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97] 원로가수의 마지막을 추모하며
쓸쓸하지 않은 죽음이 어디 있겠냐마는 원로 가수 명국환 선생의 부고는 유독 안타까웠다. 지난 8월 19일에 별세하였으나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무연고 장례를 치를 뻔했기 때문이다. 뒤늦게나마 대한가수협회에서 협회장으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 드린 것은 다행한 일이다.
2009년과 2018년에 명국환 선생과 면담하며 그 생애를 상세하게 들은 적이 있다. 신문 기사들과 인터넷에는 고인이 1927년에 출생했다고 기재되어 있으나, 삼팔선 이북에 본적을 둔 사람들을 위해 임시로 만든 호적에 잘못 기록된 연도일 뿐이다. 1933년 음력 1월 9일 황해도 연안읍 관철리에서 태어난 그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누나와 함께 목선을 타고 강화도 교동도로 내려왔다고 한다. 전쟁 당시 북한군이 16살 이상의 남성을 모두 잡아가거나 죽인다는 말을 들은 그는 까만 치마로 여장을 한 채 고향에서 탈출했다는 일화도 함께 들려줬다.
맑으면서도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힘 있는 목소리를 지닌 그는 17살 때 황해도에서 열린 콩쿠르 대회에서 남인수의 ‘남아일생’을 불러 3등을 하였다. 샛별악극단을 비롯한 여러 악극단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박경원, 안다성, 권혜경 등과 함께 방송국 전속 가수로도 활동하였다.
현재까지의 자료를 종합해 보면, 데뷔곡으로 알려진 ‘백마야 울지 마라’ 이전인 1954년에 ‘저무는 서울 거리’, ‘휴전선의 달밤’ 등을 먼저 발매한 것으로 보인다. ‘방랑시인 김삿갓’, ‘내 고향으로 마차는 간다’, ‘아리조나 카우보이’ 등 많은 인기곡을 낸 그는 1950년대 현인과 더불어 최고의 인기 가수로 꼽혔다. 서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며 이국적인 정서를 드러내고 있는 ‘아리조나 카우보이’는 아이들마저 재미있게 따라 부를 정도로 유행했고, 조선 후기 실존 인물을 다룬 ‘방랑시인 김삿갓’은 당시 인기 절정에 올라 그의 대표곡이 되었다.
하지만 선생은 홀로 병마와 싸우며 가난하게 말년을 보냈다. 한때 대중의 큰 관심을 받으며 화려한 삶을 살았던 원로 가수의 마지막이 쓸쓸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대중음악인들의 음악적 행보를 일일이 기록하는 작업을 고군분투하며 오랫동안 행하고 있는 것은 이미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난 별들을 역사의 한 장으로 채워 넣기 위해서다.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그분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반짝반짝 빛을 내며 한때 우리를 노래로 위로해준 그들에 대한 예의이자 보답이기 때문이다.
노래하는 동안은 무한히 행복하다던 명국환 선생이 부디 저세상에서나마 맘껏 노래하며 즐겁게 지내시길 바란다. 아울러 이 땅의 모든 원로 음악인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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