단식 주자로 나서 세계 최강 중국 쑨잉사(23·1위)를 상대했다. 결과는 0대3 완패. 한국은 단체전에서 중국과 붙어 한 경기도 따내지 못한 채 준우승했다. 신유빈은 “(졌지만) 잘 싸웠다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개인전에서 좋은 경기 내용을 보이고, 보완하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전초전으로 열린 이번 대회에서 그녀는 새삼 각오를 다질 수 있었다. “후회는 남기지 않는다. 매 경기 교훈을 얻고 있다”면서 “언젠가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했다. 그녀 별명은 ’삐약이’다. 도쿄올림픽 때 병아리가 우는 소리처럼 기합을 지른다고 해서 붙었다. “관심과 사랑을 많이들 주셔서 감사해요. 더 힘을 내는 원동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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