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폐업 올 7만건… “PC방 접고 ‘웰다잉’ 영상 업체로 재기”

송진호 기자 2023. 9. 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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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 자생력 키워야 산다]
〈상〉 업종 바꿔 희망 찾는 소상공인들
3일 오후 서울 성북구의 한 녹음실에서 ‘영상 자서전’ 제작 업체인 ‘필름 유월’ 김상수 대표(49)가 영상 작업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8월 개업한 김 대표의 회사는 죽음을 앞둔 이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는 일을 한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임종을 앞둔 어르신, 퇴임하는 기업체 대표, 은퇴한 육상 선수 등을 위해 인물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필름 유월’의 김상수 대표(49). 그는 2년여 전까지만 해도 월 1000만 원을 버는 ‘동네 PC방 사장님’이었다. 대학 시절 영화를 전공한 그는 30대에 방송국에서 일하다가 영화 시나리오를 쓰려 관두자 고정 수입이 없어졌다. 그야말로 굶어 죽겠단 생각에 PC방을 차렸는데, 손님들과의 수다에 재미를 붙이며 금세 단골이 많아졌다. PC방도 3곳으로 늘었다. 그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닥쳤다. 영업 제한에 손님이 끊기며 고정비만 월 700만∼800만 원을 내다 결국 접었다. 현금도 바닥났다.

2021년 6월이었다. 절망에 빠졌지만, 주저앉을 순 없었다. 방송국 근무 때 한 출연자가 ‘죽기 전 손주에게 할아버지를 소개하는 영상을 남기고 싶다’며 영상 제작을 부탁해 왔지만, 부업은 못 해서 거절했던 일이 떠올랐다. 고령화 시대에 ‘웰 다잉(Well Dying)’이 더 중요해질 것 같았다. 마침 폐업한 소상공인이 재창업하면 정부가 최대 2000만 원(‘희망리턴패키지’)을 지원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2022년 6월 그는 영화판에 있던 대학 후배 3명과 의기투합했다. 지원 대상에 선정돼 종잣돈을 받자마자 ‘필름 유월’을 차려 바로 작업실을 구하고 홍보 영상과 책자를 만들었다. 죽을 각오로 영업을 뛰며 어느덧 고정 거래처를 확보해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사랑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영상에 담을 때 일의 보람과 의미를 느낀다”며 “이제야 천직을 찾은 것 같다”고 했다.

고금리와 고물가 등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며 폐업하는 소상공인이 늘고 있지만, 업종을 발 빠르게 바꾸거나 새로운 역량을 갖춰 위기를 극복하려는 소상공인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내수가 회복될 거란 기대감과 달리 소상공인 경영 환경이 여전히 녹록지 않지만, 정부 지원에만 기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자생력을 갖추며 정부 지원을 매개로 성장하는 소상공인들이다.

● 올해 소상공인 폐업 최소 7만4000건…역대 최대

5일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소상공인을 위한 퇴직금으로 통하는 ‘노란우산 공제의 폐업 공제금’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7만4191건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최대였던 2021년 지급 건수가 9만9388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올해 지급 건수는 이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폐업한 업체가 많다는 의미다. 노란우산 공제는 소상공인이 매달 일정 금액을 납부하다가 폐업할 때 기존에 납입한 돈에 이자를 더해 돌려받는 제도다. 노란우산 공제에 가입하지 않은 소상공인들도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실제 소상공인 폐업 건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전문가들은 소상공인 자립을 위해서는 ‘준비된 소상공인’에게 목돈을 제때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북 정읍시에서 컴퓨터 학원을 20년 넘게 운영해 온 손경호 씨(51)도 코로나19 확산으로 한때 폐업 위기에 몰렸던 경우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코로나19 이전 60여 명이던 학원 학생이 코로나 확산 첫해인 2020년 3월부터 10명 아래로 줄며 3개월 만에 한 해 수익이 날아갈 정도로 손해가 불어났다. 그가 ‘기사회생’한 건 지난해 여름 시작한 온라인 강의 덕분이다. 당시 정부에서 지급한 손실보전금 600만 원으로 웹캠 등 온라인 수업에 필요한 장비를 사서 학원에 못 오는 학생들에게 온라인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전의 방역지원금으로는 급한 불만 껐지만, 손실보전금은 신청 하루 만에 목돈으로 나와 과감하게 온라인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중기부에 따르면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따른 소상공인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 지난해 5월 30일부터 12월 31일까지 372만7000개 업체에 손실보전금 총 22조6000억 원이 지급됐다. 업종마다 지원액이 같은 방역지원금과 달리 손실보전금은 개별 업체마다 분기별 손실액을 산정하고 이에 비례해 지원해 한 번에 600만 원 이상을 지급하기도 했다.

재창업이나 업종 전환이 아니더라도 소상공인 스스로 준비돼 있다면 현금 지원이 성과를 거두기도 한다. 광주에서 프랜차이즈 꽈배기집을 운영했던 정미숙 씨(49)는 코로나19 때 매출이 바닥을 치자 방역지원금과 손실보전금으로 받은 2100만 원으로 간판 등 인테리어를 바꿨다. 이후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떼서 가맹비를 아끼고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매출도 회복했다. 정 씨는 “제때 개인사업으로 바꾸지 못했다면 진부한 메뉴 탓에 매출을 회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 단순 현금 지원은 한계…“업종 전환 도와 경쟁력 높여야”

하지만 이미 포화 상태로 경쟁이 심한 업종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경우 현금 지원도 극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중견기업에서 퇴직한 뒤 제과제빵 기술을 배워 빵집을 10년 넘게 운영해 온 이모 씨(57)는 코로나19 시기 손님이 줄며 누적된 적자를 재난지원금과 은행 대출로 메우며 근근이 버티고 있다. 설탕 등 재료값이 코로나 이전보다 50% 이상 올라 손해가 쌓이고 있지만 제품 가격은 그대로다. 그는 “주변에 경쟁업체가 많아 가격을 무작정 올릴 수 없다”며 “코로나19가 끝나 손님이 늘고 있지만 앞길이 막막하긴 마찬가지”라고 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 선진국은 재교육 체계와 고용 유연화 등으로 비교적 쉽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데 반해 한국은 경쟁에서 밀려난 소상공인이 재취업할 사회 안전망이 열악하다”고 했다. 소상공인·자영업자가 과감하게 폐업하고 충분한 재창업, 재취업 준비 기간을 가지려면 사회 안전망 구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대 명예교수는 “정부에서 현금 지원을 받더라도 액수가 크지 않은 데다 소상공인 과밀·과다 경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며 “정부는 업체별로 경쟁력과 자생력을 확보할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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