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믿습니까
자극성 있는 다섯 가지 채소류인 오신채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불가에서는 마늘 부추 달래 파 흥거를 들고, 도가에서는 부추 자총이 마늘 평지 무릇을 이른다. 모두 음욕과 분노를 일으키는 음식이라 하여 금식하는데, 물론 그 뜻도 존중한다. 하지만 시정무뢰인 내 입장에서는 너무 지나쳐도 안 되지만 적당한 음욕과 분노를 좀 갖추어야 또한 사람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그런데 과도한 당분과 정제된 식품 섭취가 분노조절 장애를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 걸 보면, 오신채 입장에서는 좀 억울한 면이 있으리라는 점도 쳐 줘야 한다. 회를 먹을 때 마늘을 쌈장에 콕 찍어 먹는 맛을 제한다면 세상의 희열 하나가 실종되는 것 아닌가? 통마늘을 구워 먹는 즐거움은 또 어쩐다? 이른 봄, 달래장으로 밥을 쓱쓱 비벼 먹는 그 행복은? 바싹 부친 부추전의 고소함은? ‘파송송 계란탁’은 어쩌고?
찌개를 비롯한 온갖 요리에 마늘이 들어가지 않으면 음식 맛이 허허해진다. 요리할 때마다 마늘을 까서 써야 제대로이겠지만 그때그때 일일이 껍질을 벗기는 게 은근히 일거리여서 인터넷으로 깐마늘을 구매했다. 물론 국산으로. 암 믿어야지. 값도 저렴하다. 알도 굵고 실하다. 잘 샀다. 절구로 찧어서 담아뒀다가 요리할 때마다 써야지 하는 요량으로 깐마늘을 꺼내 씻는데 느낌이 이상하다. 재차 씻어도 미끈거림이 가시지 않는다. 코로 맡아봤더니 이상한 냄새가 나는 듯도 하지만 기분 탓인지 또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계속 더 내쳐 씻어도 느낌이 좋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비누로 씻을 수야 없지 않은가. 그제야 아무리 냉장 보관해도 마늘은 일단 까 두면 곰팡이가 쉬 핀다는 생각이 났고, 오래됐는데도 멀쩡한 마늘에 의심이 더해졌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도저히 마늘을 먹을 수 없어서 모두 버리고 말았다. 물론 마늘에 아무 탈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분을 알 수 없는, 또 내가 원하지 않는 보존제가 첨가되어 있다면 이건 아니다. 내가 먹는 식품에 무엇이 첨가되어 있는지 일반인이 알아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전문가라 하더라도 고가의 분석 장비가 있어야 하고 해당 약품의 표준물질을 일일이 다 갖추고 있어야 가능하다. 그러니까 정상적인 나라, 좋은 나라에서는 돈벌이에 눈이 멀어 식품에 해로운 걸 첨가하는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국민이 맘 편히 살 수 있도록 나서서 일일이 다 조사하고 분석하는 전문기관이 책임 있게 기동하고 있어야 한다. 이건 당연한 일이다.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나라 시스템 말이다.
그런데 자본은 선악을 가리지 않고 자본을 늘리는 일에만 매달린다. 이게 문제를 일으킨다. 합법적이건 아니건 도덕과 양심이 선명한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알고도, 또 몰라서, 나태하거나 무능함 때문에 왕왕 무시되는 일이 너무 많았다. 가습기 살균제가 그랬고 살충제 계란이 또 그랬다. 우유는 송아지를 위한 식품이다. 동물은 제 새끼를 낳아 먹이는 기간에만 젖이 나온다. 이게 자연의 섭리다. 그런데 시도 때도 없이 우유를 만들어 낸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송아지 먹이를 우리가 싸게 먹겠다고 무슨 짓을 하는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미치자 우유 말고 콩으로 만든 두유를 먹기로 했다. 내가 먹고자 하는 것은 다만 불은 콩을 간 콩국이다. 간을 맞추기 위해 소금을 조금 넣은 게 전부인 걸로 알았다. 그러나 내가 마신 두유의 포장지에는 콩뿐만 아니라 뭐가 뭔지 모르는 숱한 첨가제들로 도배되어 있었다. ‘탄산칼슘, 아라비아검, 글리세린지방산에스테르, 비타민D3, 엠시티유, 덱스트린, 디-콜티솔, 탄산수소나트륨, 구연산삼나트륨, 카라키난, 잔탄검, 영양강화제, 합성착향료 등등’. 나는 이걸 먹고자 한 게 아니다.
원자력발전이야말로 안전하고 깨끗한 미래의 에너지라고 주장하던 일본이 이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해양 방류하면서 ‘과학적 안정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숱한 거짓말에 잘못을 감춰오다 들킨 도쿄전력을 믿으라는 말인가? 부산은 국제기준보다 열 배나 높은 기준으로 해수 방사능 검사를 해 왔고, 수산물 생산 유통에 촘촘하게 방사능 검사를 하고 꼼꼼하게 감시하고 있다는데, 쓴 기분이 드는 건 또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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