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폐업 올 7만건… “PC방 접고 ‘웰다잉’ 영상 업체로 재기”
〈상〉 업종 바꿔 희망 찾는 소상공인들
2021년 6월이었다. 절망에 빠졌지만, 주저앉을 순 없었다. 방송국 근무 때 한 출연자가 ‘죽기 전 손주에게 할아버지를 소개하는 영상을 남기고 싶다’며 영상 제작을 부탁해 왔지만, 부업은 못 해서 거절했던 일이 떠올랐다. 고령화 시대에 ‘웰 다잉(Well Dying)’이 더 중요해질 것 같았다. 마침 폐업한 소상공인이 재창업하면 정부가 최대 2000만 원(‘희망리턴패키지’)을 지원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2022년 6월 그는 영화판에 있던 대학 후배 3명과 의기투합했다. 지원 대상에 선정돼 종잣돈을 받자마자 ‘필름 유월’을 차려 바로 작업실을 구하고 홍보 영상과 책자를 만들었다. 죽을 각오로 영업을 뛰며 어느덧 고정 거래처를 확보해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사랑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영상에 담을 때 일의 보람과 의미를 느낀다”며 “이제야 천직을 찾은 것 같다”고 했다.
고금리와 고물가 등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며 폐업하는 소상공인이 늘고 있지만, 업종을 발 빠르게 바꾸거나 새로운 역량을 갖춰 위기를 극복하려는 소상공인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내수가 회복될 거란 기대감과 달리 소상공인 경영 환경이 여전히 녹록지 않지만, 정부 지원에만 기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생력을 갖추며 정부 지원을 매개로 성장하는 소상공인들이다.
● 올해 소상공인 폐업 최소 7만4000건…역대 최대
전문가들은 소상공인 자립을 위해서는 ‘준비된 소상공인’에게 목돈을 제때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북 정읍시에서 컴퓨터 학원을 20년 넘게 운영해 온 손경호 씨(51)도 코로나19 확산으로 한때 폐업 위기에 몰렸던 경우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코로나19 이전 60여 명이던 학원 학생이 코로나 확산 첫해인 2020년 3월부터 10명 아래로 줄며 3개월 만에 한 해 수익이 날아갈 정도로 손해가 불어났다. 그가 ‘기사회생’한 건 지난해 여름 시작한 온라인 강의 덕분이다. 당시 정부에서 지급한 손실보전금 600만 원으로 웹캠 등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장비를 사서 학원에 못 오는 학생들에게 온라인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전의 방역지원금으로는 급한 불만 껐지만, 손실보전금은 신청 하루 만에 목돈으로 나와 과감하게 온라인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기부에 따르면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른 소상공인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지난해 5월 30일부터 12월 31일까지 372만7000개 업체에 손실보전금 총 22조6000억 원이 지급됐다. 업종마다 지원액이 같은 방역지원금과 달리 손실보전금은 개별 업체마다 분기별 손실액을 산정하고 이에 비례해 지원해 한 번에 600만 원 이상을 지급하기도 했다.
재창업이나 업종 전환이 아니더라도 소상공인 스스로 준비돼 있다면 현금 지원이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광주에서 프랜차이즈 꽈배기집을 운영했던 정미숙 씨(49)는 코로나19 때 매출이 바닥을 치자 방역지원금과 손실보전금으로 받은 2100만 원으로 간판 등 인테리어를 바꿨다. 이후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떼서 가맹비를 아끼고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매출도 회복했다. 정 씨는 “제때 개인사업으로 바꾸지 못했다면 진부한 메뉴 탓에 매출을 회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 단순 현금 지원은 한계…“업종 전환 도와 경쟁력 높여야”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 선진국은 재교육 체계와 고용 유연화 등으로 비교적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데 반해 한국은 경쟁에서 밀려난 소상공인이 재취업할 사회 안전망이 열악하다”고 했다. 소상공인·자영업자가 과감하게 폐업하고 충분한 재창업, 재취업 준비 기간을 가지려면 사회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대 명예교수는 “정부에서 현금 지원을 받더라도 액수가 크지 않은 데다 소상공인 과밀·과다 경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며 “정부는 업체별로 경쟁력과 자생력을 확보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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